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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나 Apr 24. 2024

소멸하는 나라의 페미니스트

나는 당신의 적이 아닙니다.


소멸하는 나라의 ‘애국자’가 되라는 대한민국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텐트 밖은 유럽> 남프랑스 편을 봤어요. 배우 라미란과 한가인, 조보아, 류혜영, 오직 네 여자가 캠핑 프로그램에 출연해 뚝딱뚝딱 텐트를 치고, 밥을 해 먹고, 쌩얼에 퉁퉁 부은 얼굴을 화면 가득 드러내니 괜히 감정에 복받쳤어요. 누군가의 ‘딸’이자 또 ‘엄마’이자 자기 일을 하는 프로페셔널로서 자신이 지금껏 정성껏 가꿔온 것을 세상에 꺼내어 놓는 걸 보는 것만큼 아름다운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 한국에선 이런 걸 더 자주 보지 못할까? 방송국 사람들 대부분, 아니 의사결정권을 가진 이들인 PD나 제작부장이 남성이 많아 그런 거라 생각해요. 실제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채우는 건 대부분 여자 작가들인데 말이죠.    


그러다 채널을 돌려 평소 보지도 않는 <오은영 리포트 결혼지옥>에 멈추고 말았습니다. 신체적 장애를 가진 엄마와 만성피로와 우울감에 시달리는 아빠가 가정을 지키기 위해 몸과 마음이 부서지도록 일하면서도 정작 아이와는 시간을 보내지 못했어요. 아빠는 가장으로서의 압박과 불안을 호소하며 회사에서 집으로 향하는 길 길에 서서 과자를 먹었죠. 당뇨가 있는 사람인데도 말이죠. 프로그램에 나오는 엄마, 아빠가 제 또래이기도 했고, 또 제가 어렸을 때 익숙했던 환경이기도 해서 더 눈을 떼지 못한 걸 거예요. 언제나 ‘가정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돈을 벌러 나간 엄마와 아빠는 하나뿐인 딸의 많은 걸 놓쳤거든요.


이후 채널을 돌리다 제 눈과 귀를 의심하는 TV 광고를 봤어요. “아이 낳고 나라를 구하자”라는 말을 저리 뻔뻔하게 하는 지경이 되었구나, 한국은 정말 희망이 없구나, 마음이 쿵 하고 다시 한번 바닥에 떨어졌죠. 그렇다면 비혼에 아이도 안 낳는 저는 매국노군요. 아이를 낳아 애국자 소리 들으려고 저는 이 세상에 태어난 게 아닙니다.





한국의 출생률, 아니 전 세계적인 출생률이 이렇게 떨어지다간 현대판 <핸드메이드 테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겠다는 과대망상을 해봅니다. 마거릿 애트우드가 쓴 디스토피아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드라마 <핸드메이드 테일>은 극단적인 출산율 저하를 배경으로 한 사회에서 여성의 자유와 권리가 극도로 억압되는 미래를 그리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처럼 남성과 여성의 극단적인 갈등과 대립 구조가 강해지는 사회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죠. 영상미와 배우들의 연기, 모든 면에서 퀄리티가 훌륭하니 아직 안 본 분이 계신다면, 추천합니다.


ⓒ 핸드메이즈 테일



소멸하는 나라, 대한민국’. 한국에 돌아와서, 아니 한국 밖에서 살 때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말입니다. 음악 레이블에 일하는 친구가 “요즘 애를 안 낳아서 아이돌 지망생이 없다”라고 푸념할 정도예요. 엄마가 봉사했던 초등학교는 내년에 신입생이 1명도 들어오지 않아 폐교 수순을 밟을 거라고 합니다. 상황이 정말 심각합니다. 제 친구들 역시 대부분 결혼을 하지 않고 자기 일을 하거나, 결혼했다 해도 아이를 낳지 않아요. 그중 아이를 낳은 몇몇 친구들은 본격적으로 사교육 시장에 뛰어들어 그 비용을 벌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전쟁 같은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아이들도 말이 아니고요. 그런데 아이를 낳지도 않은 50~60대 아저씨들(한국의 22대 국회의원 당선자의 평균연령은 56.8세입니다) 대부분 서울대를 나왔다는데, 그 똑똑하다는 양반들이 모여서 내놓는 저출산 대책이 대부분 “아이 낳으면 돈 줄게”입니다. 앞으로도 한국의 저출산율은 높아질 것 같지 않습니다. “여성들은 가정으로 돌아가 애를 낳고 돌봐야 한다”라며 전통적인 성역할을 강조한 중국의 시진핑 보단 나으니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요.






