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없던 시절의 유럽 여행 [9]
다음 날 아침 9시 반이 되기 전 트로이로 가는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고 트로이로 향하는 미니 버스에 올라탔다. 그런데 그 버스 안에서 누군가 나에게 한국말로 말을 거는 것 아닌가!
이스탄불에서 같은 호스텔에 묵으면서 같이 저녁도 먹었던 일행 중 한 명이었다. 터키에서의 마지막 일정으로 파묵칼레를 갈지 차나칼레를 갈지 고민을 하다가 더 가까운 차나칼레로 향해서 어제 밤늦게 도착했다고 했다. 그렇게 트로이로 가는 길 뜻하지 않았던 동행이 생겼다.
버스가 출발했고 트로이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험난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당시만 해도 중간에 비포장 구간도 있고 절벽길을 달려가야 했다. 그렇게 험난한 길을 뚫고 도착한 트로이 유적은 드넓은 평원 위에 위치해 있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 속 신화나 절설로만 여겨지던 도시가 진짜로 있었다고 믿고 인생을 걸고 트로이 발굴에 매달렸던 하인리히 슐리만은 이곳에서 유적을 발견했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물론 지금은 하인리히 슐리만이 발견했던 지층은 트로이 시대와 맞지 않는다고 한다. 트로이 유적 발굴이 바로 트로이 전쟁이 있었음을 증명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2025년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트로이 전쟁이 일어났다고 하는 시기에 투석기에 사용된 돌 수천 개와 화살촉, 불에 탄 흔적이 있는 건물, 급하게 매장된 흔적이 있는 인골 등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는 유적이 대거 발견되었다고 한다.
사실 뭐가 진실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곳에 고대 지중해 세계를 연결하던 무역 도시로서의 어떤 거대한 도시가 있었던 건 확실했다. 드넓은 평원 곳곳에 여러 시대가 섞인 유적이 끝없이 펼쳐져 있으니 말이다.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트로이 유적을 가볍게 둘러보는 데는 30분 정도면 충분할 것 같지만 나는 서양인 단체 관광객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다행히 영어권 여행자들이라 가이드가 영어로 설명을 해 줬기 때문이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니 내가 설명을 듣기 위해 졸졸 따라다닌다는 걸 모두가 눈치챘음에도 불구하고 친절한 여행자들은 앞으로 와서 같이 듣자고 자리를 양보해 주기까지 했다. 가이드도 웃으면서 따라오라고 해서 나는 대놓고 가이드 옆에 붙어 서서 투어를 함께 했다.
지금처럼 유적에 대한 정보도 실시간으로 검색해 볼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던 그때 친절했던 가이드와 여행객들 덕분에 트로이 유적에 대한 설명을 잘 들을 수 있었다. 물론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 있는 건 유적지에 대한 설명보다 친절했던 그들의 마음이었다.
최근에 트로이 유적지에 다녀온 사람들의 사진을 보니 발굴을 위해서인지 관광객들을 위해 주변을 정돈한 것 때문인지 유적지를 뒤덮고 있던 풀과 꽃들이 많이 사라진 것을 볼 수 있었다. 확실히 유적의 모습을 더 잘 볼 수는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내가 봤던 그날의 트로이 풍경이 더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천 년간 땅 속에 묻혀 있다가 세상밖으로 나온 트로이 유적을 다시 자연이 피워낸 풀과 야생화가 뒤덮고 있던 모습. 바람이 불 때마다 무성하게 자란 풀들이 흔들리는 소리. 슐레이만이 신화 속 트로이를 역사로 끌어냈다면 그날의 트로이의 모든 것은 현실 속 나를 다시 신화 속으로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