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an is NOT ready.
대한민국의 부산 엑스포 유치가 사우디 119표, 대한민국 29표로 무산됐다. 뻐꾸기 날리는 대한민국 한심한 언론이 말하는 ‘석패’가 아닌, ‘완패’이자 ‘참패’이다. ‘석패’는 경기나 경쟁에서 약간의 점수 차이로 아깝게 지는 것을 말한다. 119표와 29표가 어떻게 석패로 분류되는지, 대한민국 언론사 기자의 기본 학력 수준을 의심해야 할 정도다.
참패는 예견됐다. 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 시리즈로 진행되고 있는 각종 외교 참사와 각종 부재 때문이다. 외교 전략의 부재, 리더십의 부재, 국가운영 철학의 부재, 소통의 부재는 현 정권에서 부산 엑스포 유치가 확정됐다 해도 걱정일 정도다. 그 와중에도 권위주의는 하늘을 찌른다. 품격도 능력도 지식도 없는 대통령은 한국의 재벌 총수를 몰고 다니며 깡패들처럼 ‘떴다방’ 놀이를 하고 다녔다. K-팝, K-드라마의 인기에 고무돼 저기 먼 북유럽 국가에 가서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에게 “두 유 노 김치?” “두 유 노 강남스타일?” 하고 집요하게 물어대는 꼰대 아저씨처럼.
중국이 아랍권 국가와 아프리카 대륙 국가에서 큰 영향력을 끼치는 현 국제 정세에서 툭하면 미국과 일본의 행동 대장으로 대만을 지키겠노라 캡틴 아메리카를 자처했던 대한민국에 표를 줄 리 없었다. 하마스-이스라엘 휴전을 촉구하는 결의안에서 단지 미국을 형님으로 모시는 나라라는 이유로 명분도 없이 당당하게 기권을 선언해 놓고는 아랍권 국가의 표를 기대하는 건 현현 정권의 아둔함과 외교 전략의 부재를 드러낸다. 적자생존의 외교 전장에서 이런 생각과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외교랍시고 해온 행태들은 이미 이 참패를 적나라하게 예고했다.
낡은 사대주의에 물든 윤석열은 EU에서 탈퇴하고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된 나라 영국에 유럽 국가의 표를 끌어줄 것을 부탁했다. 다른 국가 정상 다 해주는 의전을 ‘역사상 최고의 의전’이라 호들갑 떨며 총리 관저 입구도 못 찾아 들어간 우리의 민망한 대통령은 기어코 파리까지 날아가 4차 프레젠테이션을 ‘직접’ 했다. 지금까지의 숱한 대통령 해외순방의 명분은 ‘엑스포 유치’였다. 김건희는 코바나 콘텐츠 회사 운영 경험을 내세워 시대착오적인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언급하는가 하면 직접 디자인했다는 굿즈까지 내놓으며 엑스포 유치에 뛰어들었다. 왜, ‘유치’도 ‘YUCHI’로 쓰지 그랬나.
‘공이 직접 나서니 너희들은 영광인 줄 알아라’라는 귄위주의 적 태도로 일관했던 대통령과 부인의 유치 활동은 유치하고 안쓰러웠다. 거기에 들어간 우리 세금 수천억과 인력과 에너지를 다른 곳에 써야 했다. 승기를 잡았다고 착각한 대통령이 해결사로 나선다는데 그의 불같은 성질이 무서워 어떤 참모도 직언을 못 했다는 게 더 문제다. 행여 대통령의 현실 자각을 도와줄 참모가 아무도 없었다 해도 구글로 외신 검색 몇 번만 해도 알아차릴 수 있는 이미 크게 기울어진 판세를 대통령 스스로 몰랐다는 건 대한민국의 절망이다. 자기 객관화가 안 되는 나르시시즘에 빠진 국가지도자가 ‘벌거벗은 임금님’이 된 상황에서 대한민국 시민인 나는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운다.
대한민국의 헛발질은 파이널 프레젠테이션에도 화룡점정을 이룬다. 한덕수 총리와 전 UN 사무총장을 지낸 반기문이 연사로 섰다. 반기문은 10년도 더 된 자신의 UN 사무총장 임기 시절 업적을 늘어놓기 바빴고, ‘그래서 앞으로 뭘 어쩔 건데?’에 대한 답은 쏙 빼먹은 채 자화자찬만 하다 내려갔다. 한덕수 총리는 집으로 돌아가 얼른 누워야 할 것만 같은 무기력함과 쇠약함만 풍겼다. 마치 초고령 사회로 진입을 앞둔, 꼰대와 기득권들로 더욱 득실대는 대한민국의 가까운 미래를 보는 것 같았다. 대한민국은, 국민은, 그리고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었다.