‘82년생 김지영’ 대신 ‘나’를 선택하다
     

해외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한동안 엄마 대신 집안일을 했습니다. 일어나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면 하루가 다 가더라고요. 우리 집 식구들이 삼시 세끼를 다 챙기는 것도 아닌데, 정말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블로그를 뒤져 레시피대로 따라 하니 요리는 그럴싸하게 되더군요. 정성 들여 차린 밥을 무뚝뚝하게 비우는 아빠에게 “아빠, 이거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내가 두세 시간 들여 만든 건데 맛있다, 한마디 해주라” 하면, “이런 요리 실력, 시집가서 남편한테나 해줘라”라고 핀잔만 듣습니다.      


누군가 어떤 웹사이트에 여성의 가사노동과 남성의 직장 생활을 비교하며, 직장 생활이 훨씬 더 힘들고 불행하다고 펼치는 주장을 본 적이 있어요. 옆에 있다면 꿀밤을 한 대 때려주고 싶더라고요. 본격적인 가사노동을 한 달, 아니 일주일만 해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집안일은 들인 시간과 노동에 비해 정말 표가 안 납니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실적으로 쌓이는 것도 아니에요. 이걸 바탕으로 승진을 하거나 연봉이 오르거나 연차나 휴가, 복지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자연스럽게 자존감은 낮아지고 스스로 일을 통해 존중받는다는 생각을 못하죠. 저는 한국에 돌아와 본격적으로 가사노동을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돼 우울감에 빠졌습니다. “바깥에서 돈 벌어 온다”는 벼슬을 한국만큼 쳐주는 데도 없습니다. 남자는 돈만 잘 벌면 바람 좀 펴도 되고, 사회 생활하다 보면 그럴 수 있는 일입니다. 집에서 살림하는 여자가 바람피우면 사회적 매장입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제가 한국 사회의 평균 결혼 연령인 서른 즈음에 결혼했다면 저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요? ‘82년생 김지영’ 대신 ‘나’를 선택한 저는 후회가 없습니다. 서른까지 저는 어떻게든 한국이 기대하는 모습에 부응하려 나름 열심히 노력했거든요.   

   




‘82년생 조하나’가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겪은 이야기를 좀 해도 될까요?


초등학교 다닐 땐 남자 담임 선생님이 여자애들 쪼물딱 거리는 건 “예뻐서 그래”였습니다. 중학교 땐 선택권 없이 여자니까 가정 교과를 배워야 했고, 우리의 사명은 ‘밥 하고 집안일 잘하는 현모양처’라고 배웠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처럼 떠돌던 여고 근처 바바리맨을 만난 저는 그 이후 트라우마로 한동안 혼자 다니질 못했는데, 경찰은커녕 선생님도 “여고 근처엔 원래 그런 남자가 많다”라고 했던 안타까운 시절이었습니다. 밤길을 하루도 맘 편히 걷지 못하며 본능적으로 ‘여자’ 임을 느끼며 살았습니다. 뒤에서 누군가 쫓아오면 그나마 선해 보이는 남자에게 도움을 청하며 평생을 남성에 기대어 살아야 한다는 ‘여성’ 임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살았죠. 대학 오리엔테이션에서 선배들은 신입생 남녀를 짝 지워 남자의 바지에 동전을 넣고 여자가 입으로 더듬어 찾게 하는 게임을 시키고 술을 퍼 먹이며 즐거워했고, 학교 근처 방석집은 언제나 만원이었습니다. 군대 가는 친구들은 사창가에 들르는 걸 무슨 대단한 통과의례를 마친 듯 자랑했고, 그들의 아버지, 또 그 아버지가 그랬듯 군대를 성매매의 거룩한 명분처럼 사용했습니다.      


