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없던 시절의 유럽 여행 [12]
파묵칼레에서 나는 12시간이 걸리는 야간 버스를 타고 이스탄불로 돌아왔다. 내 인생 첫 번째 야간 버스였고 내리면서 두 번 다시 야간 버스는 타지 말자는 다짐을 하며 내렸다. 옆자리에 일행이 아닌 이성을 앉히지 않는 터키 버스의 특징 덕분에 옆자리가 비어 반쯤 누워서 왔는데도 너무 피곤했다. 하지만 역시 터키의 버스 시스템은 너무나 훌륭한 것이... 이스탄불에 도착하고 나서 다음 목적지가 공항이라고 하자 공항까지도 공짜로 태워다 줬다.
그리스로 가는 비행기는 이스탄불에서 차나칼레와 파묵칼레를 가기 전에 미리 예매를 해 두었는데 당시에는 '에어텔'이라는 상품이 있었다. 비행기와 숙박을 묶어서 조금 저렴하게 파는 상품이었다. 이스탄불에서 그리스 아테네까지 가는 페가수스 항공 비행기와 아테네에서의 2박 호텔이 묶어져 있는 상품을 선택해서 예매했고 늦은 저녁 시간 아테네행 페가수스 항공에 올라탔다.
롤러코스터라도 탄 줄 알았다.
유난히 많이 흔들리는 비행기 안에서 가끔 비명소리도 들렸다. 기내식을 줬다가 흔들림이 너무 심해지자 다시 줬던 기내식을 승무원들이 수거해 갔다. 사실 이보다 더한 흔들림을 중국 여행에서 겪어봤던 터라 크게 동요하지 않았지만 옆자리 아주머니가 갑자기 내 손을 꼭 잡아줬을 때 조금 위안이 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비행기는 무사히 착륙했고 비행기에서 내린 승객들은 함께 사지를 뚫고 나온 연대의식 때문인지 서로가 서로에게 참 친절해졌다.
그렇게 신화의 나라에 도착했다.
늦은 밤 아테네 공항에 도착해 버스를 타고 아테네 시내로 가 예약한 숙소를 찾아가는 미션이 남아 있었다. 공항버스는 아네테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인 파르테논 신전이 보이는 광장에 내려줬고 거기서 기다리던 택시 중 한대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너무나 당연하게 약간의 가격 사기를 당했다. 하지만 사기를 치는 와중에도 아테네에서 꼭 봐야 할 유적지와 유명하지는 않지만 가보면 좋을 곳들을 꼼꼼하게도 소개해줬다. 나름 양심 있는 사기꾼이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숙소를 찾아가는데 진짜 문제는 택시 비용을 미터기보다 더 받는 사기꾼 기사 따위가 아니었다.
예약한 숙소로 가는 길 주변은 너무 어두웠고 무엇보다 옷을 헐벗은 채 영업하는 온갖 인종의 여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내가 탄 택시가 나타나자 여러 명이 택시 주변으로 몰려들었다가 택시에 타고 있는 게 여자니까 그냥 돌아가는 일이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내가 예약한 숙소에 도착하여 체크인을 하려는데 이번에는 오버부킹 문제가 터졌다.
결국 호텔 직원과 함께 빈방이 남아 있다는 근처의 다른 호텔로 이동을 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호객행위를 하는 그 여자분들을 걸어서 뚫고 가야 했다. 솔직히 한국에서 부모님 보호 아래 곱게 자란, 이제 막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이 결정된 온실 속 화초 같던 당시의 내가 감당하기에는 힘겨운 인생 최대의 역경이었다. 다행히 호텔 직원은 안전하게 나를 다른 호텔까지 데려다주었고 호텔 주인아저씨는 매우 친절하셨다. 오느라 고생했다고 원래 조식이 포함 안 된 예약이지만 조식도 그냥 먹으라고 했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침대에 누워 생각해 봤지만 일단 하룻밤은 여기서 자도 다음날은 무조건 체크아웃하고 좀 더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조금 늦은 시간에 숙소에 돌아올 수도 있는데 여기는 혼자 숙소에 돌아오는 것 자체가 너무 위험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