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의 랜드마크와 딮 다이브"

[서문] 경주를 여행하는 방법들

by Harry Yang

고향 경주로 돌아와 지낸 지가 7년째이다. 그 사이에 경주에 관한 책을 하나 냈고, 여러 편의 글을 다양한 채널로 연재했다. 전국의 지인들이 놀러 올 수 있는 아지트로 와인바를 하나 만들었다가 2년 반 운영 후 접었다. 자영업의 간난신고를 맛본 시간이었다. 그 와중에 영어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을 얻었다. 외국인들에게 관광 안내를 정식으로, 즉 직업으로 할 수 있는 자격증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 이전부터 종종 외국인들을 안내해 본 경험이 비로소 제도권의 승인을 얻은 것이라 하겠다.


경주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언제나 즐겁고, 의욕을 부추기는 작업이다. 새롭게 '경주 여행'을 주제로 연재를 시작한다. 온라인 공간에 경주에 대한 온갖 정보성 글의 절대량이 결코 부족하지는 않겠지만, 내가 원하는 종류의 글을 잘 만나지 못했기에 그런 결핍을 해소하는데 기여하는 일이라면 일단 뛰어들어 보자 생각했다. 독자들에게도 그런 마음의 일단이 전달된다면 참으로 보람이 크겠다.


나의 딜레마

이번 연재는 약 15회 정도를 예정하고 시작한다. 너무 장황해지지 않으려 노력할 것이고, 읽기의 기대감과 쓰기의 긴장감을 끝까지 잘 유지하고 싶다. 이번 연재의 모티브는 몇 년간 내가 여행을 안내하거나, 지인들과 여행을 하면서 느꼈던 아쉬움을 해소하고자 하는 와중에 풀어낸 내 나름의 해답이다. 즉, 누군가가 경주를 여행하고 싶다고 할 때, 도대체 어디를, 어떻게, 왜 추천해 줄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경주는 어디와 무엇(where, what)을 추천하려면 마르지 않는 샘이다. 너무 많다. 어떻게(how)에 답하는 정보도 엄청나게 많이 생산되어 있다. 검색만 하면 된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왜(why)에서 막힌다. 거기를 왜 가야 하는지, 여기가 아니고 거기를 가야 하고, 이것이 아니라 저것을 해봐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답하는 것은 늘 궁색했다. 일차적으로 우리 모두에게는 시간과 비용과 관심사가 제한된 자원이기 때문이다.


왜(why)에 대해 만족스럽게 준비된 답이 없다 보니, 나의 대답은 대체로 누구(who)로 기울곤 했다. 내가 동행하면서 여행에서 발생하는 온갖 질문과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면 괜찮은 여행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대체로 함께 여행한 이들은 후한 평을 해주었고, 멋진 여행 경험이었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그러나, 내가 문제 제기자(question raiser)이자 해답 제공자(solution provider)인 것은 아무래도 어색했다. 자기가 출제한 문제로 시험 쳐서 점수를 잘 받은 느낌이랄까? 경주 여행 전반을 두고 큰 그림을 먼저 그려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꾸준히 느꼈고, 그 그림에 동의가 된다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보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이 서로 납득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경주여행에서 우리 모두가 어디쯤에 서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이 공정한 일이고, 장기적으로는 서로의 여행을 더 깊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늘 맞닥뜨리는 딜레마는 이런 것이었다. 누군가가 경주여행에 추천 코스를 요청한다. 그러면 나는 그가 이전에 경주에 온 적이 있는지, 경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어떤 선이해를 갖고 있는지, 특별한 관심사항이 있는지 물어본다. 그에 대한 답을 듣고서 나는 방문할 코스와 식사할 곳과 차를 마실 곳, 슬쩍 지나치는 와중에도 눈길을 줄 만한 곳이 있을지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다. 자신의 취향과 관심사를 잘 정돈하고 사는 이들은 의외로 드물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때는 그에게 전권을 주는 것처럼 부탁을 하지만, 정작 같이 다니다 보면 그 취향과 관심사가 너무도 또렷이 도드라져서 계획을 즉석에서 이리저리 바꾸어야 하는 경우도 자주 생긴다. 무엇보다 ‘정보의 비대칭’이 크다 보니, 상대는 가이드에게 의존을 많이 하는 수밖에 없지만, 가이드 역시 상대의 관심사를 정확히 알지 못해서 엉뚱한 제안을 할 수도 있다. 오랜 가이드 생활을 하신 분들 역시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보다 여행자의 의중 파악에 더 에너지가 많이 들어간다는 것을 자인하곤 한다. 경주를 여행하며 경험한 아쉬움을 정돈해가다가 도달한 공통의 지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더 나은 여행 경험을 얻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랜드마크(Landmark)

