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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Feb 17. 2024

외아들을 키우는 나의 숙제

마주이야기

아들 녀석이 초2였을 때.

'마을을 위한 일, 실천 활동'이라는 숙제가 있었다.

아들과 무엇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동네 골목 쓰레기를 줍기로 했다.


아들과 나의 성격상 안 한 거 했다 말 못 하고,

한 번 하면 제대로 해야 하는 녀석은 매일 밤 저녁을 먹고 동네 골목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다.


"엄마, 여기 담배꽁초 진짜 많아."

"와, 여기도 있어!"


녀석은 보물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신나서

매일 1시간가량을 열심히 주웠다.


벌 받는 중이니?
 

이틀째 되던 어느 날.

중년의 남성이 아들에게 다가와 물었다.


"숙제하는 중이에요"


쓰레기를 줍던 녀석이 머뭇거리더니 중년의 목에 걸린 명찰(신분증)을 가리키며,


"이건 뭐예요?"

"아저씨는 뭐 하는 사람이에요?"

......

둘은 한참 대화를 나누다가, 중년이 사라졌다.


아들은 그 자리에 다시 앉아 담배꽁초를 줍고 있는데,

중년이 다시 다가와 아들에게 음료수를 건네주셨다. 



"네 마음이 너무 착해서 주는 선물이야"

"착한 사람은 선물을 받을 수 있거든"


중년은 웃으며,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에게 눈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중년은 동네 쓰레기 무단 투기를 단속하는 공무원이었다.

중년의 따뜻한 말과 행동은 아이를 더욱 신나게 했고,

일주일 동안 성실하게 숙제를 마쳤다.





"엄마, 나 졸업식날은 꼭 00 식당에 가고 싶어."

"왜?"

"졸업하면, 예전처럼 자주 못 갈 수도 있잖아.

  마지막으로 꼭 가고 싶어."


아들의 단골 식당 기준이 있다.


첫째, 사장님이 친절하다.

둘째, 사장님과 말을 할 수 있다.

셋째, 음식이 맛있다.


초밥을 좋아하는 아들의 단골 초밥집이 있다.

사장님이 아들을 기억하고, 갈 때마다 인사를 나누고 음료수를 주신다.

멀리서 친척이 오거나, 아들에게 이벤트가 있는 날이면 꼭 단골집에 가고 싶어 한다.


초등학교 졸업식.

이사로 중학교를 옆동네로 배정받아,

친구들과도 헤어지고. 단골집과도 헤어진다며 속상해하던 녀석이. 마지막으로 가고 싶다고 요청한 것이다.


"오셨어요?! 졸업식 했니?"

"네"

"오늘 초등학교 졸업했어요."

"아이가 오늘은 꼭 여기 오고 싶어 했어요."


한참 초밥을 먹고 있는데,

사장님이 갑자기 아이에게 다가와 5만 원짜리를 쥐어주셨다.


졸업 축하한다.


우리는 감사하면서도, 난감하고 당황스러웠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사장님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고,

사장님은 다시 한번 아이의 졸업을 축하해 주셨다.  


"00야, 사장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꼭 기억해야 해, "

"엄마, 나 정말 놀랐어. 감사하기도 한데,

 마음이 좀...."

"꼭 기억하고 있다가, 나중에 갚아드리자."

"어떻게 갚지?"

"글쎄.... 나중에 대학생 되어서 아르바이트라도 해야지 뭐."

"와, 좋은 생각이다. 나 여기서 아르바이트해야겠다."


우리 가족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곳을 지날 때면 사장님의 마음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나눈다.





결혼 3년 차가 되었을 무렵.

주변에서 임신 질문을 많이 받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병원에 갔는데,

'임신할 있는 몸이 아니에요.'라는 말을 들었다.

누구나 쉽게, 당연히 하는 알았던 임신이 나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알았을 때.

마음이 많이 아프고 힘들었다.


나에게 아들은.

어렵게, 기적처럼 찾아온 아이였다.

둘째를 갖기는 힘들 것 같다는 의사의 말에, 혼자인 아이가 늘 짠했다.

특히나 장례식에 다녀오는 날이면 혼자 남을 아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좋은 관계 경험


오랜 고민 끝에 내린 나의 결론이다.

아들이 좋은 관계 경험을 통해, '세상은 살만한 곳'이란 믿음을 주고 싶었다.


부모가 평생 함께 할 수 없으니,

부모와의 좋은 추억으로 아이가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


형제, 자매가 없지만,

세상엔 좋은 어른이 많으니 세상을 믿고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


그래서 외자녀를 둔 나의 숙제는,

아이에게 '좋은 관계 경험'을 많이 할 수 있게 는 것이었다.


다행히 아이는 15년 남짓의 짧다면 짧은 속에서

좋은 어른들을 만나서, 좋은 관계 경험이 많은 듯하다.


"엄마, 나 경비아저씨랑 친해."

"어떻게 친해졌어?"

"지난번에 아이스크림 사러 갔다가 내 것만 사 오는 게 좀 그래서, 경비 아저씨도 사다 드렸거든."

"아저씨가 '내가 널 줘야 하는데.'라면서 웃으셨어. 나는     놀다가 가끔 경비실 가서 물도 마셔."


"00야~ 이것 좀 먹고 가."

"누구야?"

"아, 저 교회 다니시는 분들인데. 가끔 간식 챙겨주셔."


"저 할머니는... 강아지가 좀 사나운데, 내 인사를 잘 받아주셔."


"저 요구르트 아주머니는..."


간혹 동네를 지나다 보면,

아들과 동네 분들이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며 나를 소개해준다.


어쩔 땐 우려되는 부분도 있지만

서슴없이 어른들과 인사를 나누고, 다가가는 녀석이 신기할 때도 있다.


엄마,
내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빠르게 변하는 세상,

갈수록 각박하다고 느껴지는 세상.

그래도 아들에게는 살만한 세상인 것 같아 다행이다.


앞으로도 아이가 나에게 건강하게 독립할 때까지.

아이가 좋은 관계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일.

그것이 외아들을 키우는 나의 숙제이며,

아날로그 육아를 지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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