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나를 대신해 울어주던 그 밤.
“…과장님, 과장님!”
나를 흔들어 깨우는 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분명 김대리와 대화 중이었는데, 순간— 시야가 좁아지며 기억이 끊겼다.
그녀의 부축을 받고 벽을 잡고 일어섰다.
처음이었다.
내 몸이 나에게 강력한 경고를 보내고 있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불면증이 찾아온 건 반년 전쯤이었다.
스트레스가 원인이라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수면제를 타서 먹었지만, 효과는 없었다.
몸은 축 늘어져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데, 막상 자리에 누우면 머릿속은 생생했다.
뇌가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눈을 감고 누워 있어도 오늘 있었던 일, 내일 해야 할 일, 즐거웠던 일, 슬펐던 일들이 영상처럼 흘러갔다.
수면제의 용량은 점점 늘었고,
잠을 못 자니 예민해지고,
예민하니 무기력해졌다.
그리고 오늘— 회사 한복판에서 실신했다.
그제야 마음 한복판이 서늘하게 식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나는 죽어가고 있는데, 내가 죽으면 그뿐인데.
미련한 나는 그로부터 반년을 더 버텼다.
더욱 지독해진 불면증과 공황이 내 삶을 갉아먹었다.
몸이 비명을 지르고, 정신이 무너지기 직전이 되어서야 결국 퇴사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내 자신을 탓했다.
한심하고,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다들 힘든데, 나만 힘든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이 정도도 견뎌내지 못하는 하자품 같은 인간이라고.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며 나를 짓눌렀다.
엉킨 생각들이 나를 바닥으로 끌어내렸고,
서서히 시커먼 그림자로 변해갔다.
잘해내고 싶었는데,
그때 조금만 더 해볼 걸.
머릿속은 그런 후회로 가득 차서,
다른 어떤 것도 들어올 틈이 없었다.
식욕이 없었고, 짜증이 났고,
몸은 바닥과 하나가 된 듯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집 안에 틀어박혀 구덩이를 점점 더 깊게 팠다.
나 스스로를 가두고,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며칠이, 몇 달이 흘렀을까.
서서히 숨통이 막혀왔고,
나는 작은 알약 하나를 목에 삼켰다.
‘그냥 사라질까. 나 하나쯤 없어져도 세상은 잘 돌아갈 텐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집 안을 정리했다.
그릇을 깨끗이 닦고, 필요 없는 것은 버리고,
다음 계절에 입을 옷을 꺼내 놓고, 이불을 빨아 햇볕에 말렸다.
냉장고를 비우고, 밑반찬을 만들었다.
아이에게 주려던 시금치 나물, 남편이 좋아하던 반찬들을.
그러다 문득 멈췄다.
그래, 이제 정말 미쳐버렸구나.
그때서야 내게는 아직 어린 딸과 남편이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내 안의 불안과 우울이 나를 망치고,
내 사람들까지 망칠 수도 있다는 걸,
그제야 인정했다.
이대로는 안 됐다.
무언가를 붙잡고, 다시 일어서야 했다.
수면제를 먹어도 깨버리는 새벽 두 시.
그 시간만 되면 나는 거실에 앉아
불 꺼진 창밖을 멍하니 바라봤다.
모든 게 멈춘 듯 고요했고,
적막이 짙어질수록 눈물이 흘렀다.
이 고통은 누구에게 전가할 수도 없는,
오롯이 나 혼자 짊어져야 할 일이었다.
이해시킬 수도, 이해해줄 사람도 없는 것만 같았다.
그러다 숨이 막히면 창문을 열고 심호흡을 했다.
눈을 감고, 깊은 숨을 들이쉬며 다섯 가지 물건의 이름을 떠올렸다.
초승달,
교회의 붉은 십자가,
따뜻한 머그컵,
핸드폰 배경화면,
냉장고 안의 치즈케이크.
운동을 하고, 햇볕을 쐬고,
친구를 만나 웃고,
엄마와 밥을 먹으며 괜찮은 척했다.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지 않았지만,
아름답다고 말했다.
그날도 잠에서 깨어 노래를 틀었다.
평소 잘 듣지도 않던 클래식이 듣고 싶어
랜덤 재생을 눌렀다.
그때 들려온 첫 음절에 심장이 내려앉았다.
핸드폰을 들어 곡의 제목을 확인했다.
Chopin – Ballade No.1.
뜻도 모르고, 가사도 없는데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솟구쳐 올라왔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왔다.
볼륨을 높이고, 그 곡을 반복해서 들었다.
새벽이 밝아올 무렵,
그 음악은 귀에 익어갔고,
어느덧 나를 위로해주고 있었다.
연주자의 호흡까지 녹아 있던 그 음악 속—
깊게 들이마시고, 쉬어내던 한숨 같은 숨소리가
왜 그렇게 아름답던지.
곡의 끝을 향해 달려가던 그 숨소리가
살아내고자 하는 의지 같았다.
그 새벽, 노트북을 켰다.
나조차 모를 감정을 글로 써 내려갔다.
배운 적도, 잘 쓰는 방법도 몰랐지만
떠오르는 마음을 한 자 한 자 옮겨 적었다.
그러다 신기하게도
막혔던 숨이 조금씩 쉬어졌다.
욕심이 생겨 인물도 만들어보고,
이야기를 써보기 시작했다.
그게 너무 즐거웠다.
새벽에 깨어도 두렵지 않았다.
나에게 할 일이 생겼다는 사실이
눈물 날 만큼 기뻤다.
손끝에 남은 잔열로 글을 쓰며 생각했다.
나는 지금 살아있구나.
죽음 대신 단어를 고르고,
절망 대신 문장을 적는 일.
오랜만에 얼굴에 웃음이 스쳤다.
낯설지만, 그게 지금의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