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인터뷰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1월 1일 새해 첫날, 엄마 아빠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너가 벌써 스물아홉이라고?” 라고 말하던 그 밤이 아직도 기억난다. 나도 웃으며 넘겼지만, 마음 한구석이 괜히 싱숭생숭하긴 했다. 2월의 어느 밤엔, “진짜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채로 서른을 맞이하게 되면 어떡하지?”하는 생각에 갑자기 불안이 확 밀려온 적도 있었다. 아홉수 따위에 연연하지 않겠노라 다짐했는데, 이상하게도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뭐, 아홉수라 그래"라는 말을 핑계처럼 꺼내는 내가 가끔은 웃기기도 했다.
사실 아직도 헷갈린다. 어른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가끔 안정적인 것 같다가도 한없이 흔들린다. 그 경계선 어딘가를 계속 아슬아슬하게 걷고 있는 느낌이다. 조금은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전 남자친구에게 마지막으로 썼던 편지에도 “늘 불안정했던 내 20대 후반을 함께 해줘서 너무 고마웠어”라고 적었던 게 기억난다. 그 말이 내 지난 몇 년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친구들과 얘기할 때는 "우리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애기네" 하며 웃다가도, 사회에서 기대하는 '스물아홉과 서른'의 모습을 마주하면 갑자기 숨이 턱 막히기도 한다. 당연히 해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졌고, 뭘 해도 ‘이제 그럴 나이잖아’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대부분 이쯤이면 사회생활 몇 년 차가 되어 있고, 필요한 매너나 예의는 익숙해져있다. 누군가는 안정적인 직장을 찾고, 또 누군가는 가정을 꾸리기도 한다. 모두가 저마다의 속도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마음은 쉽게 따라주지 않았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한 비교와 선망의 마음은 늘 어딘가에 있었으니까. 인스타그램을 통해 들려오는 지인들의 대기업 취뽀이야기, 미디어 속에 ‘성공한 스물아홉’들의 모습은 지극히 평범하고, 어쩌면 그보다 더 불안정했던 내 삶과는 꽤 거리가 있어 보였다.
내 주변엔 나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사는 친구들이 참 많았다. 비슷한 커리어 고민, 비슷한 두려움. 그리고 그 친구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 고민을 품고, 또 넘어서고 있었다. 오히려 그런 모습이 지금 이 시대의 진짜 스물아홉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어느 날 문득 다른 사람들의 스물아홉은 어땠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이미 스물아홉을 지나 서른을 맞이해본 사람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졌다.
그래서 ‘스물아홉 인터뷰’를 시작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