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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ry Aug 05. 2019

저는 매일 좌절하는 중입니다.

샌프란시코에서 보내는 세 번째 편지

샌더스 길거리 캠페인 중인 otto와 나.


샌프란시스코에서 보내는 세 번째 편지.   

저는 매일 좌절하는 중입니다. 


      

 서울은 많이 덥지요. 종종 한국 뉴스를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를 죄송한 마음이 드는 요즘입니다. 아무래도 전 직장 때문일까요. 일본의 경제보복 사태로 정신없이 대책을 세우며 밤낮없이 일 하고 있을 옛 동료들이 눈에 밟히나 봅니다. 치열한 싸움이 예상됩니다. 쉽지 않겠지요. 그러나 지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발언이 어느 때 보다 뜨겁게 느껴지는 것은 저뿐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폭염 소식까지 더해 어느 때보다 치열한 여름을 보내고 계실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이 편치는 않습니다. 저도 그 미안한 마음을 덜고자 일본 음식이나 물건은 사지 않고 있습니다. 이 곳 샌프란시스코에서 소심한 불매운동에 동참하는 중이에요. 


 참 시간이 빠르네요. 샌프란시스코에 온 지 벌써 3개월이나 되었습니다. 그 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먼저 정말 우여곡절 끝에 이사를 했습니다. 사실 쉽게 구할 수 있었음에도 자발적 고생을 한 셈이지요. 한국인 유학생이나 한인 분들이 같이 살자는 제안도 해 주셨는데 기필코 미국인과 함께 살며 프렌즈 한편을 찍어 보겠다는 그 로망 때문입니다. 그게 뭐라고. 하하하. 이메일을 한 100여 개 보냈을까요. 영어도 잘 못하는 동양인 남자에게 방을 쉽게 내줄리 없지요. 처음 생활하는 외국 생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어려움을 톡톡히 느끼는 중입니다. 프렌즈는 커녕 홈리스로 전락할 뻔했다는... 처음 외국에 나가 고생하다 자리 잡아가는 어떤 영화의 뻔한 스토리가 제 이야기가 될지는 몰랐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샌더스캠페인팀 모임에서 만난 미국인 친구에게 방 찾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하니 너무 쿨하게  자기 집으로 들어오라고 제안을 하더군요. 결국 지인 찬스로 구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습니다.



그렇게 저는 샌프란시스코에 온 지 2개월, 
미국인 친구 3명과 어울릴 거 같지 않는(?) 동거 라이프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하우스 메이트는 크리스, 줄리안, 오토입니다. 크리스는 현재 샌프란시스코 대학교의 심리학과에 다니고 있으며 방학중이라 동네 펍에서 바텐더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성격이 무뚝뚝 하지만 막상 이것저것 물어보면 츤데레처럼 잘 설명해 줍니다. 저와 가장 친한 친구 오토는 슈퍼바이저 후보 딘 캠페인 오가너이져, DSA(San Francisco 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 공동의장입니다. 워낙 열정적이고 활기가 가득한 친구이다 보니 그 친구와 같이 다니다 보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하루는 저를 데리고 동네 구경을 시켜 준다고 하더니 가는 곳곳마다 아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느라 한나절이나 걸렸습니다. 줄리안은 뉴욕의 콜럼비아 대학교를 졸업하고 오토와 함께 딘 캠페인에서 언론 및 공보 담당을 하고 있습니다. 줄리안을 보고 있으면 어벤저스 토르가 생각나는 외모에 목소리까지 두꺼운 바리톤 발성이라 중후한 멋이 있는 친구입니다. 워낙 게임을 좋아하는 친구라 새벽 3-4시까지 플레이스테이션을 붙들고 있습니다. 미국 특유의 개인주의와 캐릭터가 분명한 이 셋은 뭔가 맞지 않을 것 같지만 오묘하게 꽤 어울리는 조합입니다. 이 셋을 보고 있으면 마치 영화 속 캐릭터들을 보고 있는 느낌을 받아서 보고만 있어도 재미가 있습니다. 어쨌든 적당한 케미를 자랑하는 셋 친구들의 동거생활에 미국인도 아닌 멀리 한국에서 온 동양인 남자 하나가 끼어든 셈이 되었습니다. 