대학 다니며 밤에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찾다 칵테일 만드는 게 재밌어 바에서 일했습니다. 조주사 자격증까지 따며 술과 와인에 대한 전문 지식을 쌓았지만 대부분의 남자 손님들은 그런 거엔 관심이 없었습니다. “여자 나이에 ‘비읍(ㅂ)’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유통기한 끝난 거다”라는 한 손님의 농담이 이십 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생각나는 걸 보니 충격이 크긴 컸나 봅니다. 하지만 그건 매일 마주하는 일상 중 하나였죠.   

   

한국 사회에선 특별한 교육 없이 여성의 역할이 알아서 학습됩니다. 경제적 이유로 폭력을 휘두르는 아빠에게서 도망치지 못한 엄마를 보면서 어렸을 때부터 나도 모르게 여성은 남성 없인 안 되는 유약하고 의존적인 존재라는 걸 알았고,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어가는 나를 발견했죠. 자유로워 보이는 듯했던 홍대의 인디 컬처 신에서 일할 때도 저는 ‘오빠’를 ‘형’이라 부르며 함께 담배를 피웠습니다. 그건 바로, 나를 ‘이성’으로 보지 말고 더듬지 말고 술 먹어도 해코지하지 말아 달라는 동맹 요청 같은 거였죠. 그래야 그들만의 세상에서 여자인 저는 별다른 가십거리 없이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죠.      


남성 패션지의 홍일점이었던 저는 그들만의 사회와 문화, 사고방식에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남의 여자가 입는 미니스커트는 괜찮고, 내 여자는 안 되는 논리가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지만, 당시 제 주변의 남자들은 순수한 미소녀의 얼굴에 가슴이 큰 여자에게서 조신하면서도 섹시함을 동시에 요구했고, 성폭력을 당하면 여자가 헤퍼서라고, 남자는 신이 주신 본능을 컨트롤하지 못하기 때문에 여자가 조심해야 한다고 공공연히 이야기했습니다. 당시 여배우들의 검사 성상납 폭로가 있었고, 그 장소로 쓰였던 빌딩이 사무실 근처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가해자들은 단 한 명도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치마가 너무 짧다, 가슴이 너무 작다, 살이 너무 보인다, 너무 뚱뚱하다, 너무 말랐다, 여자가 목소리가 너무 크다, 드세다, 나댄다, 너무 똑똑하다, 애교가 없다, 좀 웃어라, 너무 웃지 마라, 여성스러워져라, 순진한 맛이 없다, 헤프다, 너무 빡빡하게 굴지 마라, 섹시한 맛이 있어야지, 순수한 맛이 있어야지, 오늘 그날이냐, 너무 감정적이다, 너무 쿨하다, 불평하지 말아라, 여자가 할 일을 해라, 남자에 맞춰라, 피곤한 페미니스트, 왜 애를 안 낳냐, 왜 하나만 낳냐, 밤에 늦게 나다니지 말아라, 그렇게 옷 입지 말아라, 여자가 술 취해 다니지 말아라, 끼 부리지 말아라, 외간 남자한테 웃지 말아라, 아무도 믿지 말아라, 나 빼고 다 나쁜 놈이다, ‘예스’라고 하지 말아라, ‘노’라고 하지 말아라,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저는 자연스럽게 스스로 일어설 수 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Be a lady, they said' ⓒ Girls. Girls. Girls. Magazine



