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공지능을 이야기할 때 '사람처럼'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를 좋아한다. 인공지능 기술이 얼마나 발달했는지 판단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척도는 인공지능이 주어진 일을 얼마나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위화감 없이 해내느냐다. 인간은 자신들과 닮은 존재를 창조해 내기를 원하고, 인공지능 속에서 스스로의 모습을 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의 아버지로 불리는 앨런 튜링(Alan Turing)이 '생각하는 기계'를 증명하기 위한 실험으로 제안한 튜링 테스트 역시 '인간과의 유사성'을 기준으로 기계의 지능을 측정한다. 튜링 테스트는 매우 간단한데, 질문자가 텍스트 대화를 통해 답변자 A와 기계 B와 대화를 나눈 뒤에 어느 쪽이 사람인지 구분해 내는 실험이다. 기계 B가 만약 질문자를 속이고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믿게 만드는 데에 성공한다면 기계는 튜링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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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링은 '생각'이나 '기계'의 정의에 대한 철학적이고 난해한 논쟁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보다는 그저 기계가 정말로 생각할 줄 안다면,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믿게끔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기계가 작동하는 구조와 원리를 이해하고 우리 인간의 사고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작업을 하기보다는 그저 '인간스러운' 답변을 뱉어내는 것만으로도 합격인 것이다.
반면에 우리 인간은 인공지능을 떠올릴 때 '무미 건조한' '감정이 없는' 등과 같은 문장을 생각해내기도 한다. 한 발 더 나아가 인공지능을 뭐든지 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그 무언가로 여기기도 한다. 이처럼 인공지능을 신격화하는 인간의 행동은 종교와 신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실재한다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는 패턴과 매우 닮아있다.
유발 하라리는 그의 저서 사피엔스에서 '실재하지 않는 허구의 개념을 사실이라고 믿는 능력'이야말로 인류가 문명을 꽃피울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능력이라고 말한다. 법, 종교, 돈, 인권 등등 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을 사실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에 발전할 수 있었다. 만약 인간이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의심 많은 원숭이였다면 우리 인류는 지금 누리는 모든 것들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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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멋대로 상상하고 만들어낸 대상에 우리 스스로를 투영해 보기도 하고, 혹은 신격화하여 멋대로 숭배하기도 하는 능력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능력이다. 상상하는 원숭이인 우리 인류가 창조해 낸 개념이라는 점에서 인공지능은 종교를 비롯한 여타 허구의 개념들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인공지능 역시 인간 스스로가 상상 속에 만들어낸 존재에 우리 스스로를 비추어보는 재미있는 '그림자놀이'다.
인공지능은 1950년대 다트머스 회의에서 존 매카시가 '인공지능'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때부터 이미 현실로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전에 누군가 '사람처럼 스스로 걷고 말하는 기계'를 상상했을 때부터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은 흥미로운 기술이다. 인공지능은 다름 아닌 우리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