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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나 Mar 17. 2020

Where are we now?

오늘도 나는 이방인, 세계의 끝에 서서 주위를 둘러본다. 


그동안 아꼈던 운은 이럴 때 쓰라고 있었나 보다 싶다. 태국 꼬따오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서 한 달 가량 머무르고 멕시코로 뜨려던 계획은 벌써 수개월 전, 꼬따오에서 이미 마쳤다. 비행기에 멕시코 케이브 다이빙 트레이닝 코스에 스케줄 예약을 싹 다 마치고, 또 다시 미친 짓을 시작한다는 기대 반 두려움 반을 만끽하고 있을 때 즈음 중국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시작됐다. 그 당시 나는 꼬따오에서 다이빙을 가르치고 있었고, 워낙 작고 또 메인랜드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섬이었기에 코로나는 남 얘기였다. 그래도 중국인 관광객이 확실히 줄었구나, 정도는 체감했는데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않았다.


섬에서 나와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탈 때 비로소 바이러스 창궐 상황이 피부에 닿았다. 그래도 그렇게 크게는 아니었다. 이미 한국에서 마스크 품귀 현상이 있다는 말에 태국 약국에서 마스크를 사온 상태였고, 입국할 땐 공항에서 늘 평소처럼 하던 열 화상 카메라만 통과했다. 나는 중국발 비행기가 아닌 태국발 비행기라 괜찮았지만, 중국인들이 경유로 태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올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내가 한국에 들어올 때만 해도 한국 내 코로나 확진자는 30명 안쪽이어서 공항 분위기가 나쁘진 않았는데, 내 수화물이 굉장히 늦게 나와 한참을 기다리는 동안 나와 같은 비행기에 탔던 중국인들은 내가 짐을 찾아 나갈 때 즈음 입국 심사를 마치고 벌개진 얼굴로 나왔다. 한국은 나름 할 수 있는 걸 최선을 다해내고 있었다. 사실 특정 나라 출발 비행편에 대한 입국 제한은 의미가 없다. 요즘 같은 세상에는 어떻게든 마음 먹으면 들어간다. 막고 싶으면 그 나라 여권 소지자를 꼭 집어 막아야 하는데(일본이 지금 우리나라에 하고 있는 짓), 그러면 비즈니스, 유학생, 재외공관, 합법 근로자 등등 리스크가 너무 크다. 교양있는 한 나라로서 할 수 있는 건 지금까지도 한국이 고집하고 있는 외교 정책이다. 일본이 하루만에 한국인 무비자 취소하고 입국 금지나 마찬가지인 제한을 실시해서 생긴, 관련자들이 겪을 혼란과 고통을 일본은 신경조차 안 쓴단 얘기고, 한국은 한단 얘기다.


한국에 들어가 머물렀던 한 달은 엄청난 영화 한 편 같았다. 31번 확진자가 슈퍼 전파자로 드러나고, 신천지라는 이름을 가진 거대한 사이비 종교에 몸과 마음을 바친 젊은 애들이 많다는 걸 처음 알았다. 오랜만에 한국 가서 가족들과 친구들과 재밌게 보내고 싶었는데, 서울에서 친구들 만나는 시점에 31번이 나오는 바람에 서둘러 시골 엄마집으로 내려가 자가 격리에 가까운 생활을 했다. 나머지 2주 가량은 미국을 경유해 멕시코로 가는 비행기가 항공사의 일방적인 결정에 의해 취소됐고, 본능적으로 캐나다 경유 표로 바꿨는데 그게 결국 한국을 나올 수 있는 마지막 비행기 같은 거나 다름 없었다. 그때 내가 조금이라도 망설였거나 티켓을 연기했다면 나는 향후 5-6개월 간은 멕시코에 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위로해본다. 완벽한 타이밍.