경주를 자주 다녀가는 이들도 있겠으나, 대체로 경주는 한번 마음먹어야 오게 되는 여행지이다. 그러다 보니, 경주에 왔으면 기본적으로 가야 하고, 봐야 하고, 먹어야 하는 코스를 빼기는 힘들다. 파리에 갔는데 에펠탑 코빼기도 못 보고 왔다면, 그건 뭔가 문제 아닌가 싶은 것이다. 전 세계 어디든 관광지는 그런 대표적인 대상이 있다. 사진만 봐도 어디를 갔다 왔구나 알려주는 그런 대표적 건축이나 풍경, 작품을 일컬어 랜드마크(Landmark)라고 한다. 경주에 왔다면 기본적으로 거쳐야 하는 곳. 불국사-석굴암이 그런 곳이고, 첨성대가 그런 곳이다. 완만한 능선이 아름다운 고분이 그렇고, 삼층석탑이나 불상들이 좀 등장해 줘야 ‘아, 경주구나’ 싶은 것이다. 경주의 관광객 통계에서 바로 확인이 된다. 연간 수천 만 명이 경주를 거쳐가는데, 여전히 부동의 1위는 석굴암-불국사이다.


그런데, 문제는 경주는 그런 곳만 몇 군데 다녀도 주어진 시간이 다 찬다. 즉, 하루나 이틀 정도 코스로는 랜드마크만 봐도 다른 일정을 넣기 힘들다. 게다가 주요 랜드마크 간에 거리가 좀 있다 보니, 차량을 이용해서 이동해야 하고,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랜드마크 인근에서 식사를 하고, 숙소를 찾아가야 하고, 차 시간에 맞추어야 하면, 사실상 1박 2일이면 누구나 대동소이한 일정이 될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경주여행은 너무나 예측 가능하고, 달리 말하면 식상한 레퍼토리가 될 수밖에 없다. 코스가 이렇게 일률적이면, 차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의 하나가 가이드 여행(guided tour)이다. 사실 경주는 교통편만 확보가 되면 이동도 어렵지 않고, 온갖 여행정보가 많이 공개되어 있기 때문에, 찾아가는 길을 몰라서 혹은 그 문화유산을 전혀 몰라서 가이드가 필요하지는 않다. 아마 외국 관광객들은 언어나 문화적 장벽 때문에 가이드를 고용할 필요가 있을 수는 있지만, 국내 관광에서는 코스의 접근성이나 언어가 문제 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국내 여행인데 가이드가 붙는 여행을 한다는 것은, 언어나 접근의 편의성 이상의 부가가치가 있을 때라야 정당화될 수 있다. 즉, 그 가이드가 없었다면 경험할 수 없는 차원이 반드시 제공되어야 한다.


나의 고민은 랜드마크 투어에서 어떤 차별성 있는 투어를 제공할 수 있는가에 있다. 그것은 단순히 역사적 사실 관계를 잘 기억해서 충실하게 나열해 주는 것으로 성취되지는 않는다. 안내판이나 온라인 검색으로 대부분의 정보는 습득 가능하다. 나는 여행 가이드는 점점 더 스토리텔러로서 풍부한 이야기의 제공자가 되거나, 여행자 자신의 여행을 여러 면에서 이끌어주고 여행의 경험치를 증폭시켜 주는 매우 높은 수준의 소양을 갖춘 대화 파트너가 되어야 하지 않는가 생각한다. 각자 인생의 여러 단계를 거쳐가는 사람들이 굳이 경주를 찾았을 때, 그가 단순히 경주의 역사가 궁금하지는 않았을 것 아니겠는가? 여행자 내면의 질문이 여행지의 오래된 유적과, 역사와, 음식과, 인물과, 사건과, 의미 있는 방식으로 맞닥뜨렸을 때 비로소 상호작용이 시작된다. 그것이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발현되고 여행자를 찾아오게 되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여행자와 가이드의 만남이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사무적 만남이나 비즈니스적 업무 처리 과정에 머물고 만다면 그것은 너무 실망스러운 일이다. 기대하지 않았던, 혹은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우리 삶을 찾아오는 섬광 같은 순간이 발생하기를 서로 바라는 것은 너무 이상적인 기대일까?


어떤 여행은 온갖 다양한 주제로 투어 내내 대화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일정 내내 기복 없는 담담한 느낌으로 유적과 유물을 살피고 간간이 대화를 나누는 정도로 지속되는 경우도 있다. 어떤 대목에서 불꽃이 튀면, 그 여행은 하나의 작은 사건이 되고, 인상 깊은 추억의 한 칸을 차지하게 된다. 삶을 충만하게 만드는 내적 순례 같은 것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다 저마다의 순례길을 걷고 있다. 나는 경주가 그런 사건이 충분히 일어날 만한 곳이라 생각한다.