태어나 자라면서 엄마, 아빠로부터, 학교에서, 선생님으로부터, 주변 사람으로부터, 심지어 여자친구들까지, 그들에 의해 내 머리와 마음에 주입된 주문에 알아서 스스로 수동적이고 연약하며 의존적인 한국의 이상적인 여성상에 가까워지려 노력하는 제가 되었습니다. 삼십 대 초반, 캄캄한 제 앞길에 “난 결혼할 생각 없어” 해놓고도 보이지 않는 사회적인 압박에 괴로워했습니다. 당시엔 ‘비혼’이라는 단어도 없어 사람들은 결혼하지 않은 삼십 대 싱글 여성을 ‘노처녀’라 부르며 제멋대로 단정 지었습니다. 2005년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노처녀’라는 설정으로 나왔던 삼순이의 나이가 스물아홉이었던 시절입니다.  

    

언젠가부터 저는 사회가 ‘삼십 대’ ‘싱글’ ‘여성’을 대하는 태도에 주눅 들어가고 있는 걸 느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며 그 모든 실수와 경험을 바탕으로 성장한 스스로가 꽤 자랑스러운데, 사회는 남편과 자식을 위해 희생하지 않는다고 함부로 판단하며, 여성의 신체적 노화를 들어 제 미래를 협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스스로 물었습니다.


나이 드는 건 똑같은데 왜 ‘삼십 대 남자’는 괜찮은 거지?

나는 왜 화장을 하는 거지?

왜 옷을 차려입을까?

왜 가슴에 뽕을 넣지?

언제까지 나는 이 무례한 사회를 참으며 예의를 지켜야 하는 걸까?








외딴 섬도 피할 수 없는 현실
      

한국을 떠나 해외로 간 건 ‘여자로 살기에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기대감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피부색과 머리색, 눈동자색만 달랐을 뿐 언제나 저를 ‘스위티’ ‘베이비’ ‘달링’이라 부르는 유러피안 백인 남성들에 둘러싸여 사는 건 마찬가지였으니까요. 다이빙에 있어 ‘여자는 남자보다 못하다’는 고정관념과 싸우며 ‘미모의’ ‘몸매가 좋은’ 같은 수식어를 붙이지 않으려 화장도 하지 않고 손톱을 바싹 깎고 스스로 ‘여성 다이버’에서 ‘여성’을 지우려 애썼습니다. ‘여성’이 앞에 붙으면 좋은 건 하나도 없었으니까요.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서 실력과 지식을 쌓아도 ‘여자치곤 잘한다’는 괴상한 칭찬을 들었습니다.      


탱크를 들어주려는 남자 강사들에게 괜찮다고 말하며 제가 다이빙 실력을 쌓아 레벨을 높일수록 저를 못마땅해하는 남자들 틈에서 ‘그나마 한국보단 낫다’는 기대는 산산이 깨졌습니다. 하루는 다이빙 보트 위에서 다이빙을 마치고 쉬는데 동료 남자 강사들이 제 앞에서 아주 재미있게 웃으며 떠들더군요. 영국 남자 강사가 러시아에서 온 여자 강사와 하룻밤 잤는데 임신이 됐나 봅니다. 한동안 러시아 강사가 안 보여 왜 그러나 했는데, 중절 수술을 하러 집에 간 것이었습니다. “내가 러시안 베이비를 만들었어!” 떠들던 영국 친구의 큰 웃음소리와 또 그걸 재밌다고 손뼉 치며 부추기고 농담거리로 삼은 그의 친구들이 불편해 이야기하니 저는 어느새 “깐깐하고 피곤한 페미니스트”가 되어 있었습니다. 다이브 센터 보스에 찾아가 말하니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이미 다이브 센터 전체에 퍼진 소문 때문에 러시아에서 돌아온 여자 강사만 일자리를 잃었죠.      


