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없던 시절의 유럽 여행 [11]
파묵칼레의 석회붕은 산에서 흘러내리는 석회성분이 섞인 온천수 덕에 산 전체가 하얗게 석회로 뒤덮여 있었다. 당시에는 쉴 새 없이 온천수가 흘러넘치고 있어 입장료를 구매한 후 다들 그 앞에서 신발과 양말을 벗어 손에 들고 석회붕을 오르기 시작했다.
온통 새하얀 석회로 뒤덮인 산 곳곳에 온천수가 흘러넘치고 있었는데 아래쪽까지 흘러온 온천수는 생각보다 시원했다. 발을 내딛을 때마다 발가락 사이로 부드러운 석회가 밟혔다. 생각보다 미끄럽지 않았고 가파르지도 않아서 맨발로 올라가는데 큰 문제는 없었다.
온천수가 흐르다가 고여 있는 곳도 있고 계곡처럼 콸콸 흘러넘치는 곳도 있었다. 온통 하얀 세상과 하늘색 온천수가 흘러넘치는 풍경은 진짜 지금껏 그 어디서도 본 적 없는 풍경이었다. 왜 이곳을 목화의 성이라고 부르는지 이 풍경을 보니 알 것 같았다. 뜨거운 햇빛이 하얀 지면에 반사되어 눈이 부시고 사진이 어떻게 찍히는지 디카의 화면도 보이지 않아 대충대충 사진을 찍어야 할 정도였다.
중간중간 온천수를 막아 놓아 수영장처럼 만들어 놓은 곳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마음껏 들어가 수영을 즐길 수도 있었다.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시원했던 온천수의 온도는 점점 따뜻해지기 시작해서 몸을 담그고 물놀이하기에 딱 좋은 온도였다. 지금은 온천수가 많이 줄어들어 물도 별로 없고 석회붕에서의 수영도 금지되었다는 말이 있던데 내가 갔을 때만 해도 산 전체에 물이 넘쳐흘러 석회가 메마른 곳이 거의 없을 정도였고 곳곳에 인공적이든 천연이든 물 웅덩이가 가득했었다.
그렇게 석회붕의 정상까지 올라가면 이번에는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산 정상에는 거대한 고대 도시 히에라폴리스의 유적지가 펼쳐져 있다. 고대부터 온천으로 유명했던 이곳에 몸이 아픈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온천 휴양지가 조성되었다고 한다. 클레오파트라도 이곳을 사랑해서 온천 휴양을 왔었다고 하니 그 당시 지중해 세계에서는 엄청나게 유명한 휴양 지였었던 것 같다.
히에라폴리스 유적에서 가장 압도적인 것은 역시 거대한 원형극장이었다. 원형극장의 규모만 봐도 그 당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지 짐작이 가능했다. 온천도 즐기고 풍경도 즐기고 문화생활도 즐기고.. 고대인들도 우리랑 원하는 것은 다 같은 것 같다.
석회붕과 히에라폴리스까지 다 보고 내려와 이스탄불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어떤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한국에서 왔다, 다시 이스탄불에 돌아갈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등등 스몰톡을 하는데 그 아저씨가 애플티를 한잔 주겠다고 했다. 내가 버스를 기다리던 곳은 가이드북에도 첫 번째로 수록되어 있던 당시에 유명했던 호텔 바로 앞이었는데 이 아저씨가 그 호텔의 주인이었다. 호텔 앞에는 넓은 수영장이 있었고 사람들이 수영을 하고 있었다. 그 수영장 바로 옆에 의자에 앉아서 따뜻한 애플티를 얻어 마셨다.
이스탄불에서 만났던 피보 아저씨와 달리 이 호텔의 주인아저씨는 정말 순수하게 여행객에게 따뜻한 애플티 한잔을 대접했다. 세상엔 나쁜 사람도 있지만 당연하게도 좋은 사람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