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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나 Dec 08. 2020

다시 노래 부르게 해주겠단 달콤한 유혹

무명가수전 <싱어게인> 나는 이 달콤한 오디션 프로그램이 너무 쓰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 마음이 쓰다. 직업병이고 오지랖이다. 2010년부터 피처 에디터, 그것도 음악 쪽을 전문으로 일을 해와서다. 국내외 수많은 뮤지션을 만나 인터뷰를 했고, 공연을 봤고, 앨범을 들었다. 특히 인디 뮤지션들과 교류를 많이 했다. 공연이 끝난 후 뒤풀이에서 우린 항상 똑같은 고민을 되풀이했고, 끝내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내 보기엔 너무 아까운, 실력 있는 뮤지션들이 멋진 무대를 그리다 사그라졌다. 누군가에겐 낡은 홍대 라이브 클럽이 낭만적이었겠지만, 음악을 직접 쓰고 연주하며 그걸로 삶을 채워가며 언젠가 들어줄 이를 기다리는 뮤지션들에겐 못할 짓이기도 했다.


잡지사에 적을 뒀던 시절 썼던 칼럼을 보면 나는 유독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에 비판적이었다. 올해로 <쇼미더머니>가 아홉 번째 시즌이다. <슈퍼스타K>는 더 오래됐다. 즉, 한국 음악계가 오디션 프로그램 중심으로 돌아간 지 10여 년도 더 됐단 말이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회의적이고 비판적이다. 그때도 없고, 지금도 없는 답을 여전히 찾고 있으니 마음이 쓰다. 


‘또 오디션이야? 하다 하다 이젠 <슈가맨>에 오디션을 붙이네?’ <싱어게인>이 유희열을 필두로 방영 전부터 이승기, 이선희, 전인권을 대동해 찍은 티저 홍보 영상을 보고 처음 든 생각이었다. 음악 레이블 대표이자 뮤지션이라면 누구나 오매불망 꿈꾸는 무대 <유희열의 스케치북> 진행자, 그리고 유희열이라는 사람.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을 극도로 싫어함에도 채널을 돌리다 흘려들은, 그가 심사위원으로서 뮤지션에게 건네는 심사평은 사려 깊고 따뜻했다. 순전히 유희열이라는 사람에 대한 호감과 믿음으로 <싱어게인> 첫 회를 봤고, 달콤한 맛 뒤에 씁쓸함이 더 짙게 남아 2회를 봤고, 그 씁쓸함을 확인하며 3회를 봤다.


<싱어게인>은 설 무대를 잃은 뮤지션들을, 더 이상 사람들이 찾지 않는 목소리를 위한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이전에 쟁쟁한 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상위권까지 올라갔던 이들이 대부분이다. 오디션 내내 남의 노래로 경연하던 뮤지션들이 프로그램이 끝나고 설 곳 없이 지내다 몇 년 후 또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와서 또 다른 이의 노래를 편곡해 부른다. <슈퍼스타K> <K팝스타> <팬텀싱어> 등 별의별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이미 높은 성적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이들이 <싱어게인>에 다시 나왔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하도 많아 <싱어게인>의 심사위원 몇몇은 이미 예전에도 심사위원과 경연 참가자로 만났던 걸 심지어 기억도 잘 못한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 준우승, 그리고 숱한 화제를 낳았다는 이들이 왜 그 프로그램이 끝나면 사라져 몇 개월, 몇 년 안 보이다 <싱어게인>에 또다시 상기된 얼굴을 하고 무대에 오를까. 내가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을 두 팔 벌려 박수치지 못하는 이유다. 10년 전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에 관한 칼럼에서도 같은 소릴 했다. 제발 오디션 프로그램 만들 열정으로 제대로 된 음악 프로그램 만들어 뮤지션들 자신의 음악을 소개하라고. 장르도 다르고 스타일도 다른 이들 등수로 줄 세우지 말고 음악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는 멋진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라고.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실력자들을 뽑았으면 그들이 음악적 커리어를 펼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정 포기 못하겠다면 그 반의반 비율이라도 뮤지션들이 자신의 음악으로 설 수 있는 무대나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 그게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재미 보는 방송사의 도의적 책임 아니냐 따져 묻는다면, 나는 또 순진한 소리 한다 타박을 들을까. 


