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마크 01] 고분과 금관
홍상수의 영화 <생활의 발견>(2002)에는 지금은 볼 수 없는 경주의 예전 골목과 고분들이 간간이 나온다. 한참 후에 찍은 장률 감독의 < 경주>(2014)는 영화 전체에 고분의 선과 색이 깊게 스며있다. 2025년 개관한 오아르 미술관은 영화 <경주>에 등장했던 모텔 자리에 들어섰다고 하는데, 노서리 고분군을 넓게 조망할 수 있는 설계로 각광을 받고 있다. 경주에는 앞으로 이런 공간이 꾸준히 더 생길 것이다. 도심지역에 고도 제한이 있어서 그간 고분보다 높은 조망이 없었는데, 이제 조금씩 바뀌는 것이다.
고분(古墳)이란 ‘오래된 무덤’이란 뜻이다. 경주에는 초대형 고분들이 많은데, 그중에 왕이 묻힌 곳은 ‘왕릉(王陵)’이라 부르고, 누가 묻힌 지를 정확히 모르는 경우는 고분의 주요한 특징에 따라 이름을 붙이는데, 주로 ‘총(塚)’이라고 부른다. 금관총, 천마총, 황남대총 등이 그렇다. 경주의 고분은 고고학이나 역사적 가치를 논하기 이전에 그 특유의 완만한 곡선으로 경주의 미적 심상을 확고하게 형성하는 지배력을 행사한다. 경주 시내를 둘러보노라면 이 고분의 선과 색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경주는 고분의 도시이다.
경주의 구도심에는 고분이 넘치게 많다. 그래서 쉽게 경주를 ‘무덤의 도시’쯤으로 부르곤 하는데, 이런 표현은 경주의 고분을 제대로 담아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경주의 고분 어디를 다녀보아도 서양의 ‘무덤 마당(graveyard)’이나, 일본의 도심에 자리 잡은 납골당이나 공동묘지에서 풍기는 어두운 그림자가 전혀 없다. 오히려 경주의 고분들은 밝고, 아늑하고, 느긋하고, 따뜻하다. 죽음이란 그토록 강력한 금기가 여기서는 무장해제되고, 무게감은 완전히 박탈되어 있다. 경주를 찾는 이들이 거의 의식하지 못하고 무심히 넘어가는 듯하지만, 나는 경주의 가장 독특한 정체성은 고분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한다.
경주 사람들은 고분과 정말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 지금은 고분 주변에 넓은 잔디밭이 조성되어 있지만, 2010년대까지만 해도 시내의 주요한 고분군 주변은 빽빽한 인가였다. 나의 어린 시절 친구집은 온통 고분을 등진 야트마한 한옥이었고, 친구집에 놀러 가는 길은 어디서나 고분이 보이는 골목길을 따라 걷는 경로였다. 고분 위에서 쌀포대를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은 어릴 적에 너무 자연스러운 놀이였고, 조금 나이가 든 청년들은 저마다 밤에 고분 정상에 기어올라가 소주든 막걸리든 마시고 놀았던 무용담을 품고 있다. 죽음의 어두움과 무거움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언제든 올라갈 수 있는 품이 넓은 동네언덕이었다. 초중고 시절 소풍으로도 많이 찾았고, 고분 앞 잔디밭은 김밥을 까먹고, 수건 돌리기를 하며 노는 최적의 피크닉 공간이었다. 조금 머리가 굵어지고 난 뒤에는 인생의 이런저런 고민으로 속이 복잡할 때에 찾는 곳이기도 했다. 고분들 사이를 한참 걷노라면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이다. ‘경주스러움’이란 느낌은 아마도 고분 앞에서 당신을 스치고 지나간 그 바람을 닮았을 것이다.
경주의 고분들이 눈에 들어오는 첫 번째 이유는 우선 크기 때문이다. 가장 큰 고분인 황남대총이 높이가 25m, 길이가 동서로 80m, 남북은 120m에 달한다. 봉황대도 21m 높이에, 지름이 83m라고 한다. 그 앞에 서면 충분히 압도당하는 규모이고, 그 위세는 당당하다. 둘째 이유는 군집(群集)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시내에는 봉황대 뒷길인 봉황로를 중심으로 노서리 고분군과 노동리 고분군이 있고, 길 건너에는 대릉원이, 대릉원의 동쪽에는 쪽샘고분군이 있다. 월성 앞 계림숲 인근에도 여러 기의 고분이 있고, 선도산 아래 서악마을에도 태종무열왕릉을 비롯한 크고 작은 고분이 수십 기가 있다. 경주역 인근의 건천지역에는 규모 면에서 거의 대릉원 급인 금척리 고분군이 최근 발굴조사에 들어갔다. 왕릉은 종종 경주 시내만 아니라, 남산 인근, 외곽지역 가리지 않고 떨어져 있기도 하다. 단 한 기만 있어도 왕릉이란 이유에서 충분히 주목받을 만한 위용을 자랑한다.