멕시코에 도착한 지 일주일 정도가 됐다. 이제야 시차 적응이 되어 낮에 좀 정신을 차리고 다닌다. 한국을 떠날 때까지만 해도 한국 사람들은 정부가 마스크 안 준다고 징징대고, 중국 안 막았다고 징징댔는데, 일주일이 지난 사이 한국 확진자 수가 현저히 줄어들면서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등 외신들이 한국 잘 했다고 칭찬하니 이제 사람들도 어? 한국이 그동안 잘 해준 거였네, 하는 분위기다. 사람이 이렇게 간사하다. 그 일주일 사이 코로나에 폭격 맞은 이탈리아는 북부 봉쇄령을 내렸다가 전국 봉쇄로 확대했고, EU는 국경을 닫는다고 한다. 나는 이 와중에도 일본이 제일 궁금하다. 나도 알고, 그들도 알 진실. 왜 코로나에 걸렸다고 말을 못하니. 올림픽 취소 결정이 거의 확실한데 아직도 미련을 못 버리고 있다. 아베를 보면 박근혜와 똑 닮았다. '눈 가리고 아웅'을 참 좋아하는 무능하고 멍청한 정치인. 국민은 자신들의 수준에 걸맞는 정부를 가진다고 했다. 일본 사람들에 걸맞는 정부다. 소프트뱅크 손정의가 일본 사람들에게 무료 코로나 진단 키트를 기부하겠다고 했다가 '우리는 이렇게 숨기고 살 건데, 네가 진단 키트 무료로 뿌리면 우리 확진자가 늘어나잖니!' 몰매 맞고 철회했다. 프랑스는 여전히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해달라는 정부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Bar 봉쇄령이 내려지니 '마지막 만찬'이라며 길거리에 모여 밤새 술을 마셨다. 사람이 모이는 걸 막기 위해 식당, 극장, Bar 등을 닫았는데 사람들은 여전히 공원에 몰려 있고 페스티벌도 진행한다. 프랑스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자유'를 침해받는 데에 심한 알러지가 있기에 이해는 가고, 전반적으로 그런 그들의 모습이 쿨하다 멋지다 생각하는데, 이번엔 좀 아니다. 쿨하지 않다. 결국 프랑스도 이탈리아나 스페인처럼 셧다운까지 갈 것 같은데 그렇게 일이 더 커져 잃게될 많은 것들을 생각하면 지금 그들이 주장하고 누리고자하는 건 자유보단 방임에 가깝다. 이탈리아도, 스페인도 그러다 결국 셧다운까지 왔으니까. 


꼬따오에서 오랫동안 머물며 유러피안 친구들을 상대해서 그들의 기질이나 라이프스타일은 누구보다 더 잘 안다. 그들의 자유주의, 개인주의, 합리주의, 이어져온 역사,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우리가 '선진국'이라 부르며 열등감에 괴로워했던, 그 유럽 국가들이 무너지고 있는 걸 보니 허무하다. 나라를 셧다운까지 몰고가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들은 좀 더 자제하고 주의해야 했다. 그런 게 내가 생각하고 기대했던 유럽의 합리주의였는데, 그건 내가 그저 내 머릿속에서 미화시킨 '빛 좋은 개살구'였다는 걸 알았다. 


한국의 '패거리 문화' '집단주의' 때문에 나는 사실 코로나에 잘 대처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지금도 집단 감염은 끊이지 않고 발생되고 있지만, 한국처럼 밀도가 높은 라이프 스타일에서, 그리고 늘 끼리끼리 모여 끼리끼리 노는 문화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가능할 지 의문이었다. 그런데 나는 사실 한국이 코로나 사태를 겪는 과정을 보며 놀랐다. 내가 한국에서 살아오면서 가졌던 많은 의문들이 사라졌다. 희망도 생겼다. 오히려 개인주의와는 먼 집단주의 때문에, '내 부모와 내 자식과, 우리 동네 어르신들을 위해, 내가 사는 커뮤니티를 위해'라는 의도에서 나온 사람들의 자발적 참여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되고, 서로 눈치주고, 서로 조심하고, 그러다 보니 서로 처지가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되고, 그러다 보니 서로 돕게 되고. 나는 오히려 한국이 집단주의가 강하기에 갖게된 강점인 것 같다. 집단 이기주의로 인한 추한 풍경들도 많이 연출되는 나라지만, 집단주의를 잘 써 먹으면 잘 될 수도 있구나, 한다. 


미국 친구 Brian은 며칠 전 플로리다에서 열린 스트릿 컬처 페스티벌을 돕고 자신의 집 아틀랜타로 올라가는 길이라고 했다. 4월부터 11월까지 이탈리아 사르디니아에서 테크/케이브 다이버로 일하는 친구인데, 앞으로 자기 인생이 어떻게 될 지 모른다고 푸념했다. 벌써 한 번 비행기가 캔슬됐고, 마지막 희망을 걸고 두번째 티켓을 기다리는 중인데 그 사이 이탈리아는 전국 봉쇄령이 내려졌다. EU 국경이 모두 닫히네 마네 하는 상황이라 그 친구는 언제 이탈리아에 가게 될 지, 언제까지 아틀란타에(그 친구는 미국을 엄청 싫어하는 미국인이다) 갇히게 될 지 모르는 일이다. 그러면서 나는 참 운이 좋단다. 나라들이 모두 국경을 닫고 있는 마당에 멕시코가 국경을 닫아도 나는 적어도 이런 멋진 곳에 갇혀있을 수 있어 좋겠다고.