딮 다이브(Deep Dive)

경주에서 가능한 또 다른 여행이 있다. 이미 랜드마크 투어를 했거나, 천편일률적인 코스를 다니는 것이 전혀 흥미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더 깊이 들어가 보는 선택을 할 수 있다. 나는 이 지점을 포착하려고 ‘딮(deep) 경주’란 표현도 써보았는데, 여행산업에서 요즘 이를 표현하는 용어로 ‘딮 다이브(deep dive)’란 개념을 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면 아래 ‘깊이 잠수해 들어간다’는 말이다.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라 범상한 로컬로, 혹은 아직 대중들이 많이 찾거나 알려진 것은 아니지만 특정한 테마를 따라, 자신의 취향과 관심사를 따라 여행을 하는 현상을 말한다.


경주에서도 도시재생 사업이나 문화유산 보존과 활용 정책 등을 통해 다듬어진 골목길 투어나 로컬 크리에이터라 불리는 창업 프로그램의 도움으로 조성된 특색 있는 가게들의 거리를 볼 수 있다. 허나 경주는 오랜 역사유적들이 역사의 층위에 엄청나게 축적된 곳이라, 어디를 건드려도 다른 도시 하나 정도의 이야기는 뽑아져 나온다. 경주에 선이해가 있는 경우라면 기회가 닿는 대로 가보고 싶은 곳들이 좀 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잘 아는 사람의 도움이 없다면 선뜻 선택하기 주저되는 곳일 수 있다. 예를 들면, 경주 남산은 어마어마한 유적과 유물이 산 하나 가득 분포가 되어 있는 곳이고, 남산을 오르는 코스도 족히 10개는 넘을 것인데, 어디로 올라 어디로 내려오는 것이 좋을지,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체력이나 코스의 난이도는 어느 정도인지, 밥은 어떻게 먹는 것이 좋은지, 어느 구석에 어떤 유적이 있는지, 이런 유적과 유물에 대해 궁금한 내용은 어떻게 해소할 수 있는지 등은 마땅히 정해진 답이 없다.


나는 경주 남산을 처음에는 등산으로 올랐다가, 산행길 가에서 만나는 수많은 불상과 지형지물이 궁금해서 이리저리 책을 찾아보다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경주에는 남산을 연구하고, 답사하는 그룹들이 있어서 지역에 축적된 지식과 경험치가 만만치는 않다. 지역에 거주하는 장점이 그런 단체나 사람들과 교류하며 배울 기회가 종종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한번 경주를 찾는 여행자는 그런 자산을 필요할 때 바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영역은 결국 남산을 수십 번 오르내리며 배운 것과 책과 자료를 통해 얻은 지식을 잘 검증하고 축적해서 얻은 암묵지(tacit knowledge)가 확보된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게 된다. 이는 경주 사람이라도 마찬가지다. 우리도 어딘가를 제대로 탐험하고 싶으면 그쪽을 잘 아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내가 안내했던 이들도 경주가 고향이거나, 지금도 경주에 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들도 경주를 속속들이 보고 싶으면 지역을 꿰고 있는 누군가의 손을 빌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여행자들이 ‘딮 다이브’ 여행으로 경주를 만났으면 좋겠다. 그것이 진짜 경주의 속살을 더 깊이 체험하는 여행이고, 그때그때 시간과 공간과 사람에 따라 다 다른 정말 특별한 여행이 되기 때문이다. 여행자가 어떤 질문을 갖고 오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여행이 창출되기 때문이다. 여행자와 여행지가 더 깊고 진하게 만나는 사건이 많이 일어나면 좋겠다. 경주 여행의 횟수와 앎의 깊이와 넓이가 증가할수록, 그리고 경주의 사람들과 관계가 형성되어서 만날 사람, 이야기를 나눌 사람들까지 만들어진다면 이런 여행은 대체불가한 경험이 된다.


나는 이번 연재에서 이런 ‘딮 다이브’ 여행을 위한 추천 코스, 사전 지식 등을 몇 가지 제안해 보려고 한다. 물론 그것이 이런 질문이나 관심에 대한 유일무이한 정답은 아니다. 아마 글의 골격은 세워놓은 채 반 정도는 빈칸으로 비워둔 문장쯤 될 것이다. 그러면 나머지 절반, 혹은 괄호 안을 채워 넣는 작업은 여행자가 해나가면서 자기만의 여행을 완성하면 된다. 조립식 여행 혹은 DIY 투어쯤 되면 좋겠다 싶다. 나는 완성품의 스케치를 제공하거나, 조립 설명서를 성실하게 제공하는 역할 정도를 맡을 것이다. 조만간 이런 일을 제대로 벌여보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식상한 여행이 아닌, 로컬로 '깊이 잠수하고 싶은' 이들의 관심을 적극 기대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