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2020년 12월의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다. 이른 새벽, 나는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하러 가는 산악인이라도 된 듯 완전무장을 하고 집을 나섰다. 두꺼운 옷을 겹겹이 껴입고 코트를 걸치고 목도리까지 두르니 온 몸을 따뜻하게 감싸 오는 온기가 느껴졌다.
아직 어둑어둑한 서울의 새벽 거리에는 고요함과 분주함이 공존하고 있었다. 일찌감치 하루를 시작하는 부지런한 상인들의 말없는 인사를 뒤로한 채, 나는 부지런히 서울 N타워가 있는 남산 정상으로 향했다.
남산 케이블카 탑승장 입구에서 정상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이십 분 남짓. 영하의 날씨에도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서울 곳곳의 부드러운 산의 능선과 고층빌딩들이 어우러진 웅장한 풍경이 펼쳐졌다. 서울에서 보낸 지난 네 달간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런저런 생각들과 서글픔 그리고 아쉬움을 뒤로한 채 나는 바쁘게 또다시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숙소에 들러 호스트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지난밤 싸놓은 짐들을 주섬주섬 챙겨 서울역으로 향했다.
"어디 여행 가시나 봐요?"
택시기사 아저씨는 끌고 온 거대한 캐리어와 배낭을 보고 의아한 듯이 물으셨다.
"네, 북유럽에 잠시 다녀오려고요."
아저씨는 신이 나서 물으셨다.
"우와, 해외여행 가시는 거예요? 요즘 코로나 때문에 아주 난리던데 비행기가 뜨기는 하나요?"
여행을 떠나는 나보다 열 배는 더 들떠 보이는 택시 아저씨는 서울역으로 향하는 내내 나에게 질문공세를 퍼부으셨다.
"너무 멋지네요! 진짜 부럽다 젊은이. 그럼 즐거운 여행 하고 오세요!"
나는 그렇게 택시 아저씨의 뜨거운 배웅을 받으며 마치 콜로세움으로 들어가는 검투사라도 된 듯 의기양양한 기분으로 서울역에 드러 섰다.
저 멀리서 그녀가 익숙한 캐리어 두 개를 힘겹게 끌고 도착장 게이트를 통해 나오고 있었다. 삼주만에 만난 그녀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공항철도로 향하던 길에 우리는 잠시 멈춰 이야기를 나눴다. 가끔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지만 우리는 될 수 있는 한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툭 던진 시답지 않은 농담에 우리는 서로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나에게는 기쁨과 환희의 시간이다. 꽝꽝 언 얼음이 녹아내리듯 그렇게 우리 둘 사이의 냉랭한 기운도 점차 거쳐갔다. 그렇게 냉전이 끝났다. 긴장감과 냉기가 사라진 자리를 서로에 대한 반가움과 새로운 여행에 대한 설렘이 메워주고 있었다. 기분 좋은 설렘을 느끼며 우리는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공항철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