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adise라는 제목의 드라마에서 '우리 나이에 행복이 다가오면 그게 맛볼 가치조차 없고 천박한 것이라도 붙들어야 한다.'라는 대사가 나왔다. 그 말을 입에 담을 수 있을 만큼 나이 들진 않았지만, 행복해하지 않겠다며 너무 뻣뻣하게 굴어왔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삶에도 영화처럼 정점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정작 그런 순간이 다가오고 나면 두려워져 고개를 돌려버리기 일쑤였다. 찰나의 행복 뒤에 밀려올 구름들이 너무도 뚜렷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결국 행복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은 순간들은 매번 여러 갈래로 뚝뚝 나뉘어 흩어져야 했다. 행복이 불행을 몰고 오는 것은 아닌데, 주저함과 두려움이 행복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매번 망쳤던 것이다.
사소한 일 하나하나에도 어린아이처럼 자지러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손가락질 하기도 받기도 쉬운 때에 행복함을 온전히 느껴보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이기적이고 철없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했던가를 조심스레 돌이켜 보고 싶다. 행복이 다가왔을 때 온 힘을 다해 품어보지 못했다고 해도 그 기억은 내 안에서 흐릿하게나마 빛나고 있다. 여름의 비 냄새, 해 질 녘의 피아노 소리, 물기 어린 풀을 밟는 소리, 수천의 나뭇잎이 흔들리는 모습, 식빵을 구울 때 나는 냄새, 좋아하는 사람들의 뒷모습, 손가락 사이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 선풍기 바람에 조금씩 말라가는 머리카락, 색색의 크리스마스 전구 같은 것들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