‘Busan is ready!’라는 뜬구름 잡는 구호만 외치며, 부산이 ‘어떻게’ 엑스포를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도록 준비되었는지 가장 중요하고 구체적인 메시지는 제시하지 못했다. 알고도 빠뜨린 게 아니라 현 정부는 실제로 대한민국의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할 여력도 성찰도 철학도 없다. 프레젠테이션을 가득 채운 K-팝, K-드라마는 과연 대한민국 현 정부 때문에 잘 되었는가.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정부에 비판적인 예술가와 방송인들을 내쫓은 자들이 어찌 감히 K-컬처에 숟가락을 얹어 엑스포를 유치하려는 얄팍한 수를 쓰나. 수백억을 들였다는 홍보 영상은 처참할 정도의 수준이지만, 제작사를 비난하기에 앞서 그 방향성을 제시해 발주하고 수정하며 컨펌한 건 순전히 현 정부의 능력이다. 현재 대한민국 정부 기관 홍보 동영상을 찾아보면 한숨만 절로 나오는 70-80년대 수준의 콘텐츠뿐이다. 아무리 레트로가 유행이라지만, 그걸 노리고 한 것도 아니라 더 절망적이다.
대한민국은 어떤가. 정치, 경제, 외교, 언론, 표현의 자유, 인권, 노조, 환경, 행정, 치안, 국방 등 모든 면에서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회기하고 있다. 기득권 세력의 반발에 수년째 차별 금지법 통과도 못 시키고, 일제 강점기 피해자인 자국민도 제대로 보호하지도 못하며, 북한과의 갈등 고조를 부추겨 한반도의 긴장만 높이고 있다. 출생률은 꼴찌에,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은 최고인, 미필적 집단 자살 인구 소멸기로 접어든, 언제라도 전쟁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나라에서 누가 미래의 희망을 보겠는가. 대한민국의 현재가 과연 어떻게 전 세계의 미래세대에 메시지를 줄 수 있겠는가. 진정 전 세계가 K-팝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본다고 생각하는가. 문화는 그 나라의 품격이지 파는 상품이 아니다. 부산 엑스포 유치가 실패로 돌아갔어도, K-컬처를 소비할 사람은 소비한다. 엑스포는 그렇게 얄팍하고 어리숙하게 감성과 취향에 소구할 글로벌 이벤트가 아니었다.
그에 반해 사우디의 프레젠테이션은 성공적이었다. ‘변화의 시대: 지구를 선견지명이 있는 내일로 이끌다’라는 주제로 여성 인권 우려에 대한 국제사회의 의심 어린 시선에 정면 대응해 젊은 여성 연사들을 내세워 메시지를 분명히 전했다. 또한, 다양성, 다문화를 강조하며 미래 세계의 중심이 될 사우디의 모습을 상상하게 했으며 친환경 방식으로 엑스포 전시관을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사우디는 미래세대를 위해 글로벌 국가로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절망스러운 건 패자로서의 찌질하기 짝이 없는 스탠스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길바닥에서 목숨을 잃은 이태원 참사에도, 각종 처가 비리와 검찰 독재, 대통령으로서의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에도 사과의 말 한마디 없던 대통령이 보수 표와 직결된 부산에서 문제가 터지니 그제야 멀겋게 얼굴을 드러냈다. 정말 이번 엑스포가 부산에 유치될 거라 믿었던 대통령은 당황한 얼굴로 “정말 될 줄 알았고, 정말 열심히 했다”라며 변명에만 급급했다. 이쯤 되면 늘 대한민국의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에게 하는 말을 되돌려 줄 때다.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하는 게 더 중요하단다.”
차라리 대통령이 잘못했다, 오판했다, 자만했다, 반성하고 앞으론 겸손한 마음으로 임하겠다, 시원하게 사과했다면 오히려 동정 표를 받았을 일이다. 나 역시 이렇게 현 정부를 돌려까고 있지만, 여전히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며, 죽을 때까지 이 지구에서 그리 살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해외 생활을 하는 나로선 대한민국의 품격이 내 생활과 일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나는 대한민국의 시민으로 내 나라가 정말 멋진 나라가 되길 바라고 원한다.
