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세이건과 유발 하라리의 공통점
20대의 어느 날,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창백한 푸른 점' 그리고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와 '호모데우스'를 밤새워 연달아 읽으면서 느꼈던 떨림을 기억합니다. 저는 칼 세이건 같은 과학자도 아니고, 유발 하라리와 같은 역사학자도 아니지만 마치 우주와 지구 전체의 역사를 우주에서 내려다보듯이 부감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작가들의 스토리텔링 능력에 감탄하며 책을 읽어 내려갔던 기억이 납니다. 책을 읽고 있던 그 순간만큼은 완전한 몰입상태에 들어가 배가 고픈 것도 몰랐고, 시공간도 무의미한 듯 느껴졌습니다.
'칼 세이건'과 '유발 하라리'는 각자 분야는 다르지만 과학적, 역사적 사실들을 재구성해 자신만의 독특한 견해로 엮어내는 특유의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독자들을 매료시킵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그들이 불필요하게 난해하거나 이상하고 현학적인 말을 쓰지 않고 매우 평이하고 읽기 쉬운 문장을 구사한다는 점입니다.
'칼 세이건'과 '유발 하라리'처럼 쉽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나의 분야에서 사람들에게 인사이트와 영감을 줄 수 있는 글을 쓰자. 제가 처음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했던 생각들입니다. 읽고 나면 새로운 관점들을 알게 되는 것뿐 아니라 뭔가 전율이 돋고, 아드레날린이 솟구치고,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그런 글들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글에 인사이트가 있으려면 사람들과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고, 시의성이 있는 동시에 남들이 생각해내지 못한 부분을 발견하는 창의력을 발휘할 여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은 너무 진지하기만 하지도 않고, 너무 가볍지만도 않은 그 중간 어딘가에 있기 때문이죠.
그러한 의미에서 제가 일하고 있는 인공지능 분야의 다양한 기술들을 남들보다 빨리 접할 수 있었던 저는 참 운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이야 말로 시의성이 있으면서 동시에 창의력을 발휘할 여지가 충분히 있는 분야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인사이트 있는 글을 써내기 위해서는 남들과 다른 관점을 제시하기 전에 먼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장 먼저 어떻게 사람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인공지능같이 생소한 분야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려면 어려운 내용도 쉽게 풀어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제가 가지고 있는 인공지능에 대한 테크니컬 한 지식들을 비전공자도 알기 쉽게 정리해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어렵고 난해하게만 느껴지는 인공지능의 원리를 현업의 관점에서 쉽게 써보자는 생각에 시작한 글쓰기는 저에게 생각지 못한 많은 기회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우선 가장 큰 자산은 지식의 강화였습니다. 집필 활동을 하면서 기존에 알던 지식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게 되면서 제가 가지고 있던 지식들이 더욱 강화된 것입니다. 지식이 강화되면서 본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선순환이 일어났습니다.
다음으로 출간과 기고의 기회입니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뒤에 감사하게도 네 번의 출판 제안을 받았으며 여러 개의 플랫폼에 인공지능과 관련된 글들을 기고하게 되었습니다. 난생처음 대학교 강단에 서서 짧게나마 강연을 해보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개인적으로 많은 성과를 이루었지만,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우선 입문자를 위한 테크, 교양서적을 집필하면서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어쓰는 것이, 쉬운 내용을 그럴듯해 보이게 쓰는 것보다 백만 배는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좌절했습니다. 저는 대학교 교수님도 아니고 그만큼 엄청난 식견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남들이 보기에도 쉽고 평이한 글을 쓰는 것은 여전히 어렵게 느껴집니다.
다음으로는 제가 쓰고자 하는 글이 단순히 지식의 요약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강박 때문에 글이 잘 안 써지는 는 현상을 겪기도 했습니다. 글 요약과 개념 설명은 이제 챗GPT가 인간보다 훨씬 더 잘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기술적으로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어쓰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관점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테크니컬 한 요소를 소개하는 글을 쓰다 보면 팩트와 상상력을 넘나드는 순간을 겪게 되면서 혼란에 빠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전 단어에 근거해 다음 단어가 올 확률을 예측하는 GPT의 작동 원리를 생각해 볼 때, 저 스스로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관점이야말로 작가로서 제가 놓지 말아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2024년 한 해는 여러모로 초심자의 행운을 너머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한 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한 해동안 많이 배웠고 부족한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5년에도 글쓰기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