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노을 그리고 우리
벌써 1년이 지났지만 발리 응우라이 공항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의 그 순간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찬바람이 아직 쌀쌀하던 도쿄의 3월. 나는 겨우내 입던 두꺼운 코트를 그대로 걸친 채 발리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었다. 10년간의 일본생활을 정리하느라 노곤함에 찌들어있던 나는 불과 여섯 시간 후 눈앞에 펼쳐질 미지의 세계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잠에 빠져들었다.
온몸을 감싸 오는 따뜻한 공기가 나를 기분 좋게 맞아주었다. 푹푹 찌는 한여름의 날씨에 두툼한 코트를 걸친 채 배낭을 메고 터벅터벅 공항을 걸어 나오는 나를 보고 현지인들은 마치 낯선 시대와 장소에 불시착한 시간 여행자를 보고 있는 듯 신기하다는 듯한 눈길을 보내왔다.
발리에 오기 전 꾸따 해변은 스미냑과 레기안 해변과 함께 발리에서도 관광객들이 많이 찾기로 유명한 곳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더믹 시대의 발리 꾸따 해변은 어색하리만치 너무나도 한적했다.
해변이 삶의 터전이자 관광객이 수입원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현지인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바다에게 사람들이 찾지 않는 한적한 시간만큼 사치스럽고 여유로운 시간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사람 없는 한적한 해변은 자연이 마련해준 선물 그 자체였다.
밤낮없이 너울거리는 파도와 따스한 햇볕 그리고 오렌지빛 하늘과 석양이 모두 온전히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파도를 타고 수평선을 향해 한없이 나아가는 서퍼들의 모습이 간간히 눈에 들어온다. 이 모든 디테일이 만나 꾸따 해변의 풍경을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게 해주고 있었다.
바다가 하루하루 일상의 중심이던 한가롭던 그때를 추억해본다. 아침에 일어나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하던 일은 스쿠터를 타고 가장 가까운 바다로 나가 일출을 보며 하는 아침 운동이다. 고요한 아침 해변을 운동장 삼아 마음껏 달리고 나면 몰려드는 기분 좋은 피로감으로 하루를 여유롭게 시작할 수 있었다.
근처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으면서 여유롭게 일을 하고 시간이 조금 남으면 빌라에 딸려있는 수영장에서 느긋하게 한낮의 햇살을 즐긴다. 오후 다섯 시쯤 일찌막히 일을 마치고 우리는 또다시 스쿠터에 올라 서둘러 해변의 선셋 포인트로 향한다.
샛노란 태양이 점점 바다를 향해 가라앉기 시작한다. 하늘은 푸른색에서 점점 오렌지빛으로 그리고 또다시 보랏빛으로 물들어간다. 우리는 그저 그 광활하고 아름다운 자연의 신비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해가 바다 밑으로 완전히 가라앉은 지 한참이 지났지만 우리는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넋 나간 사람들처럼 한참 동안 바다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간들이 사무치게 그리워지기 시작한 것은 발리를 떠나던 그 날부터였다. 다음에 또다시 발리에 간다면 돈과 커리어 그리고 사업 같은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생각들이 우리의 선물을 방해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