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없던 시절의 유럽여행 [7]
역사를 좋아했던 내게 트로이는 마치 전설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러니 터키에 온 이상 차나칼레(트로이 유적이 발견된 곳)에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스탄불에서 차나칼레까지는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다고 해서 관광지에 있는 버스 회사 사무실에 가서 미리 버스표 예약을 했다.
터키의 버스 시스템은 그 당시 내게는 충격적일 정도로 독특했는데 일단 도심 외곽에 있는 버스 터미널까지 픽업/픽드롭 서비스를 제공해 줬다. 표 예매를 할 때 숙소 위치를 물어보고 몇 시까지 숙소 앞에 나오라고 하거나 직접 픽업하러 오기 어려운 경우 몇 시까지 어디로 오라고 알려준다. 그렇게 버스 회사에서 보내주는 작은 미니버스를 타고 버스 터미널에 가서 큰 버스로 갈아타는 시스템인 것이다.
그리고 일행이 아닌 이상 여자 옆에 남자 손님을 앉히지 않는다. 여자 옆자리 하나만 남아 있는데 마지막으로 온 손님이 남자면 그 자리는 그냥 비워놓고 출발한다. 그래서 예약을 하거나 빈자리를 알아볼 때도 손님의 성별을 꼭 확인했다. 이슬람 국가라 어쩔 수가 없나 보다. 물론 일행이라면 결혼 안 한 남녀도 그냥 옆자리에 앉혀 준다. 터키가 그 당시에는 그 정도로 꽉 막힌 나라는 아니었다.
버스에 타면 신기하게도 운전기사 외에 손님들의 짐을 넣어주고 표 확인을 하는 직원, 그리고 손님들의 간식을 챙겨주는 직원이 따로 탑승한다. 버스가 달리기 시작하면 빵과 과자, 음료 심지어는 아이스크림까지 나눠준다.
이스탄물을 떠나 한참 달리던 버스는 휴게소에 도착했다. 기사님이 뭐라 뭐라 말을 했지만 터키어로만 말해서 나는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그래서 얼른 화장실만 다녀오자는 생각에 화장실에 다녀와서 버스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어떤 어린 여학생이 와서 버스 밖으로 나오라고 계속 손짓을 했다. 버스에서 내린 나를 데리고 휴게소 안으로 들어가자 같은 나이 또래의 남학생이 있었는데 이 친구가 영어를 조금 했다.
이 착한 학생들은 여기에서 30분 이상 쉬어가니까 자기들이 싸 온 도시락을 같이 먹자고 했다. 그리고 터키식 홍차도 사줬다. 홍차는 내가 사주고 싶다고 했지만 자기 나라에 온 손님이니 자기들이 사 줘야 한다며 홍차까지 대접했다.
내가 터키어를 못 알아들어 혼자 버스에서 기다리는 것 같아서 불렀다고 하면서 도시락으로 싸 온 음식을 나눠주는 이 천사 같은 아이들은 이스탄불의 같은 동네에서 나고 자란 친구사이라고 했다. 차나칼레로 가는 중간에 들르는 갈리폴리에 있는 학교를 다니고 있어 학교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여자 아이는 조금 수줍음이 많았고 남자아이는 수줍음은 많지만 처음 만난 한국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 영어를 엄청 잘하는 건 아니었지만 어차피 나도 잘 못 하니 우리의 대화는 생각보다 편안하게 이어졌다.
버스가 다시 출발하고 갈리폴리 인근에서 이 학생들은 먼저 내렸다. 차나칼레까지 잘 가라는 인사를 하며 내린 아이들은 창밖에서도 오래오래 손을 흔들어 주었다.
트로이로 가는 길, 기대했던 것은 역사 속 트로이 유적이었지만 만난 건 따뜻한 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