오디션 프로그램은 음악 프로그램이 아닌 예능 프로그램이다. 방송 3사의 음악 프로그램이란 건 아이돌 컬렉션으로 바뀐 지 오래고, 아이돌 음악을 하지 않는 뮤지션들의 음악은 갈 곳을 잃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음악이 아닌 ‘경연에서 유리한’ 다른 가수의 곡을 편곡해 오디션에 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싫으면 홍대 라이브 클럽 무대만 고집해도 좋다’며 뮤지션 본인의 선택이라고 해버리면 그만이겠지만, 인디 씬에서 오랜 시간 실력과 공연으로 자신의 성을 쌓아가는 이들 역시 사람이기에 음악 실력은 별로지만 경연에서 호응 좋을 음악 하나로, 거기에 사연 많은 무명 뮤지션의 캐릭터를 얹어 큰 관심을 얻어버리면 상대적 박탈감에 빠진다. 홍대에서 오다가다 얼굴 익은 이들 중 한둘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 소위 말해 잠시 ‘대박’이 나면 그때마다 동네에 한 번씩 휑한 바람이 불었다. 


음악엔 오만가지 장르가 다 있는데도 장르불문 뮤지션들을 한 무대에 올려놓고 버튼 몇 번으로 ‘탈락! 통과!’를 외치는 건 우리 사회의 태도와 너무 닮아있다. 폭력적이다. 한국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하도 ‘등수 매김’ 당하며 자라서 음악 같은 예술 영역도 줄 세우기를 좋아한다는 우스갯소리가 한국에서 유독 오디션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거기에 <싱어게인>은 더 끔찍한 짓을 했다. 뮤지션들의 이름을 지워버리고 번호를 붙였다. 그리고 경연에서 탈락하면 뭐 대단한 거 해주는 것처럼 이름을 공개한다. 이름을 지워버리는 순간, 뮤지션들은 자기 결정권을 잃는다. <싱어게인>은 뮤지션들의 이름을 지워버리고, 음악을 인질로 노래 한 번 하게 해 주겠다고, 무대에 서주겠다고 거래한다. 


차라리 포크 장르 뮤지션들만 올려놓고 경연하는 <포커스>가 나을 정도다. 오디션 우승하면 데뷔시켜준다는 3대 기획사 오디션 프로그램이 더 책임감 있다. 제대로 된 음악 소개 프로그램은 단 하나도 없는 JTBC가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에 진심인 척하는 건 보고 있기 힘들다. 뮤지션들이 자신의 노래를 연주하고 부를 플랫폼이, 필드가 없다는 게 근본적인 문제인데 우리는 10년 넘게 같은 자리다.


특히나 불편했던 건 2회에서 헤비메탈을 20년 한 뮤지션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와 락 발라드를 부르는 모습이었다. 그걸 보고 이선희는 ‘우리 때는 있었는데, 지금은 저런 음악 없어’라고 했다. 실망스러웠다. 자신이 찾고 듣지 않았을 뿐 그때도 지금도 당신의 눈과 귀가 닿지 않는 곳에 대중음악이 아닌 장르 음악을 하는 멋진 뮤지션들이 참 많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나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대중음악 가수들의 편협함과 우월의식에 놀라곤 하는데, <싱어게인>의 이선희가 바로 그랬다. 대중가수로서 ‘우리가 주류를 이끌어간다’는 우월함. 그리고 대부분 거기에 속해있다 생각하는 이들이 심사위원석에 앉아 있다. 3회에서 심사위원이라는 선미, 민호, 다비치 해리는 “짱이에요” “좀 그래요” 등의 표현을 심사평이라고 내놨다. 사실 괜찮은 심사평이 나오기 힘든 프로그램 자체의 오류가 크다. 올림픽에서 수영, 펜싱, 복싱, 역도 선수들을 한데 모아놓고 등수를 매기는 것과 다름없다. 그러니 심사위원들은 자신의 느낌과 감정에 치우쳐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뮤지션이 뮤지션을 판단하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러운 일이지만 심사위원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탈락의 이유는 아무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싱어게인>의 기획 의도도, 방영 시작 전부터 심사위원이 하나씩 ‘실패’와 ‘성공’에 대해 말하던 티저도 백번 공감한다. 전하고 싶은 진심과 뮤지션들의 현실 투영, 좋다. 사람들은 스토리에 끌리고, 결국 판타지 같은 사연 가루가 첨가된다. 시청률과 화제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방송 PD들의 아이러니이다. 대중성도 잡고, 음악을 즐기는 지금 시대에 화두와 질문도 던진다면 더 바랄 게 없다. 프로그램 제작진이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고, 나 역시 그렇다.