과연 저는 이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

 다들 바쁘다 보니 저녁이 되어야 얼굴을 볼 수 있어요. 처음 한 일주일은 방에서 나가는 게 영 쉽지 않더라고요. 워낙 프라이버시를 중요시 여기는 문화라 그런지 방에 들어가 있으면 전혀 간섭을 안 합니다. 한 일주일은 집에 오면 방에서 잘 나가질 않았습니다. 왜 이리 제 방 문이 크게 느껴졌을까. 거실에서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막상 대화를 나누다 끊겼을 때 그 침묵은 생각만 해도 손발이 다 오그라 들더군요. 제 방 문을 열고 나가는 것은 나름 큰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다 일찍 들어온 어느 날 혼자 거실에서 치킨과 맥주를 먹고 있는데 퇴근하고 들어온 오토와 줄리안이 자연스럽게 인사하며 치맥에 합류하더군요. 결국 우리가 입이 터진 결정적인 순간은 치맥 때문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지난 일주일 동안의 어색했던 동거생활은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마치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흑백 TV에서 칼라 TV로 바뀌는 느낌이랄까요. 이제는 매일 저녁마다 맥주 한 캔에 한두 시간씩 스몰 톡을 나눕니다. 무슨 질문 하나를 하면 오토는 혼자서 30분을 떠듭니다. 오토는 한국영화를 좋아해서 송강호가 출연하는 대부분의 영화를 봤다고 자랑합니다. 택시 드라이버, 괴물, 설국열차, 효자동 이발사, 조용한 가족 등등 어느 날은 하루 종일 붙잡고 택시 드라이버 이야기를 하더군요. 특히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 관심이 많아요.  한국을 가면 광주를 가고 싶다고.. 대신 택시를 타고 가고 싶다고 하하하하. 어쨌든 미국인 세명과의 동거 라이프는 나름 재밌는 에피소드들이 만들어지는 중입니다. 


DSA(San Francisco 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활동가이자 DEAN 캠페인을 함께 하고 있는 OTTO와 Julian

 

지난 몇 달 미국 생활을  돌아보니 단 한 번도 쉽게 넘어간 적이 없었던 거 같아요. 무엇인가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듯 한 고비 한 고비를 겨우 넘어가는 중이지만 나름 재밌게 적응하는 중입니다.  문득 지난 3개월을 리뷰하면 떠오르는 한 문장이 있습니다.


'저는 매일 좌절하는 중입니다'


때로는 몇 번을 말해도 제 영어 발음을 못 알아듣는 미국인 친구에게 좌절하고, 

때로는 집을 구하기 위해 100개의 메일을 보내도 답장 하나 없는 이메일에  좌절하고, 

때로는 한국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동료 친구들의 소식을 들으며 좌절하고,

때로는 샌더스 캠페인 모임에 나가서 50%는 무슨 말인지 몰라서 좌절하고, 

때로는 은행에서 통장 하나 개설하는데 2시간이나 걸려 좌절하고, 

때로는 폰 배터리가 나가서 10분이면 갈 곳을 1시간이나 헤매서 좌절하고,

...


그렇게 크고 작은 수많은 좌절들을 경험하는 지난 3개월이기도 했습니다.

낯선 도시에서 아주 작은 것조차 무엇 하나 쉽게 할 수 없는 이방인으로서의 삶. 

모든 것들이 익숙지 않는 풍경에서 오는 그 위압감,

공기조차도 반기지 않는 것 같은 그 차가움,

왜 타국을 나가면 고생하는지 새삼 느끼는 요즘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제가 좌절하고 있는 이 기분이 좋습니다. 

