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없던 시절의 유럽 여행 [10]
트로이 유적을 보고 다시 차나칼레로 돌아와 맡겨 놨던 짐을 찾아 다시 버스에 올라탔다. 다음 목적지는 파묵칼레지만 오전에 트로이를 보고 늦게 출발해야 했기 때문에 중간에 이즈미르에서 1박을 하고 가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밤늦게 도착하더라도 파묵칼레로 바로 가서 거기서 숙박을 하는 게 나았을 것 같은데 그땐 그냥 지도랑 버스 노선표만 보면서 계획을 짜야했기에 이즈미르 숙박이 최선이라 생각했었다.
이즈미르는 확실히 대도시라 그런지 버스는 만차가 되었다. 옆자리에 앉은 터키 할머니는 과자, 과일, 물까지 이것저것 내 손에 쥐어줬다. 서로 말이 안 통해 대화는 한마디도 못 했지만 먹을 건 계속 주셨다. 역시 전 세계 할머니들은 다 똑같은가 보다.
이즈미르에 도착해 다음날 파묵칼레로 가는 버스를 예약하고 버스 예약한 곳에서 추천해 준 가까운 곳에 있는 오텔(Otel, 호텔과 비슷한 터키의 숙박업소)에 체크인을 했다. 오래된 티가 많이 나는 숙소였지만 다음날 파묵칼레로 가는 버스가 픽업도 나온다고 해서 일단 하룻밤 여기서 자기로 했으니.....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침대 옆 협탁에서 바퀴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을 목격하고 말았다. 캐리어를 침대 위로 올리고 모든 짐을 다 꺼내서 혹시 가방에 바퀴벌레가 들어간 건 아닌지 털어내고 확인하고를 몇 번을 반복하고 짐을 싸놓고 간신히 머리만 감고 밖으로 나와 체크아웃을 했다. 파묵칼레 가는 버스가 픽업을 나오기까지 남은 시간이 2시간도 넘었지만 일단 밖으로 나와 길거리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드디어 파묵칼레로 가는 버스를 탔고 버스는 파묵칼레 근처의 데니즐리라는 도시로 가기 위해 동선을 동쪽으로 틀었다. 그때부터 가지고 있던 핸드폰으로 미친 듯이 문자가 오기 시작했다. 당시에 터키 동쪽은 여행이 제한된 지역이 많았다. 비교적 안전한 서쪽 해안가에만 있던 내가 동쪽으로 방향을 틀자 외교부에서 보내는 문자가 몇 분 간격으로 계속 오기 시작했다. 내용은 당장 동쪽을 벗어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단 파묵칼레에 가야 했기에..... 조용히 핸드폰을 끄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2G 폰이라 전화, 문자 외에는 되는 게 없었기에 전원을 끈다고 여행을 못 할 건 없었다.
그렇게 데니즐리의 오토가르(버스 정류장)에 도착해서 다시 파묵칼레로 가는 미니버스에 올라탔다. 원래는 이즈미르에서 파묵칼레까지 당일치기를 하려 했지만 아침의 바퀴벌레 사태로 짐을 다 싸서 왔기에 파묵칼레에 도착해서 버스 티켓을 구매하는 곳에서 이스탄불로 가는 야간버스를 예매하고 거기에 짐을 맡겨 놓았다.
파묵칼레의 석회붕에 올라가기 전, 한식을 판다고 유명한 카페에 들러 신라면을 먹을까 비빔밥을 먹을까 고민을 하다가 비빔밥을 시켰다. 신라면을 시켰어야 했다. 고추장은 한국의 맛이었으나 안에 들어간 야채 모두가 한국의 맛이 아니었다. 그래도 든든하게 밥을 먹었다는데 의의를 두고 파묵칼레의 목화의 성, 석회붕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