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없던 시절의 유럽 여행 [8]
원래 계획은 꽤나 야심 찼다. 이스탄불에서 차나칼레행 버스를 타고 도착한 후 숙소를 구하고 숙소에 짐을 맡기고 바로 트로이 유적지로 향한다. 트로이 유적지를 구경한 후 숙소로 돌아와 저녁식사를 하고 잠을 잔 후 다음 날 아침 다시 파묵칼레행 버스를 타고 떠난다. 완벽하고도 알찬 계획이었다.
차나칼레에 가기 위해서는 버스도 타지만 중간에 배도 한번 타야 했다. 지중해와 마르마라 해를 이어주는 다르다넬스 해협을 건너는 배에 버스가 올라타면 버스 승객들은 앞다투어 버스에서 내려 배의 갑판 위로 올라간다.
바다를 보고 시원한 바다 바람을 맞으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배를 어느새 맞은편 차나칼레에 도착해 있다. 이제 숙소를 찾아야 하는 순간이었다. 아예 예약도 하지 않고 온 상태라 일단 번화가 근처에 호텔이라고 적혀 있는 곳은 다 들어가 봤던 것 같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다들 방이 없다는 거다. 몇 군데 호텔에서 친절하게 퇴짜를 맞고 나자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러다 오늘 밤 잘 곳이 없는 거 아니야?
어쩔 수 없이 광장 한복판에 캐리어를 놓고 그 위에 올라앉아 가이드북을 펼쳤다. 가이드북에 호텔들이 많이 있는 거리가 표시되어 있었고 일단 찾아가 보기로 했다. 그리고 마침 새로 오픈한 듯, 외관이 굉장히 깔끔한 한 호텔이 눈에 들어왔다. 1박 가능한지 물었고 가능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심지어 가격도 1박당 50리라로 저렴했다. 당시 환율은 1리라가 700원 정도여서 1박에 35,000원 정도였다.
거기에 짐을 풀고 트로이 가는 버스 어디서 타냐고 물어봐 거기로 달려갔다. 트로이로 가는 버스가 출발하는 곳은 넓은 공터에 매점 2~3개가 덩그러니 있는 그런 곳이었다. 몇 시에 출발하는지 적힌 표지판도 없었다. 결국 매점에 가서 버스 언제 오냐고 물어봤지만 이스탄불도 아닌 차나칼레에서 영어가 통할리 없었다. 지금처럼 번역기를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라 가이드북 찢은 걸 꺼내 거기 있던 트로이 목마 사진을 보여줬다.
매점 아저씨는 내 영어를 한 마디도 못 알아들으셨고 영어도 할 줄 몰랐지만 계산기를 꺼내시더니 거기에 930이라고 쳐서 보여줬다. 처음에는 930리라? 버스값이 930리라 일리는 없으니 9.3리라라는 건가? 했지만.... 내일 아침 9시 30분에 다시 오라는 뜻이었다. 오늘 버스는 이미 끝났다고. 너무 늦게 왔다.
결국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타북쉬쉬(닭고기 케밥 샌드위치)를 하나 사 먹고 신맛이 나는 연두색 대추처럼 생긴 과일을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로 돌아와 과일을 먹으며 가이드북을 보며 또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다음 날 아침 일찍 트로이에 다녀온 후 이즈밀로 가서 숙소를 구하고 하룻밤 잔 후에 그다음 날 파묵칼레를 이즈밀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온다는 야심 찬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또한 지켜지지 못할 계획이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