대한민국이 엑스포 유치에 실패한 이유가 사우디의 왕정국가 권위주의와 오일머니 금권 선거 때문이라는 핑계는 내 귀를 또 한 번 의심케 했다. 민주주의 국가임에도 왕정국가 권위주의를 윤석열과 김건희로부터 절절히 느끼며 사는 내가 뭘 잘 못 들은 건 아닌가, 자괴감이 든다. 김어준은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서 윤석열 대통령 임기 초, 김건희의 디올 협찬 의혹을 보도했다가 고소당했다. 이게 잘 엮여 들어가지 않자 같은 보도에서 김건희에 ‘여사’를 붙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또 고소당했다. 과연 대한민국이 사우디의 권위주의를 비난할 자격이 있을까.
사우디가 막강한 부국임을 모르고 엑스포를 부산에 유치하겠다고 덤빈 거라면 현 정권은 자신의 무지와 무능함에 벽에 머리를 박고 있어야 한다. 엑스포를 한 번도 유치한 적 없는 나라가 훨씬 더 유리한 개최지 선정 룰을 알고 있었다면, 이미 엑스포를 유치한 적 있는 대한민국은 정신 똑바로 차리고 더 치밀한 전략으로 덤볐어야 했다. 수능 점수를 받아 든 아이가 점수가 더 높 다른 친구에게 “이게 다 너희 집에 돈이 많아 그런 거야"라고 하는 것과 똑같다. 대한민국 사회는 앞으로 아이들에게 ‘공정과 상식’을 뭐라고 설명할 것인가.
대한민국도 재벌 총수들을 트로피처럼 줄줄이 엮어 다녔다. 차라리 일찌감치 깔끔하게 포기하고 총리가 파이널 프레젠테이션에도 참여 안 한 이탈리아가 멋있어 보일 정도다. 판세는 이미 크게 기울었고, 더 이상 국가의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계산이었다. 이에 반해 대한민국은 정말 끝까지 될 줄 알고, KBS와 대통령실에서 축하 공연까지 미리 준비해두었다고 한다. 박근혜처럼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돕는다”라고 믿었거나, ‘그분’의 확언과 예언을 받았다고 해도 나는 이제 더 이상 놀랍지도 않다.
또한, 승자를 헐뜯고 비난하는 건 국제 사회에서 심각한 외교 결례다. 중국이 대한민국과의 축구에서 5:0으로 대패했는데 자국으로 돌아가 패전의 이유를 한국이 손흥민을 보유했기 때문이네, 손흥민이 나빴네, 하며 징징거리는 꼴이다. 결국 이렇게 바닥을 보는구나. 이제 대한민국은 ‘패자’를 넘어 ‘루저’가 됐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현실은 이보다 더 기가 차다. 조선일보, KBS, YTN, 연합뉴스 등 포털을 장식한 대부분 언론의 헤드라인을 보라. 여전히 한국은 ‘졌잘싸’ 했다며 ‘참패’가 아닌 ‘석패’라고, “윤석열의 눈물 나는 노력이 대한민국의 외교적 이득으로 남아 유종의 미를 거뒀다”라고 썼다. 이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라 미래는 더 암울하다.
사우디는 대한민국이 뭐라든 사실 안중에 없다. 신경도 안 쓴다. 그들은 예견됐던 자신의 값진 승리를 마음껏 즐기며, 치밀하게 전략적이고 일관적인 외교 성과를 경제로 연결시켜 흥할 것이다. 미래로 갈 것이다. ‘2023 새만금 세계잼버리’에서 세계적인 비웃음거리가 된 대한민국은 끝내 사우디에 대해 갖고 있는 천박하고 무식하고도 망측하고 부끄럽기 짝이 없는 선입견으로 가득한 비하 영상을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KTV 공식 채널에 올렸다. 대한민국은 그 참을 수 없는 찌질함으로 퇴보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졌지만 잘 싸웠다’가 아닌 ‘졌지만 잘 싸돌아다녔다’는 신장식의 말처럼 이번에도 어김없이 전 정권을 탓하는 찌질한 내 나라, 대한민국 정부는 문재인 정권 8년 차라 불리는 마당에 차라리 앞으로 예정된 글로벌 이벤트 준비를 화끈하게 탁현민에게 넘기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