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경자 Mar 03. 2023

77일 차 : 아기에게 뽀뽀하지 말라구요?

요즘 아기가 날로 이쁘고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뽀뽀를 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요즘 육아 관련 카페에서 퍼져있는 정보가 있다. 바로 뽀뽀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특히 서로 입술이 닿는 뽀뽀를 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이유는 바로 유해 세균들이 아이에게 옮겨 갈 수 있고, 이로 인해서 직접적으로 충치가 유발될 수 있다는 것이 이유다. 그래서 아이가 클 때까지는 절대 입술 뽀뽀는 금지하라는 것이 골자다. 게다가 음식이 뜨거워서 부모가 호호 어주는 행위 만으로도 균을 옮길 수 있으니 몹시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이런 정보들은 대부분 기자들과 치과의사들에 의해서 전해진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아이를 위하는 마음으로 뽀뽀를 하고 싶은 욕구를 꾹 참고 이를 따른다. 일부 치과의사들은 요즘 유행하는 SNS에 짧은 동영상을 만들어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라며 트렌디한 배경음악에 맞춰 손가락을 까딱거리고는, 앞서 언급한 뽀뽀와 관련된 여러 행동들이 금기시된다는 것을 강조하기도 한다. 아기가 아주 어릴 때는 그럴만하다고 생각하다가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건 도저히 말이 안 된다. 그럼 내 아이가 클 때까지 나는 뽀뽀 한 번 못해본단 말인가.


나는 도저히 그럴 자신이 없는데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댓글을 내려보니 아니나 다를까 한바탕 대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초등학교 들어가는 아이를 둔 부모인데 한 번도 뽀뽀를 안 했다고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부터, 양가 할머니에게도 뽀뽀 금지령을 내렸다며 뿌듯해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양치질을 제대로 가르치는 것이 더 중요한 것 아니냐는 현실주의자, 어차피 걸릴 아기는 걸리게 되어 있다는 유전주의자까지 가득했다. 굳이 따지자면 나도 현실주의자이자 유전주의자에 가까웠다. 구더기가 무서워서 장을 못 담가도 유분수지, 그깟 충치가 무서워서 뽀뽀를 하지 말라니. 적금 들어서 임플란트를 해주고 말지.


아무튼 공대생 특성상 이런 건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다. 그래서 몇 가지 조사를 했다. 우선 부모로부터 충치 균을 옮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뽀뽀가 아니라, 그냥 대화하는 가운데서도 이루어진다. 그 치과의사의 말대로 뜨거운 음식을 호호 부는 행위로 전염되는 균이라면, 사실 이를 막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아이는 크면서 어린이집에서 수많은 아이들과 타액을 교환하게 되는데 집에서 뽀뽀를 금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효과가 있을 리가 만무하다. 기껏 뽀뽀를 참았는데 어린이집에서 옆집 철수 아빠의 타액으로 인해 옮겨진 충치균이 우리 아기의 입으로 들어간다면 더 억울할 것 같다. 차라리 내 균을 옮기는 게 낫다.


또 하나는 충치는 훨씬 더 다양한 원인에 의해서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충치를 예방하는 가장 중요한 행위는 바로 양치질이다. 건강한 양치질 습관만 잘 들여도 높은 확률로 충치를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부모와 아이가 양치질을 꼼꼼하게 잘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고, 이를 통해서 뽀뽀를 해도 충치가 발생하지 않을 확률이 올라간다. 균은 어떻게든 전달되는 것이기 때문에 균의 전염을 막는 것은 비효율적이며, 되려 건강한 생활습관을 통해서 균을 잘 이겨내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이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라는 점이다. 정확한 비유는 아니겠지만, 교통사고가 무서워서 자동차를 안타는 것보다는 부모는 안전하게 운전하고, 아이는 안전벨트와 카시트를 잘 착용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과 유사하다.


육아를 하다 보면 이와 유사한 상황을 종종 겪게 된다. 대부분 지나치게 단편적인 정보를 과잉적으로 해석해서 생긴다. 뽀뽀로 인해서 충치균이 옮겨진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뽀뽀를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편협된 것이다. 정말 의사라면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뽀뽀는 단순히 충치를 옮기는 행위가 아니다. 뽀뽀는 부모와 자식 간에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행위다. 충치라는 단편적 사실을 과잉적으로 해석해서 이 행위를 금지하기에 뽀뽀는 너무나 중요하며 아이의 정서 발달에 큰 영향을 준다. 아무리 치과의사라지만, 이런 종합적인 고려 없이 단순히 충치 때문에 뽀뽀를 하지 말라고 공개적으로 언급할 수 있는가.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화가 난 이유가 있다. 내가 충치 때문에 그렇게 아낀 뽀뽀를 나중에 남자친구랍시고... 아오... 속 터져.


한 유명한 소아과 의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육아는 6개의 면을 가진 큐브의 모든 면의 색을 맞추는 행위라고 한다. 한 가지 정보만 가지고 단편적으로 육아에 적용하면, 그 면은 한 가지 색상으로 통일될 수 있겠으나, 나머지 다섯 개의 면은 모두 엉망이 되기 쉽다는 것이다. 참으로 정확한 비유라고 생각이 된다. 편적인 정보의 사실여부도 중요하지만, 그 사실을 아이의 육아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는 여러 가지 우선순위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충치가 생길 위험은 일부 증가하겠으나 이는 다양한 생활습관으로 관리하고, 대신 그 리스크를 대가로 더 큰 심리적 안정을 줄 수 있다면, 뽀뽀는 권장되어야 할 좋은 행위는 것이다.


오늘부터 양치질을 하루에 열 번을 하고, 뽀뽀는 백 번도 더 하리라. 그렇게 다짐을 해본다. , 물론 아기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았다. 딸아, 아빠의 뽀뽀를 견디거라. 것은 너의 운명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64일 차 : 이모님과의 이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