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그 사진에서 시작되었다..
최대주주의 사옥은 처음부터 성채였습니다. 저는 그걸 너무 늦게 알았습니다.
10층 높이의 유리 벽 안에는 치밀하게 설계된 그만의 왕국이 있었습니다. 꼭대기 층에 최대주주의 본사가 자리 잡고, 그 아래로 그가 낙점한 스타트업들이 한 층씩 채워진 거대한 '그룹사' 구조였습니다.
입사하던 날, 국내외 관계사와 파트너들이 한데 모여 대규모 컨퍼런스를 열었고, 저는 화려한 스테이지 위에서 박수를 치고 있었습니다. 1층의 세련된 로비, 여러 개의 작은 회의실, 지하의 넓은 식당. 자유로운 외국계 회사 같은 활기가 넘쳤습니다. 곧 상장에 성공할 것이라는 가능성이 건물 전체에 흘렀습니다.
그 당시 우리에게 이 빌딩은 '기회의 터전'이었습니다. 모든 층의 숨통을 최대주주가 쥐고 있는 폐쇄적인 생태계라는 사실을 깨달은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100억이상의 투자를 유치하고 상장을 꿈꾸던 우리 회사는 그 체스판 위에서 가장 화려한 말이었습니다.
그날 오후, 사무실의 공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습니다.
예고도 없이 대한민국 최고 로펌의 변호사 두 명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그들의 등장은 그 자체로 '비상사태'의 선포였습니다. 전 직원은 영문도 모른 채 대회의실로 집결했습니다. 그 짧은 이동 시간 동안, 우리를 이끌던 대표이사는 자신의 자리에서 쫓겨나고 있었습니다. 최대주주와의 관계가 흔들릴 때를 대비해 저를 '객관적 증인'으로 세워두었던 그의 방어 전략이, 맥없이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회의실 상석에 앉은 최대주주의 입에서 '안정화'와 '고용 보장'이라는 단어가 흘러나왔습니다.
"부도덕하고 독단적인 대표를 내보냈습니다. 이제 제가 직접 나서서 회사를 조속히 안정화하겠습니다. 여러분의 고용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니 동요하지 마십시오."
겉보기에는 품격 있는 수습의 언어였습니다. 하지만 그 점잖은 말 속에는 거부할 수 없는 서늘한 위협이 서려 있었습니다. 위로를 가장한 그 선언 앞에서, 우리에게 허락된 선택지는 침묵뿐이라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곁에 선 변호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저조차도 이런 현장은 처음입니다." 베테랑 변호사마저 당혹감을 느낄 만큼, 전격적인 숙청이었습니다.
대표이사가 축출된 후 일주일, 저는 사실상 업무에서 배제되어 있었습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자리에서 분위기만 살피던 그때, 실무를 이어가던 팀원이 조심스럽게 서류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과거 시점으로 소급해 작성된 임대차 계약서였습니다.
최대주주는 승전국이 전리품을 챙기듯, 그동안 상징적으로만 냈던 임차료 수년 치를 한꺼번에 소급 청구하며 투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직감했습니다. 그들이 말한 '안정화'의 실체는 투자금의 합법적인 탈취라는 것을.
저는 홀린 듯 그 계약서를 휴대폰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언젠가 '객관적 증인'으로서 이 비정상적인 흐름을 입증해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본능적인 판단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 누군가의 시선이 내 등에 꽂혔습니다. 그 사진 한 장은 저를 오피스 밖으로 밀어낼 가장 완벽한 프레임이 되었습니다.
"지금 당장 짐 싸서 나가세요. 빨리 움직이시라고요."
저를 몰아세우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한 임원이었습니다. 제 면접관이었고, 입사 초기 업무를 인계해준 사람이었습니다. 한때 늦은 시간에도 편하게 통화하던 사이였습니다. 그러나 최대주주로부터 차기 대표 자리를 약속받은 순간, 그는 저를 가장 먼저 도려내야 할 존재로 취급했습니다.
반면, 인사팀 직원은 고개를 떨군 채 제 곁을 지켰습니다. "일단 집에 가 계십시오. 상황이 정리되는 대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저보다 직급이 낮은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습니다.
권력에 눈먼 사수의 고함과, 미안함에 어쩔 줄 모르는 후배의 배려 사이에서. 저는 20년 차 커리어의 가장 쓸쓸한 퇴장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임원이 주차장까지 저를 '동행'했습니다. 정확히는, 제가 회사 물건을 하나라도 더 챙기지 않는지 감시하는 '호송'이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지하로 내려가는 내내 침묵만이 흘렀습니다. 차 앞에 섰습니다. 매일 아침 판교의 일출을 보며 가호의 〈시작〉을 틀었던 그 법인차였습니다. 저는 아무 말 없이 차 키를 건넸습니다. 가속 페달만 밟았던 질주는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홀로 집으로 향하는 길, 내가 쥐고 흔들었던 수백억의 숫자들이 얼마나 허망한 모래성이었는지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들려온 소식은 예상대로였습니다. 임대차 계약서 사진이 빌미가 되어 '기밀 유출자'라는 프레임이 씌워졌습니다.
그렇게 저는 20년 차 재무 전략가에서 하루아침에 숙청당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날 이후 제가 얻은 진실은 하나였습니다. 위험을 먼저 본 사람일수록, 가장 먼저 전장의 중심에 서게 된다는 사실. 그래서 저는 그 순간을 두려워하기보다, 위험을 읽는 감각을 끝까지 놓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 선택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