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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chid Mar 09. 2016

안녕

2008



지금껏 내가 크게 변한 것이 없으니 우리도 크게 다를 것이 없겠지. 돌아보면 지나온 자리에 얼룩만 선연해. 무엇 하나 제대로 쓰이고 그려진 것이 없어서 목이 메어. 그리고 묻고 싶어. 넌 무엇을 기억하고 있을지, 네 기억과 내 기억의 접점은 어디일지. 아무것도 없어서 서러운지, 너무 많이 남아서 서러운지?



멀리서 네가 날 기다리는 모습을 발견했을 때 왜 이렇게 늦게 온 거냐고 묻고 싶었는데, 그 생각을 하기도 전에 발부터 내달려 버렸어. 도망가 버리면 평생 못 볼 거란 걸 아는데도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어. 물음만이 나를 따라오지 못하고 네가 날 기다리던 자리에 오랫동안 달라붙어 있는 것 같아.  


관계에 깊이가 없다면 그걸 꼭 붙들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줄곧 생각했어. 처음엔 쇠사슬 정도의 인연을 욕심냈지만, 실상은 거미줄처럼 덧없었지. 그때부터 지나치게 의미 있는 것으로 시작했다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전락하고 말 앞날들이 읽히기 시작했어.  

 





이런 마음으론 앞으로도 서로에게 아무것도 아닐 테고 무언가가 될 수도 없겠지. 당신이 내게서 무얼 찾으려 하든 난 무얼 보여 주는 일조차 할 수 없을 거야. 서로 기대하지 않고 서로 기대지 않아도 좋아. 어차피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 간만 보다 짜게 식거든 허울 좋은 핑계들로 안녕하면 그만 아니겠어. 그간 있었던 일 모두가 꿈이었다 말하고 재빨리 새로운 상대를 찾을 거라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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