좌절하고 있다는 것은 익숙함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있다는 또 다른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10년 정도 한 분야에서 일을 하게 되면 어느 시점에서 성장이 멈추는 것을 실감합니다. 지난 경험에서 성공했던 방식, 익숙했던 방식, 그리고 해오던 방식으로 적당히 일을 처리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일은 쉽지만 그 자리에 멈춰 있는 자신을 마주칩니다. 때로는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닌 다른 영역까지 잘할 수 있다고 착각을 하게 되고 결국 일을 망가뜨리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되지요. 어설픈 경험이나 잔재주로 일 하다 금세 바닥이 들통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진짜 실력을 키워야 할 시기에 적당히 일 하는 습관이 고착화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미국에 산다고 영어를 무조건 잘하는 것도 샌프란시스코를 잘 아는 것도 아닙니다. 한국 사람들하고만 어울리면 영어를 쓸 일도 거의 없고 미국의 문화를 제대로 접하기도 어렵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그 편안함과 익숙함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한국을 잠시 떠나기로 마음먹은 이유 중에 하나는 그 익숙함으로 잠시 작별하고 하고 싶었습니다. 나도 내가 모르는 내 안의 감정들을 발견하고, 그로 인해 지난 30년 동안 살아오던 방식과 습관으로 고정되어 있던 저의 정지된 정체성을 깨트리고 싶었습니다. 


저는 지금 나도 모르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제 안의 익숙한 감정들이 어떤 계기로 불안함이라는 감정과 맞닥뜨리고 소용돌이치는 상황을 만들려고 노력 중입니다. 하루에 한 번 아주 작은 것이라도 새로운 시도를 해보자고 다짐하는 중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외국인 하우스메이트와 사는 것도, 샌더스 캠페인팀 모임에 나가는 것도, 또한 딘 캠페인에 자원봉사 활동을 하는 것도 그러한 낯선 환경에 부딪치고 있는 시간들입니다. 때로는 한국인 유권자들이 있어서 선거 공약이나 유세 메시지를 한국어로 번역해주는 일을 하기도 하고, 길거리 캠페인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또는 매월 열리는 DSA 정기회의에 참석하며 그들이 어떻게 의사 결정하는지, 어떤 의제를 다루는 지를 지켜보는 것도 새로운 경험들입니다. 항상 저의 시도가 성공적이지만은 않습니다. 때론 DSA모임에 나가면 거의 50%는 무슨 말인지 모르고 앉아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저에게 질문을 하면 급 얼굴이 빨개지고 당황스러워 어찌할 바를 모를 때가 있습니다. 하하하 그저 웃을 수밖에요. 



샌프란시스코는 11월 슈퍼바이저 선거가 있다. 가가호호 집을 방문해서 딘을 알리는 선거캠페인 중이다.   


DSA 는 매달 정기회의를 개최하여, 멤버들들과 함께 의제를 토론하고 방향과 정책을 결정한다.  


 나의 하우스메이트 otto는 DSA 공동의장이자 슈퍼바이저 딘 캠페인 매니저로 활동하고 있다.  8월에 있을 전국 DSA대표단 컨퍼런스 펀딩 요청을 하는 스피치를 하는 중이다


 그럼에도 하루에 단 한 가지 그것이 크든 작든 낯선 환경에 자신을 던져 놓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은 제가 샌프란시코를 대하는 하나의 태도로 자리 잡아가는 중입니다. 그런데 그거 아세요? 아무리 이 좌절의 순간을 즐기겠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을 지라도 그 순간을  마주칠 때마다 왜 항상 얼굴이 빨개지고 당황스러울까요. 매일 좌절하더라도 그 좌절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익숙해지지는 않는 거 같습니다. 그래서 나름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해요. 갈까 말까 할 때는 가고, 할까 말까 할 때도 하고, 말할까 말까 할 때 말합니다. 어쨌든 하루에 한 번은 새로운 시도를 해보자. 낯선 환경에 부딪쳐 보자. 좀 창피하면 어때! 아는 사람도 없는데 말이야! 지난 샌프란시스코 3개월은 저에게 좌절하는 법을 알려주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앗, 그리고 한 가지 새로운 소식을 전해 드리면  어느덧 제 자신과 약속했던 3개월의 적응기간이 끝나서 본격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시작합니다. 매달 보내 드리는 편지에 샌프란시스코 혁신사례도 함께 공유합니다. 어떤 특정한 주제를 쫓기보다는 그 순간순간 보고 싶고, 쓰고 싶은 사례들을 찾아 나서보려 합니다.  감사하게도 최근에 서울시의 샌프란시스코를 담당하는 해외도시연구원으로도 위촉되었습니다. 종종 제 글이 서울시의 해외도시 매거진에 실릴 예정입니다.


그럼 또 소식 전 하겠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성환 드림. 


#이번달 주목한 샌프란시스코 혁신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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