다이빙 산업계에서 다이버 레벨이 올라갈수록 여성의 비율은 급격하게 줄어듭니다. 꼬따오에서 지난 10년 간 제가 본, 다이빙 강사의 최고 레벨인 코스디렉터 여성은 단 4명뿐이었습니다. 바비 인형 같은 외모와 몸매를 자랑하는 캐내디언 친구는 일부러 똑똑하지 않은 척 연기를 하며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제게 직접 말했습니다. 남자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걸 백치미로 어필하고 적당히 선을 지키면 된다고 말이죠. 홍콩 친구는 그러질 못해 ‘나이 들고 기가 센 아시안’으로 배척을 당했습니다. 나머지 두 명의 영국 친구는 끊임없이 다른 여자 다이버들을 유혹하는 자신의 남편을 지키기 위해 애꿎은 상대 여자들을 괴롭히며 삽니다. 어디서든 여성들은 연대하지 못하고 자기들끼리 편을 갈라 남성을 위해 거리낌 없이 싸웁니다. 다이빙 산업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은 모두 드러내기 꺼리고, 모든 건 피해자가 스스로 증명해 내야 하며, 결국 섬을 떠나는 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였습니다.



 




돈 주면 아이를 낳을 거란 오만한 생각


저출산 문제는 한국만 겪는 문제는 아닙니다. 오늘날 갑자기 불거진 문제도 아니고요. 한국에서도 기사를 찾아보면 90년대 말, 2000년대 초부터 여성이 사회 및 경제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저출산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보다 훨씬 빨리 늙어가는 일본을 보면서도 우리는 20년 가까이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올 게 온 것이죠.      


여성의 투표권이 허용된 게 불과 100여 년 전이니 남녀 성평등이 완벽하게 이뤄진 나라를 찾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성평등 수준이 높은 국가가 저출생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잡은 건 분명해 보입니다. 남성에 부양의 의무를, 여성에 보육의 의무를 분리해 기대하는 한국과 달리 강력한 성평등 정책을 시행하는 국가일수록 출산율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를 몇 가지 들어볼게요. 유럽에서 가장 높은 출산율을 유지하는 스웨덴은 양쪽 부모가 동등하게 일과 가정생활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정책을 지원하는데요. 예를 들어, 스웨덴의 육아 휴직 정책은 자녀 한 명당 총 480일의 휴가를 허용하며, 부부가 함께 사용할 수 있고, 보육 지원 제도도 풍부해 부모가 경력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고품질의 저렴한 보육 서비스를 제공하여 일하는 부모를 지원해 여성이 경력과 양육을 병행할 수 있게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스웨덴이 성평등을 사회의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으며, 이는 교육, 직장, 그리고 가정 내에서의 역할 분담에 있어 남녀가 동등한 책임과 기회를 갖도록 장려한다는 점입니다. 성평등 정책은 출산과 양육이 여성만의 책임이 아닌 것으로 인식하게 하는데, 한국이 가장 귀 기울여야 할 부분이 아닌가 합니다.      


노르웨이 역시 광범위한 육아휴직(전액 급여로 49주, 또는 80% 급여로 59주)을 제공하며, 보육비 지원,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한 강조 등 가족의 복지를 지원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오후 5시 전에 퇴근하지 않으면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않는 부모라고 인식되는 직장 문화도 강하다고 해요. 해가 지기 전 집으로 돌아가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당연한 사회적 분위기도 강하고요. 이러한 정책 덕분에 부모는 일과 가정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하지 않아도 됩니다.  




최근 세계 최초로 여성 낙태권을 헌법에 명시하고, 정반대의 길로 가는 미국을 비웃기라도 하듯 파리 에펠탑에 이를 기념하며 만천하에 알린 프랑스는 다양한 저출산 대책을 통해 성공적으로 출산율을 개선해 온 대표적인 나라입니다. 그들의 접근 방식은 정부와 사회 전반에 걸쳐 다양한 지원과 사회적 인식 변화와 개선을 포함합니다.    