멕시코는 아직 확진자가 많지 않아 여기 일상은 평화로운데, 워낙 미국, 캐나다, 유러피안 관광/여행객들이 많이 오는 곳에 있어서 그런 지 무언가 오고 있다는 조짐은 느껴진다. 이건 내가 한국에서 신천지 드라마를 모두 관전하고 온 상태라 더 할 수도 있다. 멕시코에 들어오는 과정에서도, 들어오고 나서도 한동안 긴장을 풀지 못했다. 여기저기서 들어온 동양인 인종차별 이야기 때문에. 하지만 나는 일주일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직접 느끼거나 당한 건 없다. 여기저기서 '곤니찌와' 하고 인사를 하니 나를 중국인이 아닌 일본인으로 봐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 사람들은 숫자에 민감하고 반응한다. 일본이 거짓말을 하든 안 하든 일본 확진자가 현저하게 적으니 나는 적어도 여기서 이들에게 '위협의 대상'은 아니다. 멕시코, 특히 칸쿤 - 플라야 델 카르멘 - 툴룸 지역에 중국인 관광객들이 워낙 많으니 여기 사람들도 중국인 구별법이 있을 테다. 생김새나 애티튜드나 목소리 톤 같은. 한편으론 이탈리아와 이란이 한국의 확진자를 앞지르면서 나름 나도 사람들이 나를 '코로나'로 부르며 조롱한다면 맞설 구실이 생긴 거다. "니들은 그렇게 잘 난 척, 콧대 높은 척 하더니, 코로나 못 막아서 중국 쫓아가니?" 하고 한 번 쏴줘버리면 그만이다. 


누가 보면 '쟤는 이 판국에 멕시코에서 팔자 좋게 저러고 있네' 할 텐데, 나름 나도 절박했다. 한국에서 실업자로 몇 달이고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아무 것도 안 하고 기다릴 수도 없었고, 이미 지불해놓은 케이브 코스 보증금도 상당했다. 그리고 나 같은 개인주의자는 한국에 있으나 멕시코에 있으나 이 세상에 그리 큰 도움도 해도 안 되는 처지라 나만 조심하면 된다. 내가 트레이닝 받기로 한 다이브 센터도 며칠 사이 60% 이상의 코스나 다이빙 스케줄이 캔슬됐다고 한다. 일단 항공사들이 일정을 취소하니 대부분 미국, 캐나다, 유럽에서 오기로 한 다이버들의 하늘 길이 막힌 거다. 나는 그저 한국에서 하던 대로 자가 격리 모드로 살면서 다이빙만 묵묵하게 하면 되는 거다. 흔들리지 말아야지.


이제 곧 멕시코에도 코로나가 올 거다. 미국까지 왔으면 멕시코도 온 거나 다름 없다. 이곳에서 장기 거주하는 캐나다/미국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 커뮤니티에서 왜 멕시코는 아메리칸, 캐내디안 입국 제한 안 하냐고 할 정도로 멕시코 정부에 불만이 많다. 하지만 미국, 캐나다 관광 수입으로 먹고 사는 나라가 어찌 감히 미국을 상대로 입국 제한을 할까. 차라리 미국이 역으로 멕시코를 제한하면 땡큐겠지만. 멕시코에 코로나가 심각하게 퍼진다면 나는 한국을 무척이나 그리워하게 될 거다. 이곳 마트엔 여전히 휴지가 많고, 마스크 쓴 사람은 볼 수도 없고, 모든 게 천국 같다. 이런 일상이 허락되지 않았던 한국에서 있다 와서 그런 지 하루하루 '보통의 날'들이 나에겐 더없이 값지게 느껴진다. 


태국에 있는 친구들도 난리가 났다. 태국도 여기저기 이동금지령이나 도시봉쇄를 준비 중이고, 나라 고위급 간부가 외국인들을 '더러운 farang(태국에선 외국인을 '파랑'이라고 부른다)'이 코로나를 전파시킨다고 기사가 나기도 했다. 꼬따오에 있는 친구들 역시 비자 문제나 체류 문제로 고생이다. 태국은 외국인을 상대로 그렇게 돈을 벌면서도 이런 일 생기면 외국인을 제일 먼저 쌩까는 나라기도 하다. 그만큼 자국민 보호가 애틋하다는 뜻이기도 한데, 만약 입장을 바꿔 한국이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에게(그것도 적법하게 서류 받고 세금내고 하는) 이런 식으로 대한다면, 한국은 결코 그렇게 떠들고 바라는 '선진국'에 들지 못 할 거다. 


코로나 하나로 전 세계 각 나라들이 대처하는 방법에 따라 숨겨진 이면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 미국, 일본,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독일, 태국, 멕시코 등등. 선진국으로서 침착하고 교양있는 대응을 할 거란 내 기대에 부응하는 건 독일 정도일 뿐인 것 같다. 미국은 코로나 뿐 아니어도 이미 충분히 그 나라의 오만함과 국격을 바닥까지 드러냈고, 다른 유럽 국가들도 그들이 우쭐하고 자랑스러워하던 역사와 문화를 지키기 위한 새로운 애티튜드가 필요하다는 걸 어쩔 수 없이 인정하고 변화해야 할 때가 됐다. 


이 일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어떤 형태로든 상처를 받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지구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만들어내 인간들에게 잠시 '스탑'을 외치는 거라 말한다. 나는 이 비과학적이고 비실용적인 생각에 잠깐이라도 머물고 싶다. 잠깐 멈춰서, 지금 우리는 어디쯤인 건지, 지금까지 어떻게 달려왔는지, 그리고 앞으론 어디로 어떻게 갈 건지 생각할 수 있는 시간. 이 시기가 지나고 마무리되면 우리는, 그리고 나는 어떻게 변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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