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일기 "결핍에 관하여"
1.
결핍에 대해 생각한다. 30년의 삶은 채워가는 삶이었다. 무엇을 채울 것인가? 에 대한 고민보다는 어떻게 빨리 채울 것인가? 속도에 답했다. 더 빨리 졸업하고, 더 빨리 취업하고, 더 빨리 세상을 알고 싶었다.
2.
30대 후반, 이제 40으로 향해가는 요즘 뒤를 자주 돌아본다. 무엇을 채워 왔는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마치 바둑의 한점, 한 점을 복기하듯. 부족한 점은 무엇인지? 어디가 허약한지? 세밀한 색 작업을 시작한다. 큼직하게 휘두르며 색을 칠하고, 어느 정도 칠해졌다고 생각할 때쯤 뾰족한 색연필로 바꾸고 자세도 가다듬으며 아주 디테일하게 선을 따라..조심스럽고, 아주 꼼꼼하게 작업을 한다.
3. 틈을 채우지 않으면 그림은 완성되지 않는다. 30대가 거칠게 달려온 시간이라면, 40대는 세밀하게 방향을 조정하며 보정하는 시간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결핍을 느끼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지 않으면 치열한 변화는 없다. 대부분 40대가 성장이 멈추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30대의 경험으로 승부 보려는 조급함.
4.
나는 지금 이 시간을 이론의 시기. 텍스트의 시간으로 정의했다. 경험을 통해 감각을 단련했던 시간에서 이론으로, 텍스트로 전환하는 것. 그것이 내가 결핍을 받아들이는 태도이다. 끊임없이 사람을 만나고 떠들고 기획하고 조직하는 발산의 시간에서 읽고 또 읽으며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쓰는 수렴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