 

프랑스는 가족법을 도입해 양육비에 대한 부담을 거의 없앴습니다. 프랑스는 GDP의 5%에 달하는 예산을 가족 정책 관련에 할당하며, 여성의 경제활동 장려와 가정과 직장의 양립 정책을 강화했죠. 자녀를 낳은 가정에 매달 약 1천 유로를 지급하고, 이는 자녀가 만 3세가 될 때까지 계속됩니다. 또한, 교육비와 의료비 대부분이 무료이며, 자녀가 노동시장에 진입할 때까지 지속적인 지원을 제공하죠. 중산층과 다자녀 가구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사회수당과 세제 혜택을 제공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프랑스 정부가 나서서 사회적 인식과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점인데요. 프랑스는 아이를 낳고 싶은 욕구를 자극하는 가족 정책을 통해 저출산 문제에 접근합니다.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해 지원하죠. 예를 들어 동거와 결혼 사이에 큰 차이를 두지 않고, 아이가 있는 가구는 무조건 국가가 전폭적으로 지원합니다. 출산과 양육이 경제적 부담이 아닌, 사회적으로 지원되는 행복한 경험으로 전환시키는데 정책의 철학을 두었다고 합니다. 또한, 여성의 경력 단절에서 오는 박탈감과 무력감을 이해하고, 일과 가정생활의 균형을 장려하는 정책은 프랑스가 출산율을 올릴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의 가족이라는 개념에 유연성과 창의력을 발휘해 대응하는 프랑스 정부에 그만큼 여성들이 많이 일하기 때문이기도 하죠.      




최근 발표된 자료들을 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는데요. OECD 국가 중 저출산 문제가 점점 더 심각해지고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나라는 바로 한국과 일본, 이탈리아입니다. 세 나라의 공통점은 파시즘 전적이 있는 귄위주의와 가부장적 인식이 사회적으로 여전히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 나라라고 해요. 한국과 일본, 이탈리아 같은 나라는 여전히 전통적인 가족 구조와 성역할에 대한 깊은 뿌리를 가진 인식이 깊게 남아 있습니다.


전통적인 가부장적 사회에서는 여성이 주로 가정을 돌보고 아이를 키우는 역할을, 남성은 가정의 경제적 부양자 역할을 맡는 것이 일반적이죠. 또한, 육아 휴직 제도와 보육 서비스가 잘 갖춰져 있지 않거나, 갖춰져 있다 해도 실제 이용이 사회적 인식과 압박으로 불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직장 내 성차별이 심할 경우 여성은 경력을 포기하거나 출산을 기피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족을 지원하는 사회적 제도나 정책이 충분하지 않은 것도 문제죠. 높은 교육비, 살인적인 사교육비, 주거비, 그리고 양육비는 젊은 부부가 출산을 기피하게 만드는 큰 요소입니다. 삶의 안정감을 얻지 못하는 부모가 그 불안감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을 리 없지요.








왜 한국 여성은 아이를 낳지 않나?   
  

성평등과 저출생 관련 자료를 찾아보다 가장 흥미로웠던 건 바로 르완다였습니다. 르완다는 비서구 국가들 중 유일하게 성평등 수준이 높은 나라인데요. 르완다는 국가의 의사결정 기구에서 30% 이상이 여성입니다. 1994년 대학살 이후, 남성 인구가 줄어들면서 여성들이 공석이 된 정치적, 경제적 자리를 채우게 됐는데요. 2003년 르완다 헌법에 여성 할당제를 도입, 의회 의석의 30% 이상을 여성이 차지하도록 의무화하는 혁신을 단행했습니다. 이 정책으로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이 급격히 증가해 최근엔 의회 의석의 60% 이상을 여성이 차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여성 의회 참여율을 기록하죠.

     

이러한 변화는 긍정적인 사회 경제적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여성 리더들이 증가함에 따라 정책 결정 과정에서 여성과 어린이의 복지가 더 많이 고려되었고, 교육 및 보건 서비스의 질이 향상되었습니다. 또한, 성평등을 촉진하는 다양한 법률과 정책이 도입되어 여성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 향상에 기여했고요.

      

지금, 한국은 어떤가요? 각종 미디어가 “나라가 없어진다!”라고 불난 집에 부채질만 하고 있는데, 정작 아무런 대안도 내놓지 못하는 기성세대는 무능하고, 무지하고, 무력하기 짝이 없습니다. 아니, 어쩌면 관심이 없는 걸지도 모르죠.

