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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chid Mar 08. 2016

꿈에서도 취했다

minolta x-300




한 몸에 머리 둘이 달린 고양이와 그 고양이의 새끼 두 마리가 비바람이 몰아치는 쓰레기장에서 비를 피할 집을 만들어 달라며 울부짖고 있었다. 그들의 흰 털과 푸른 눈이 젖는 것을 그대로 지나쳐 갈 수 없었기에 쓰레기장을 뒤져 민들레 무늬의 침대 시트와 부서진 식탁의 기둥 따위를 골라서 최선을 다해 견고한 집을 만들어 줬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사람의 말을 할 줄 아는 흰 고양이 세 마리, 혹은 네 마리는 그들이 만들 수 있는 가장 견고한 밤을 내게 만들어 줬다.

그들은 민들레 무늬의 시트 위에서 그토록 행복해 보이는데, 나는 밤 속에서 계속해서 휘청대고 있다. 고무줄처럼 언제 끊어질지 모를 긴장이 팽팽히 당겨졌다 흐늘흐늘 풀어지길 반복하는 밤. 현기증을 견디지 못해 기어이 무너지고 마는 비와, 무너지는 불빛과, 무너지는 몸. 역시 나는 꿈속에서마저 취해 있는 것일까? 하지만 이 말도 되지 않는 총천연색 꿈속에서 건져지는 순간이야말로 악몽이 되고 말 것이라는 현실이 더 싫어,라고 생각한 순간 꿈에서 깨어나 버렸다.

다시 나를 가라앉혀 보려 하지만 자꾸만 열리는 눈과 귀는 어쩌면 좋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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