하지만 밸런스는 언제나 무너진다. 진심으로 음악 하는, 게다가 잘하는 뮤지션의 5분짜리 노래 하나는 못 보지만, 사연 있는 뮤지션이 다른 사람 노래 편곡해서 부르는 오디션은 본다. 슬프지만 현실이다. 제작진은 이미 완성된 뮤지션에게 다른 이의 음악을 경연용으로 편곡해 시청자들에게 매력적으로 어필하길 원한다. 그리고 승자와 패자가 있다. 경쟁을 시키는 게 말이 안 되는 장르끼리 경합을 붙인다. 음악을 너무 사랑해 뮤지션이 된 이들에게 오디션 프로그램은 결국 음악으로 그들을 협박한다. 잔인하다. 우리가 그 잔인함을 못 보는 건 관심받지 못하는 뮤지션의 스토리에 꿈과 희망이라는 최면 가루가 뿌려졌기 때문이다. 그게 오디션 프로그램의 생리다. 다시 말해 슬픈 현실이다. 자신의 음악을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뮤지션에게, 역시 무대는 없다는 걸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싱어게인>은 그렇게 프로그램 스스로 음악 오디션의 한계와 딜레마를 드러냈다. 그러지 말았으면 했는데 결국 그랬다. 그런데 그걸 갈 곳 잃은 뮤지션에게 무대를 선사한다는 선의와 호의로 포장해 더 마음이 쓰다. 개인적으로 예술하는 사람들, 그중에서도 음악 하는 사람들을 오랫동안 가까이 봐서 그런지 ‘음악을, 뮤지션을 그리 대하지 말아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뮤지션이 자신의 곡으로, 노래에 담긴 걸 최대한 표현할 수 있는 무대 연출에, 공연이 끝나고 ‘탈락’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는 무대는 없는 걸까. 예능이 아닌 음악 프로그램을 영영 볼 수는 없는 걸까. 그러면 제작비만 많이 들고 시청률도 안 나오고 광고도 안 붙어 결국 없어진다고들 하는데, 그런 음악을 제대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없어서 사람들이 안 듣는 걸까, 아니면 사람들이 그런 음악을 안 들어서 프로그램이 안 만들어지는 걸까. 한국의 문화, 음악 수준이라는 건 10년 넘게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음악을 듣는 것뿐일까. 정말 우리 수준이 그 정도뿐인 걸까, 아니면 방송국 사람들이 흐름을 못 읽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게으른 걸까.


<싱어게인>은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승승장구할 거다. 시청률도 높고 화제성도 높고, 광고도 많이 팔았다. 경연곡 음원으로 돈도 많이 벌 거다. 이미 음악 경연에서 인기를 얻을 수밖에 없는 스타일과 캐릭터가 만들어졌고, 프로그램은 이미 누구누구를 결승까지 데리고 갈 건지 계산을 끝낸 듯 보이니. 경연 내내 뮤지션들은 그동안 못 받았던 관심과 사랑과 응원과 지지를 받을 거다. 이게 싫은 게 아니다. 세상 기쁜 일이다. 하지만 프로그램에서 우승을 한다 해도 과연 그들이 진짜 자신의 노래로 무대에 서서 박수받을 수 있는 날이 올까. 그래서 또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을 기웃거리게 되지 않을까, 하여 나는 그게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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