     

왜 한국의 정부와 국회는 한국의 저출산 문제를 다루면서 당사자인 여성은 철저히 배제하나요? 모든 언어와 담론, 결정권을 남성들이 쥐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평균연령 50~60대의 남성들로 가득한 국회는 한국의 저출산 원인이 <나 혼자 산다> 같은 나쁜 프로그램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에게 정작 아무것도 묻지 않는 사회, 저출산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여성과 청년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사회, 우리는 시작부터 틀려먹었습니다. 여성이 빠진 여성가족 정책으론 아무것도 되돌리거나 더 나아지게 할 수 없으니까요.

      

한국은 살인적인 집값과 사교육비, 물가에 고통받는 부모들로 가득합니다. 노동시간은 OECD 국가 중 가장 길고, 직장 괴롭힘과 갑질은 최고인 나라죠. 이미 우리는 일본의 예를 통해 충분히 경고를 받아왔는데,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제 잇속만 채우고 사회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엘리트 집단의 무능과 탐욕이 이를 방치해 왔습니다.

      

ⓒ 뉴욕 타임스


유교의 단점과 자본주의의 단점을 합쳐놓은 게 지금의 한국입니다. 고등교육받고 똑똑하고 능력 있는 여자들이 매일 같이 집으로 돌아가면 수십 년 전으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을 탑니다. 시대가 많이 변했다고요? 아니요. 전통적인 ‘엄마’와 ‘며느리’ 역할은 여전히 사회적으로 건재합니다. 주변에 결혼한 몇몇 친구들의 시집살이는 우리 엄마의 80년대 시집살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한국이 50년간 비정상적인 경제 발전을 이루면서 여성을 고등교육 시키고 일터로 밀어 넣어 야망을 키워줬건만, 가정에서의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역할에 대한 인식 변화는 그 속도만큼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저만 해도 중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집에서 밥하고 집안일하고 내조 잘하는 게 여자의 덕목이었는데, 대학에 가서야 성평등에 대해 듣고 보기 시작했으니까요.

      

‘데이트 폭력’이나 ‘스토킹’이라는 개념이나 단어조차 없던 시절, 비뚤어진 욕망으로 가득한 남자들과의 폭력적이고 소모적인 연애를 끝내고도 나를 괴롭히는 건 “너무 사랑해서”라고 말하는 그를 몇 번 받아주기도 했죠. 그러면서도 저는 계속 답이 없는 질문을 떠올렸습니다. “나는 충분히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인데,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할까? 언제까지?” 한국 사회의 인식과 제도 변화는 여성의 자의식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얼마 전 감동 깊게 본 <가여운 것들>이 생각나네요.


ⓒ 가여운 것들





이미 태어난 아이들과 부모부터 행복하자

한국은 아이들이 가장 불행한 나라예요. 저는 한국이 쓸데없는 에너지와 막대한 자원과 시간을 사교육 시장에 쏟고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는데 드는 비용이 얼마인가요? 사교육도 없고, 대학까지 모든 교육 과정이 무료인 독일처럼, 국회의 여성 의원 비율이 높은 르완다처럼 혁신하지 않는 한 한국의 출산율은 절대 높아질 수 없습니다. 초등학생이 학교 끝나고 학원을 몇 개를 다니나요? 그 학원들을 보내기 위해 뼈 빠지게 일해야 하는 부모는 그 핑계로 아이를 한 번 제대로 안아주지도 못해요. 구멍 난 항아리에 물 붓듯, 효과도 없는 저출산 대책에 쏟아붓는 천문학적인 돈으로 공교육을 정상화하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뛰어놀고, 학교 다녀와서도 뛰어놀게 하면 안 되나요? 아이 학원 보내는 부모가 더 이상한 나라로 만들 순 없나요?