고분은 그 외양에서 주는 인상이 강렬하지만, 그 안에서 나온 것이 또 대단했다. 경주 지역 고분들에서는 국보급의 보물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다. 토우 항아리, 기마인물형 토기, 광개토대왕 이름이 기록된 청동잔, 천마를 그린 말다래 등, 그중에 가장 폭발적 주목을 받은 것은 금관이었다. 2025년 '경주 APEC 정상회의'를 맞아 경주박물관에서는 신라금관 총 6개가 모두 모이는 100년 만의 전시회를 열었다. 방한한 미국 대통령 트럼프에게 금관 선물을 한 것이 해외로도 널리 알려졌었기에, 엄청난 관람객이 몰려들어 전시 기간도 연장하고, 30분 단위로 정한 숫자만큼만 티켓을 발부해 입장하도록 하는 진기한 광경도 연출되었다. 전 세계적으로도 도금이나 장식이 아니라 전체를 금으로 만든 금관은 매우 희귀하다고 한다. 신라의 왕과 귀족들의 무덤 부장품으로, 심지어 천마총에서는 말장식으로, 이렇게 화려한 금 장신구를 사용한 것을 보면 고대국가 신라의 상류층들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고급스러운 문화를 향유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된다.
그러면 경주의 고분 투어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우선 소위 ‘랜드마크’ 투어다. 경주에 왔으면 꼭 거쳐가야 할 코스를 포함하고 있어야 하고, 이 주제의 핵심적 내용을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주로 이렇게 안내를 한다.
첫째, 만나는 곳은 봉황대 광장이다. 예외가 없다. 봉황대는 경주 도심의 시그니처 플레이스(signature Place)다. 크기로도 최대 규모의 고분 중 하나이지만, 무엇보다 그 거대한 봉분 위로 비스듬히 자리를 잡고 있는 고목이 연출하는 그림이 대체불가능한 풍경이다. 사계절이 다 멋있지만, 나는 특히 겨울의 앙상한 모습이 좋다. 마치 팀 버튼(Tim Burton) 영화의 한 장면 같다. 나는 거기서 경주가 다른 어떤 것보다도 ‘고분의 도시’ 임을 이야기하며 투어를 시작한다.
둘째, 금관총 앞이다. 봉황대 뒤편으로 건너오면 바로 나오는 그곳을 중심으로 삼아 노동리의 금관총, 서봉총, 호우총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방금 건너온 봉황로 저편에 봉황대, 금령총, 식리총이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양편의 고분들에서 금관이 총 3개, 금귀걸이, 금 요대, 기마인물형 토기, 광개토대왕이 언급된 청동합 등이 출토되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해 줄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나온 최초의 신라금관(금관총, 1921) 사연은 매우 흥미롭게 경주 지역사와 결합한다. 금령총(1924), 서봉총(1926)에서도 금관이 줄줄이 나오던 시절 사람들이 느꼈을 경이감을 한번 상상해보라고 권하곤 한다. 그리고, 대릉원 조성 과정에 인근에서 국보인 토우 항아리, 용머리에 거북의 몸을 가진 서수형 토기, 수레형 토기 등이 나왔다는 사실도 알려줄 것이다. 이 일대는 땅을 파기만 하면 유물이 나오는 동네였는데, 지금 우리는 그 고분들 사이로 산책하고, 피크닉 하며 평안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과거와 현재는 이렇게 무심하고도 짜릿하게 만난다.
