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과 건강, 모두를 사로잡다

40대, 다시 피어나는 삶의 기록2

by 쌀방언니

새벽 2시, 아직 세상이 깨어나기 전 디저트를 만드는 공간에 있는 시간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다. 고요한 정적 속에서 오직 레시피 개발에만 몰두할 수 있는 이 시간. 새로운 재료를 만지고, 실험하고, 때로는 실패하고, 때로는 놀라운 발견을 하는 이 과정이 내게는 명상이자 놀이이자 예술 작품을 만드는 시간이었다.


레시피 개발의 영감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지인이 건넨 망개떡이 나의 가슴에 작은 씨앗을 떨어뜨렸다.


'의령'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망개떡'이다. 의령에 처음 왔을 때 망개떡을 보고 신기한 떡이라고 생각했다. 망개잎에 쌓인 첫인상부터가 다른 떡들과 다른 매력을 풍겼고, 찹쌀이 아닌데도 떡이 무척 찰졌다. 망개떡집마다 팥소(팥앙금)의 맛이 미묘하게 달라서 골라먹는 재미도 있었다. 은은하게 퍼지며 입안에 맴도는 망개잎의 향이 좋아 자주 먹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망개떡을 먹는 횟수는 줄어들었지만 가끔 한번씩 먹는 망개떡은 역시 별미였다.


오랫만에 만난 지인이 건네 망개떡을 먹는 순간, '이걸로 뭔가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그날 저녁부터 나는 망개를 활용한 레시피 연구에 빠져들었다.


우선 망개가루를 구해보기로했다.

역시 찾고자 하면 보인다고 가까운 지인이 망개가루로 초미세분말 테스트를 마쳤다는 소식이 들렸다. 나는 바로 연락을 하여 망개가루로 디저트를 만들 계획이라고 알렸다.

지인은 흥쾌히 망개가루를 나누어 줄테니 디저트를 만들어 보라고 하였다. 초미세분말로 만들어진 망개잎가루는 색상이 녹차가루보다 조금 더 짙은 회색의 녹색이었다. 잎에서 나는 특유의 향은 잘 느껴지지 않았다.


레시피 개발은 과학 실험과 매우 닮아 있다. 가설을 세우고, 실험하고, 결과를 분석하고, 다시 가설을 수정하는 과정의 반복이다.

가장 먼저 '비건 망개파운드' 를 개발해 보기로 했다. 처음 생각은 아주 간단했다. 말차 대신에 망개가루를 사용하고, 내가 좋아하는 견과류를 사용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첫 시도는 완전한 실패였다. 먕개의 쓴맛과 향이 너무 강해서 전체적인 밸런스가 무너졌다. 분말일때는 잘 맡아지지 않던 향이 구워지니 쓴 한약향이 났다.

그래서 두 번째 시도에서는 망개가루의 양을 대폭 줄였다. 그랬는데도 향이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유채유 대신에 코코넛 오일을 사용해 보기로 했다. 코코넛의 향이 망개향을 잡아 줄 것을 기대하며.

넣는 재료를 달리하며 세 번째, 네 번째... 실험을 계속하였다. 그러다 깨달았다. 폭신폭신한 파운드에서 망개향을 잡기는 어렵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비건 망개 파운드' 에서 '비건 망개 스콘'으로 디저트의 종류를 아예 바꿔버렸다.

망개잎의 쓴 향은 오일과 두유등으로 잡아 나가며 개발을 계속했다. 수많은 실패 끝에 나는 망개 스콘을 완성했다. 잔잔하게 맴도는 망개향을 나는 팥소(팥앙금)으로 잡았다.


망개스콘은 말차스콘이나 토마토스콘처럼 호불호가 갈렸다. 처음보는 비건 망개스콘의 맛이 궁금하여 먹어본 후 망개의 매력에 빠져 계속 찾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맛을 경험해본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망개파운드.jpg
망개스콘.jpg


진짜 맛있는 디저트는 단순한 단맛이 아니라 여러 겹의 맛이 층층이 쌓여 있다는 것을 나는 거듭 만들면서 깨달았다. 단맛, 짠맛, 쓴맛, 신맛, 그리고 감칠맛까지. 이 모든 맛들이 적절한 비율로 조화를 이룰 때 진짜 깊은 맛이 탄생한다. 나는 이런 맛의 디저트를 식물성 재료로 만들고 싶었다.


7가지 곡물을 갈아놓은 미숫가루로 스콘을 만들기도 하고, 땅콩과 잼을 사용하여 쿠키를 만들기도 했다. 두부로 만든 커스타드크림에 제철 과일과 견과를 올려 타르트도 만들었다.

단순히 맛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건강에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설탕 대신 대추의 천연 단맛을 를 활용하여 에너지바도 만들었다.

블랙푸드(검은깨, 검은콩, 검은쌀가루)로 케이크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실패한 레시피들은 보물창고였다. 버리는 것 하나 없이 모두 배움이 되었다. 실패를 통해 배운 것들을 다른 레시피를 개발할 때 응용하면서 유용하게 사용했다.


실패는 실패대로 흥미로웠고 성공하면 성취감에 황홀했다.


한국적인 맛으로 비건 디저트를 만들고 싶어졌다. 나는 떡을 만들줄 아는 사람이, 한때 떡을 만들었으며, 떡제조기능사 자격도 있다.

밀가루 대신에 찹쌀가루를 녹차 대신에 쑥가루를 견과류 대신에 완두배기로 쫀득한 파이를 만들었다. 스팀에 찌는 대신 오븐에 구웠고, 파이의 장식은 아몬드로 하였다.

떡처럼 탄력이 있으면서도 떡은 아닌 현대적인 맛이 탄생했다.


찹쌀 파이.jpg


나에게 레시피 개발은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그것은 창조의 과정이고, 소통의 방법이며, 사랑의 표현이었다.

내가 만든 디저트를 먹고 누군가가


행복해한다면, 건강해진다면,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다.


새벽 주방에서 홀로 레시피를 연구하는 시간.

그 고요한 시간 속에서 나는 무한한 가능성을 펼친다.

창의적인 레시피 개발, 그것은 끝없는 여정이지만 매 순간이 설레는 모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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