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내고 싶어졌다

새벽을 건너, 나로 돌아오는 이야기

by 해리

불면의 날들이 이어졌다.

밤은 두려웠고, 새벽은 여전히 무서웠다.

잠들지 못한 날이 몇 달째 쌓이자,

몸이 먼저 무너지고, 마음이 뒤따라 내려앉았다.


그즈음 남편의 할머니께서 조용히 소천하셨다.

고통 없이 가족들 고생 안 시키고 가셨다며 사람들은 호상이라 했다.

사흘 내내 머물던 장례식장엔

울음과 웃음이 뒤섞인 소리가 낮게 깔려 있었다.


그 속에서 무언가 내 가슴을 세게 두드렸다.

언제까지고 살 수 없단 걸, 다시 한번 실감했다.

‘오늘,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젊을 때.’

그 말이 나이 마흔에 이르러 비로소 가슴 깊이 박혀 들어왔다.


죽음이란 건 무엇일까.

나는 내 죽음을 초연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나는 나에게 미안함 없이 살아왔던가.

죽음은 얼마나 고요한 일일까.

그 생각을 매일 밤 곱씹었다.


이튿날 엄마가 전화를 걸어왔다.

“요즘은 좀 자니? 어떡하니. 하필 왜 날 닮아서.”


쉰 즈음의 엄마는 갱년기와 불면증으로 고생하셨다.

나는 갓 스무 살이었다.

해방감에 젖어 있던 내게 엄마의 힘듦은 관심 밖의 일이었다.


‘잠을 왜 못 자? 머리만 대면 바로 잠들 텐데.’

‘조금만 더 자고 싶어도 바빠서 못 자는 사람도 많은데…’

그땐 엄마의 외로움을 이해할 여유가 없었다.

무뚝뚝하고, 못난 딸이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나,

나는 엄마의 그 시절을 고스란히 돌려받았다.

잠을 자지 못해 새벽마다 눈을 떴고,

몸은 멀쩡한데 정신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고 나서야—

그때 엄마도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며칠 후, 결국 엄마를 보러 갔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엄마가 나를 끌어안았다.

말 한마디 없이 꽉 껴안은 품에서 콧등이 시큰거렸다.

몇 달 만에, 숨을 제대로 내쉴 수 있었다.


그랬구나.

엄마를 그때, 안아줬다면 좋았을 걸.


그날 엄마는 정성껏 죽을 끓여주고,

식탁 위 내 밥그릇을 몇 번이나 바꿔주셨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엄마는 내 얼굴을 바라보며 안쓰럽게 웃으셨다.

그 미소가 그제야 마음 깊숙이 닿았다.


일흔의 엄마는,

사랑하는 법을, 그리고 사랑받는 법을

마흔의 나에게 다시 가르쳐 주었다.




어느 날,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오래도록 곱씹던 말이었다.


“나, 이제 나를 위해 살아보고 싶어.”


그 한마디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남편은 무던한 사람이었지만, 다정하진 않았다.

그래서 이 말이 어떻게 들릴지 걱정됐지만

그는 평소처럼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 그럴 때도 됐지. 그동안 고생했잖아.”


나는 놀란 눈으로 남편을 바라봤다.

여전히 무덤덤한 표정이었지만,

그 말속엔 따뜻한 온기가 묻어 있었다.


“… 정말?”

“응. 그동안 아이 키우고, 살림하고, 일까지 했잖아.

이제 좀 쉴 때도 됐지.”

“그럼 나,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도 돼? 물론 일 순위는 가정이야.”


남편은 웃으며 내 등을 툭툭 두드렸다.

“내가 당신 봐 와서 알잖아. 어차피 알아서 잘할 거면서.”


고개를 숙이며 작게 웃었다.

눈가가 시큰거리고, 시야가 일렁였다.

남편의 얼굴을 오랜만에 오래 바라봤다.


스물일곱에 만나 스물여덟에 결혼한 우리.

그랬구나— 나는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며

불같이 사랑했었지.


남편을 끌어안고 조용히 말했다.

“고마워.”




며칠 뒤, 폭우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무작정 차를 몰고 나왔다.

공황이 올까 봐 두려웠지만, 그날만큼은 괜찮아야 했다.


편도 두 시간 거리의 콘서트장.

지독했던 시간 동안 내 마음을 붙잡아 준 밴드의 공연이 열리는 날이었다.


가기 전까지도 망설였다.

그러다 문득, 짧은 생각이 스쳤다.

오늘이 내 마지막이라면?

난 내 삶을 나대로 살아본 적이 있나?

그렇다면 오늘은, 나로 살아보자.

누구의 엄마도 아닌, 내 이름 석자로.


저녁 8시 공연인데 아침 9시에 도착했다.

콘크리트 벽이 숨을 틀어막았고,

파도처럼 일렁이는 사람들 속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그때의 나는 대인기피증도 있었지만—

차 안에 갇혀 꼼짝 못 하는 그 시간마저 행복했다.


몇 시간만 더, 몇 분만 더.

내 안의 불안이 이 순간을 이겨내길 바랐다.


공연이 시작되자, 숨을 삼켰다.

무대 위 사람들은 온몸으로 반짝이며 살아 있었다.

땀과 숨, 그들의 생이 음악 속에서 터져 나왔다.


청각으로만 듣던 음악이

오감을 통해 들어오자, 감전된 듯 전율이 흘렀다.

심장이 미친 듯 뛰었다. 조명이 터지고, 드럼 소리가 가슴을 쳤다.

기타 현이 울릴 때마다 내 안의 어둠이 조금씩 부서졌다.


그날, 무채색이던 내 일상에 팔레트가 펼쳐졌다.


몇 달 만에 처음으로 —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죽음을 고민하던 동안,

이들은 살아내려 애쓰고, 연습하고,

결국 무대 위에서 타올랐구나.


그 노래가 너무 눈부셔서 엉엉 울었다.

그들의 살아 있음이 내 심장을 흔들었다.

살아 있다는 게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그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운전대 위로 눈물이 쏟아졌다.


“살아 있어서 이걸 봤구나. 살아 있길 잘했다.”

그 문장이 내 안에서 계속 울렸다.


그날 이후 새벽이 전보다는 덜 무서웠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다시 살아가기 시작했다.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삶은 버티는 게 아니라

누군가를 사랑하며 계속 나아가는 일이라는 걸.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살아내고 싶어졌다.

나를 위해. 그리고 나라는 사람으로.


그날의 음악과, 엄마의 품과, 남편의 사랑—

그것들이 내 안에 다시 숨을 불어넣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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