셋째, 대릉원이다. 황리단길 입구 바로 인근의 대릉원 후문으로 들어가면, 연꽃이 있는 연못 건너편으로 쌍고분인 황남대총을 볼 수 있다. 남남북녀, 즉 북쪽 고분이 여성의 것이고, 남쪽 고분이 남성의 것인데, 화려한 금관은 북쪽 고분에서 나왔다. 과연 그 여인이 누구인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호기심을 억누르기 쉽지 않다. 우리가 아는 여왕 중 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과연 어떤 신분의 여성이었을까. 남자는 또 어떤 신분이었을까? 이 초대형 고분에서는 총 58,000점을 넘는 유물이 나왔다고 한다. 경주 박물관의 전시실 하나가 통째로 황남대총의 유물로 채워져 있다. 바로 옆에 천마총(155호분)이 있다. 경주는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를 따라 관광도시로 대대적인 개발에 들어가는데, 그 과제 중 하나가 가장 큰 고분인 황남대총(98호분)의 발굴이었다. 그런데, 그 당시 고고학계의 역량 상 엄두가 나지 않아 바로 앞의 작은 고분을 하나 시험 삼아 발굴하자고 했는데, 거기서 금관과 천마가 그려진 말다래 등이 줄줄이 출토되었다. 1973년의 일이었다. 1920년대 신라금관 3개가 나온 이후로 다시 신라 금관이 출토된 것이다. 바로 이어진 황남대총 발굴(1973-75)에서도 금관을 비롯한 대단한 유물이 나왔다. 이 고분군은 총 23기에 이르는데, 대릉원이라 이름 붙이고 대표적 관광지로 조성되었다.
넷째, 대릉원 정문에서 마무리한다. 대릉원은 1970년대부터 잘 보존되고, 관리된 고분공원이다. 내부의 길을 따라 산책을 하기에 매우 좋다. 특히 초저녁 해지기 전에 들어와 천마총을 둘러보고 나서 해는 서쪽에 걸려 황혼인데, 대릉원 내부 가로등은 불이 들어온 상태로 저녁 산책을 하면 참으로 좋다. 적당하게 시야를 채워주는 대형 고분들 사이로 걷다가, 사람들이 많이 몰려 사진을 찍는 핫 스폿을 지나서 키가 큰 소나무 숲 사이로 하늘을 보며 걷는 것을 권한다. 대릉원의 서쪽 담 바깥 동네가 황리단길이고, 동쪽 담 바깥이 쪽샘고분군이다. 나는 고분 랜드마크 투어는 대릉원의 후문으로 들어와 공원 내를 걸어서 정문으로 빠져나가는 코스를 권한다. 거기서 고분 투어를 일단 마치고, 오른쪽의 황리단길로 들어가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며 잠시 인파에 휩쓸려보는 것도 좋고, 아니면 거기서 남쪽으로 길을 건너 첨성대 쪽으로 나아가 왕경 투어를 시작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어느 쪽이든, 경주 도심의 고분을 한껏 만끽하고 난 다음이라면 즐겁게 이어나갈 수 있을 선택이다. 일단 대릉원 정문에서 잠시 휴식하기를 권한다.
추가적으로, 금관총 옆에 신라고분정보센터가 있다. 잘 준비된 시청각 자료를 볼 수 있다. 금관총도 들어가서 내부를 볼 수 있도록 전시공간으로 꾸며놓았다.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가서 보면 좋지만, 우선은 위에서 추천한 경로를 조금 넉넉히 시간을 두고 고분과 그 주변의 분위기를 잘 느껴가며 걷는다면 경주 고분 랜드마크 투어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나는 특히 노동리 고분군, 즉 금관총 인근의 개방된 공원을 좋아한다. 볕 좋은 날은 아이들을 데리고, 혹은 연인들이 간단히 먹을 것을 싸서 피크닉을 나와 있다. 아침 녘에는 그룹으로 요가를 하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인근의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사들고 나와서, 이런 여유로운 풍경의 일부분이 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이다. 시간에 쫓겨 역사 기행을 열심히 다녀야 할 이유가 없다면, 이 고분공원은 당신이 경주를 깊이 호흡할 최적의 장소이다. 어쩌면 해가 떨어질 때 풍경이 고분과 어떻게 어울리는지를 보는 것으로 경주가 당신에게 건넬 이야기 한 자락을 다 얻어들은 것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경주에는 잘 알려진 고분들이 많다. 여행 일정 중 하나로 들를 수도 있지만, 고분을 중심에 놓고 여행을 짠다면 그건 매우 흥미로운 ‘딮 다이브’ 투어가 될 것이다. 널리 알려진 몇 군데를 중심으로 여행 가능성을 제안해 본다.
첫째, 오릉(五陵)이다. 신라의 첫 왕, 박혁거세와 그의 아내 알영 부인, 그 후대의 왕들이 묻혀있다고 알려진 다섯 개의 왕릉이 있다고 해서 오릉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매우 정갈하게 관리가 되어 있고, 담으로 둘러친 꽤 넓은 공원 형태인데, 종종 경내에 고라니가 뛰어다니는 경우도 있다. 기록에 따라서는 신라 초기의 왕들이라고 하기도 하고, 승천했던 박혁거세 왕의 몸이 다섯으로 나누어져 떨어져서 각각 매장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박혁거세와 알영부인은 성인(聖人)으로 공공연히 칭해졌던 존재들이라, 오릉은 매우 경건한 느낌마저 든다. 종종 지인들에게 추천하고 함께 들르는 곳인데, 의외로 사람들이 걷고 나면 편안하고 좋은 기운을 받아가는 장소이다. 박 씨 시조를 기리는 숭덕전(崇德殿)도 있어서 매년 정해진 때에 경주 박 씨 문중에서는 제를 올린다.