     

주거가 불안하고 사교육 시장이 팽배하고 모든 부모가 아이를 월 수백 들여가며 학원에 보내는 이유가 의사, 변호사, 판검사 만들려는 이유가 사라지지 않는 한, 서로 을이 되지 않으려는 이기적인 어른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내일을 위해 오늘의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적 압박이 계속되는 한, 한국에선 절대 저출산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겁니다. 오늘이 행복해야 내일도 행복합니다.

 

한국의 신혼부부와 청년은 전세사기를 당해도 피해구제를 받지 못하고, 공공 어린이집과 돌봄 교사의 처우는 엉망이며, 아이들 학대와 사고는 모든 곳에서 일어나고, 사회적 참사에 아이들이 희생되어도 이를 보호해 줄 사회적 안전망은 없습니다. 경쟁에 지친 아이들은 서로를 미워하고 혐오하다 어른들이 하는 짓을 그대로 따라 학폭과 범죄를 일삼습니다. 남들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학원에 내쳐지는 아이들과 그 돈을 벌려고 몸이 부서져라 일하고, 또 그놈의 돈 때문에 아이 앞에서 싸우는 엄마, 아빠를 아이들은 매일 마주합니다. 그 고생을 알기에 아이들은 또 죽도록 공부하고 경쟁하며 전쟁을 치르죠. 엄마도 아빠도 아이도 매일이 전쟁입니다.


가장 반짝반짝 빛나고 꿈꿀 나이에 시들어 가는 아이들이 가장 많은, 청소년 자살률 1위의 나라. 그렇게 열심히 공부만 하다 군대에서 괴롭힘 당하고, 여자들은 데이트 폭력에 고통 받는 나라. 서로 혐오하고 죽이고 밟고 올라서도록 세뇌하는 나라. 중장년이 되면 회사에서 괴롭힘 당하고, 죽도록 일만 하고 돈에 미쳐, 무책임하고 미성숙한 어른으로 살다가 결국 노인이 되면 가난과 외로움에 떨다 자살하는 나라(OECD 노인 자살 1위). 출생률이 떨어진다고 그 난리 법석을 떨면서도 이민자, 혼혈, 장애인, 한부모 가정 아이는 방치하며 ‘우리는 대체 왜 아이를 낳는가?’라는 질문에 경제적 성장 때문이라는 말 말고는 아무것도 답할 수 없는 나라, 대한민국.      


지금 우리 곁에 살아있는 아이들도 행복하게 하지 못하고 지키지 못하면서 우리는 대체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거죠? 왜 우리는 우리가 겪은 경쟁의 고통과 사회의 폭력을 멈추지 않고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대물림하는 거죠?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끔찍한 최면을 걸며 남성과 여성을 갈라 치기하고 세대 간의 갈등을 부추기며 혼란의 틈에서 탐욕을 채우는 시스템에 왜 우리는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죠?     







 

         

얘는 페미니스트야.”


러시아 친구를 원나잇 스탠드로 임신시켰다는 걸 자랑스레 떠들 던 영국 친구가 비꼬는 말투와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는 그 단어가 탄생한 웨스턴 월드에서조차 ‘저 여자 피곤하니까 조심해’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한 남자 친구가 이렇게 말합니다.   

  

여자가 페미니스트’인 건 당연한 거 아냐?

 나는 이 세상 모든 남자가 ‘페미니스트’여야 한다고 생각해.”     


성평등은 남성이 잃은 만큼 여성이 갖고, 여성이 얻는 만큼 남성이 잃는, 제로섬 게임이 아닙니다. 여성은 남성이 가진 것을 나눠달라는 것도 빼앗으려는 것도 아닌, 인간으로서 원래 가졌어야 할걸 갖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시스템과 권력이 바라듯 남성과 여성이 편을 갈라 죽일 듯 혐오하고 경계해도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우리는 인간입니다. 비겁하고 비열한 인간이 될 수도 사랑하고 존경하며 연대하는 인간이 될 수도 있죠. 선택은 저와 당신의, 우리의 몫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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