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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없이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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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결 Dec 19. 2023

결혼 없이 살기


아무래도 결혼은 못 하겠다.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못 하는 거라고 인정하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돈이 없어서, 집이 없어서, 결혼할 사람이 없어서는 아니다. 셋 다 없긴 하지만 내가 결혼을 못 하겠다고 생각하는 조건들은 아니다.


나는 상상력이 좋은 편이다. 그런데 나의 결혼은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다. 어떻게 한 사람과 평생을 같이 살 수 있지? 흔히 기혼자들의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들을 들어보면 ‘이 사람이다’라는 확신이 든다는데 그것 참 신기한 일이다. 이 사람이라는 확신, 이 사람과 결혼을 하고 싶다는 마음, 이 사람과 결혼을 해야겠다는 다짐이 어떻게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


이 사람인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이 나타나면?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인데 남은 평생을 한 사람만을 바라보고 살겠다는 약속들이 믿기 어려울 뿐이다. 아무리 이혼이 쉬운 세상이라지만 결혼을 결심하며 이혼을 각오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한눈팔지 않을 확신, 나 또는 배우자에게 새로운 사랑이 찾아올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서약을 맺겠다는 확신,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해야 하는 이유들에 대한 확신, ‘확신’이야말로 결혼에 필요한 능력이다. 돈이 없어도 결혼할 수 있다. 그런데 확신 없이는 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결혼할 능력이 없는 게 맞다.


비혼주의는 아니다. 이 글 역시 결혼 없이 살겠다고 못 박는 것도 아니다. 그냥 혼자 사는 게 편하다는 쪽이다. 평생을 함께 살아온 가족과도 맞지 않은데 평생을 따로 살아온 남과 맞춰 가며 산다는 건 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내게 그런 책임감이 있을 거란 자신이 없다. 그래서 못 하겠다는 얘기다.


줄곧 그랬다. 결혼은 다른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 같았다. 아무리 가까운 친구가 결혼을 해도 먼 이야기로만 느껴졌다. 물론 결혼에 대한 어릴 적 로망은 있었다. 그건 웨딩드레스나 야외 결혼식장 같은 결혼식에 대한 상상이었지 결혼으로 가기까지의 과정과 결혼 이후의 생활과 삶에 대한 상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지금은 결혼식에 대한 로망 따위는 없다. 만약 결혼을 한다면 결혼식, 축의금, 결혼반지나 예물은 생략하고 혼인신고만 할 거라는 현실적인 조건만 명확해졌을 뿐, 여전히 내가 누군가와 남은 생을 함께할 약속을 하는 건 좀처럼 상상이 가질 않는다.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있어야 연애를 하든 결혼을 하든 생각이란 걸 하지 않을까. 그런데 연애에도 관심이 없으니 결혼도 그렇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사실 결혼에 대해서는 별생각이 없다.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레 내가 결혼할 가능성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생각을 하게 된 거지 진지하게 고민을 한 건 아니다. 결혼을 해야 하는 나이가 정해져 있다거나, 결혼을 인생의 계획이나 단계 혹은 연애의 종착지라고 생각지도 않는다. 결혼은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 결혼을 한다고 행복할 거라고 여긴다거나 결혼을 안 한다고 불행할 거라고 여기지도 않는다. 특별히 결혼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의미도 아니다. ‘굳이 하고 싶지 않은’ 딱 그 정도다.


결혼할 나이가 되어서, 남들 다 하니까, 혼자가 외로워서, 노후가 걱정되어서 같은 이유는 결혼을 내 인생에서 선택할 만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그런 이유라면 더더욱 하고 싶지 않다. 결혼이란 ‘이 사람 아니면 안 돼서’가 아니라, ‘이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지만 이 사람이어서’ ‘혼자여도 행복하지만 이 사람과 함께해도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 비로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을 만난다는 것과 그 사람도 같은 마음이라는 것, 그렇게 인연이 또 다른 삶이 되어간다는 건 기적 같은 일이다. 그런 결혼이 하고 싶어지는 것도 기적 같은 일이라서, 결혼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다.




없이 살기 92.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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