숙소 찾아 삼만리

스마트폰 없던 시절의 유럽 여행 [13]

by 하로걷다

이른 아침 눈을 뜨자마자 조식을 먹고 짐을 챙겨 체크아웃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이른 아침의 거리에는 어젯밤의 직업여성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최대한 빨리 이 거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무작정 지도를 보고 아테네 중심가로 걸어갔다. 다행히 아테네 중심가, 여행자들이 많이 모이는 거리에서 그다지 멀지 않아 충분히 걸어갈만했다.


하지만 인터넷도 안 되는 상황에서 숙소를 잡으려면 직접 찾아다니면 방이 있는지 물어봐야 했다. 가이드북에서 여행자용 숙소가 많이 있다는 거리를 찾아 무작정 캐리어를 끌고 거리를 누비기 시작했다.


이제 막 장사를 시작하는 상인들이 거리에 상품을 진열하고 있었고 레스토랑들도 테이블과 의자를 세팅하며 영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돌바닥 때문에 힘겹게 캐리어를 끌고 가고 있는 나를 향해 어떤 기념품 가게 주인이 말을 걸었다.


"쭉 가서 오른쪽으로 돌면 있어."


나는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했다.


"** 호스텔 찾는 거 아니야? 쭉 가서 오른쪽으로 돌면 있다고."


계시를 받은 느낌이었다. 그분이 점지해 준 대로 쭉 가서 오른쪽으로 돌자 부겐빌레아 꽃이 담벼락을 타고 올라간 건물에 위치한 호스텔이 보였다. 당장 문을 열고 들어가 방이 있냐고 묻자 11시 30분에 다시 와서 체크인하면 된다고 했다. 체크인 전까지 짐도 맡아 준다고 해서 짐을 맡기고 밖으로 나오니 갑자기 아테네의 모든 것이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숙소를 구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어릴 적 읽었던 그리스 로마 신화의 무대들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무명용사의 비나 국립정원, 그리고 거대한 기둥들이 남아 있는 제우스 신전을 보니 정말로 신화 속 도시 아테네에 있다는 게 실감이 되었다.

그렇게 신화 속 무대가 된 아테네 곳곳을 구경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가서 제대로 체크인을 했다. 숙소는 깔끔했고 내가 배정받은 방은 4인 도미토리였다. 방 안에 화장실과 샤워실도 딸려 있었고 침대와 침구도 깨끗했다. 더운 여름에 필수라는 에어컨도 있는 방이었고 심지어 가격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그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처음 마주한 것은 상의를 벗은 채 머리를 말리고 있던 미국인 Ben이라는 남자였다. 말로만 듣던 유럽의 혼성 호스텔이었다. Ben은 미국인답게(?) 상의탈의를 하고 방을 누비는 건 기본이었고 밤에 잘 때도 속옷 하나만 입고 잤다. 같은 방에 일본인 남자 한 명이 더 체크인을 했고 다시 숙소를 옮겨야 하나, 방을 옮겨 달라고 말을 해 볼까 고민을 하던 찰나 아르헨티나에서 온 여자분이 우리 방에 들어왔다.


정말 반가워서 인사를 하는데 남자들이랑도 인사를 하면서 옷 속에 손을 넣더니 쓰윽쓰윽 움직여 안에서 속옷을 벗어 쑤욱 꺼내 침대에 던져 버렸다. 나와 일본인 남자분만 눈 둘 곳을 못 찾아 딴짓을 하기 시작했다.


이후로 유럽 여행을 여러 번 하면서 혼성 호스텔에 익숙해졌지만 역시 처음에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요즘은 문 열었을 때 누가 헐벗고 있어도 '헬로!!'를 외치면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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