둘째, 태종무열왕릉과 선도산 일대의 고분군이다. 강렬한 위용을 자랑하는 거북모양 비석받침으로 잘 알려져 있는 태종무열왕릉은, 전면으로 그의 아들 김인문과 9대손 김양의 묘가 있고, 후면으로는 4기의 거대한 고분이 조성되어 있고, 선도산 기슭 쪽에는 진흥왕과 진지왕의 왕릉으로 알려진 두 기의 고분을 비롯해서 무열계로 추측되는 왕과 왕족들의 무덤 수십 기가 집단으로 조성되어 있다. 태종무열왕릉 인근의 서악마을은 사철 다양한 꽃축제와 행사가 열리는데, 사실은 산기슭의 고분군 사이를 산책해 보면 거기서 느끼는 기운이 매우 좋다. 선도산 아래의 고분군, 서악서원, 혹은 선도산 정상의 성모사와 석불까지 다녀올 수 있는 의외로 탐험할 장소가 많고, 마을의 골목과 카페와 숙소가 새롭게 조성되고 있어서 앞으로 더 많은 이들이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조금 떨어진 김유신장군묘는 십이지신상이 독특하게 조성된 고분 형태를 보여주고 있고, 그 아래는 봄철이면 벚꽃 보러 온 사람들로 가장 붐비는 길이다. 경주사람들에게는 사랑받는 코스이다.
셋째, 문무대왕릉과 감포 일대다. 삼국통일을 이룬 문무왕은 스스로 바다의 용이 되어 왜적의 침입에서 신라를 보호하겠다는 일념으로 감포 앞바다의 바위에 무덤을 만들도록 했다고 알려진다. 문무대왕 수중릉, 혹은 대왕암이다. 문무대왕이 용이 되어 드나들었다는 감은사지(이곳은 두 개의 거대한 삼층석탑으로 유명하다), 왜적의 침입을 살펴보도록 만든 이견대 등이 같은 코스로 묶일 수 있고, 화산작용의 결과로 생긴 독특한 모양의 바위 주상절리도 인근에 있어 많이 보러 간다. 매우 독특한 고분이자, 절과 바다의 풍광이 어우러진 멋진 코스다.
넷째, 개별 고분을 찾아가 볼 수 있다. 신라의 왕이 총 56대이다. 마지막 왕 경순왕 김부는 고려에 나라를 넘기고 개경으로 가 고려왕족으로 편입되었던 탓에 그의 능은 경기도 연천에 있다. 그 외의 왕들은 다 경주와 인근 지역에 무덤이 있겠지만, 우리는 그 소재를 다 알지 못한다. 고증에 논란이 있는 것도 있어서 현재의 왕릉들은 대부분 전(傳), 칭(稱) 이란 수식어를 달고 있다.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왕릉으로 알려진 곳들은 각기 연관된 역사를 되새기며 특별한 느낌으로 다녀올 만하다. 낭산에 있는 선덕여왕릉, 인근의 신문왕릉, 보문 평야에 있는 선덕여왕의 아버지 진평왕릉, 서역의 인물을 묘사한 것으로 알려진 무신상과 문신상이 있는 원성왕릉(=괘릉) 등이 경주와 울산 간 국도변을 따라 존재한다. 남산의 동쪽 편에는 헌강왕릉, 정강왕릉이 있고, 서쪽 편에는 일성왕릉, 지마왕릉, 경애왕릉, 삼릉 등이 띄엄띄엄 있다. 신라의 왕족이었던 박, 석, 김 씨 성을 가진 이들은 경주에 오면 시조의 릉을 찾곤 한다. 박 씨는 오릉과 숭덕전, 석 씨는 동천동의 석탈해왕릉과 숭신전(崇信殿), 김 씨는 대릉원 내의 미추왕릉과 숭혜전(崇惠殿)을 참배하는데, 지금도 연간 주요한 절기에 성대하게 제를 올리고 있다. 6부를 구성하던 성씨(손 씨, 이 씨, 배 씨, 설 씨, 정 씨, 최 씨) 집안도 각각의 시조를 기리고 제례를 올리는 공간이 있다.
경주의 고분을 따라 걷는 이들이 많아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