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부지, 저 ADHD예요

[고통편-⑤] 가족에게 병을 이해받는 일, 그들을 이해하는 일

by 묘보살과 민바람

성인ADHD를 가진 사람들에게 '가족'은 공통된 화두다.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이런 고민글이 꾸준히 올라온다. '검사 비용이 필요한데 부모님께 밝혀야 할까' '미성년자인데 부모님이 병원에 못 가게 하신다' '형제도 ADHD인 것 같은데 부모님을 설득하고 싶다' 등등.


고민되지 않을 수 없다. "혼자서 힘들었겠다"고 위로하는 부모님도 간혹 계시지만, 대부분은 의지가 부족한 것에 핑계를 댄다거나 의학계의 상술에 넘어갔다 여기고, 정신병 혐오 발언을 하거나 윽박을 지르는 경우도 있다. 설령 이해받더라도 부모님이 상심과 자책에 빠지진 않을까 걱정스러운 게 당사자들의 마음이다. 그래서 계속 숨겨 왔고 앞으로도 비밀로 하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부모님 세대의 입장을 생각해 보면 이렇다. 자식이 '정신병원'에 다녀야겠다고 하는데, 증상이라는 것들이 집중이 안 된다, 실수가 많다, 일을 잘 못 한다 따위다. 멀쩡히 지내다 어른이 된 것 같은데 갑자기 그게 아니었단다. 웬만큼 열려 있지 않고선 곧바로 믿기 어려울 거다.


내 경우도 비슷했다. 서른 넘어 ADHD란 말을 접했을 때, 괴로움의 이유를 찾은 기쁨에 넘쳐 어머니께 소식을 전했다. 어머니는 농담처럼 넘기셨다. "넌 그렇게 환자가 되고 싶냐?" 오빠에겐 작년에야 말을 꺼냈는데 '뭔 소리. 그런 사람 많음'이라는 명쾌한(?) 답장을 받았다(내가 파르르 해서 곧바로 태세전환을 하긴 했다). 가족은 가까운 듯해도, 서로의 가장 결정적인 고통은 쉽게 지나치는 관계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내가 왜 이럴까



병을 인정받지 못하는 ADHD인은 가족 대신 스스로의 지원자가 되어야 하고, 가족들에게 병을 이해시키는 교육자 역할까지 맡기 쉽다. 때로는 취업이나 퇴사 문제에서, 때로는 비혼을 택하거나 아이를 갖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질병서사를 꺼내들어야 한다. ADHD와 공존질환의 무게와 그간 이해받지 못한 상처를 혼자 버티는 동시에, 병 자체뿐 아니라 이 병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이해시키는 것까지 당사자의 몫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나 역시 내 상태를 이해받아야 할 이유가 있었다. 내가 고장나버린 거다. 몇 년 전부터 가족들의 말 한마디에도 며칠간 가슴을 쳤다. 나도 모르게 소처럼 벽에 머리를 들이받기도 했다. 친척의 안부도, 지인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요청하지 않은 조언을 받을 때, 누군가 습관적으로 날 걱정하거나 가르칠 때.


내가 왜 이럴까 싶었다. 순전히 내 낮은 자기효능감이 문제라는 걸 알면서도 심하게 불안해지고 분노가 올라오는 걸 어쩌지 못했다. 그건 '넌 부족한 사람이니까 누군가 채워줘야 해'라는 암시가 되어 평생 나를 어엿하게 살아갈 수 없는 사람으로 묶어두는 것만 같았다.


나의 경우, 부모님은 완벽주의 성향과 통제욕구가 강하셨다. 그리고 나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나사가 하나 빠져 있다. 밥 먹듯 부수고, 잃어버리고, 다치고, 지각하고, 돈을 허투루 쓰는 나를 부모님이 얼마나 바꿔주고 싶으셨겠는가.


그러나 이 조합은 위험하다. 부모가 자주 개입할수록 자식의 문제해결능력은 떨어지고, 그럴수록 부모는 자기 역할에 책임감을 갖는다. 일상을 나누려 꺼낸 얘기에 매번 옳은 것, 더 나은 것을 추구하는 반응이 돌아오면, 아이는 진짜 생각과 감정을 숨기게 되고 인간관계에 회의감을 쌓는다. 가장 문제인 것은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을 보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마련이고, 어떤 조건을 갖추더라도 열등의식을 안고 살아가는 삶은 행복하기 어렵다.

▲ 부모의 메시지 정신분석가 이승욱은 책 <마음의 문법>에서, 부모가 아이에게 ‘너로 인해 내가 만족했다’는 메시지를 주지 않는 것은 자식이 떠날까 봐 두려워서라고 말한다. 부모도 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아이에게 자신을 열등한 존재로 여기게 한다고 그는 지적한다. ⓒ freepik



ADHD를 가진 존스홉킨스대 소아정신과 지나영 교수는 ADHD아동을 대하는 방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아이는 자존감을 타고 납니다. 뭉개지만 않으면 돼요." 아이의 관심사에 맞장구 쳐주고 긍정적 메시지를 주는 것이 자존감의 발판이 되며, 좀 내버려 둔다는 마음으로 키우는 게 좋다는 설명이다.


마찬가지로 ADHD를 가진 위스콘신대 특수교육과 교수 로버트 저젠은 자서전 <리틀 몬스터>에서 다음과 같이 당부한다. "자기의 에너지를 생산적인 방식으로 쓸 수 있도록 지도해 주고, 자주 쉴 수 있도록 해 주자. 위험하지 않은 말이나 행동은 너그럽게 넘어가 주도록 하자. 사실 크게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대부분이다."(313쪽) 저자는 자신이 전문가로서 성공했음에도 여전히 어린 시절 들었던 부정적인 말들이 자신을 괴롭힌다고 고백한다.


나는 '이렇게 느끼는 게 옳은가?'하고 의심하는 습관 때문에 무례한 사람을 만나고도 자기주장을 하지 못할 때마다 부모님이 내게 보였던 태도가 내면화되어 있음을 느끼곤 한다. 정신 차려 보니 나는 모든 생각과 행동의 이유를 남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변명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내 판단과 감정의 기준을 밖에서 찾으려 하는 것이다(애석하게도 변명은 그런 관계 구도를 더 공고히 한다. 상대에게 검토와 승인의 권력을 주는 일이므로). 불과 작년까지도 일거수일투족 행동의 방식을 지적하던 말들, 야무진 오빠와 습관처럼 비교하던 어머니의 말, 타지에서 내가 방향을 모른다는 이유로 소리 지르던 아버지의 모습 등을 떠올리며 나는 어린아이처럼 억울함에 빠지곤 했다.


슬프게도 그것은 모두 사랑이었다. 상대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생각하기보다 ‘많이 가르치고 많이 주는 것’만을 사랑의 방식으로 배운 우리 부모 세대의 지극한 사랑. “우리가 인생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우리를 싫어하는 사람들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는 이숙명 작가의 말처럼.



정신적 돌봄의 수행



그렇기에 죄책감은 이중의 괴로움이 된다. 성인이 되어도 지속되는 과도한 잔소리에 저항할 때, 자식은 자신이 '나쁜 아이'라고 느낀다. "부모는 다 그래"라는 내리사랑의 고정관념과 "날 위한 건데"라는 효의 강박 사이에서, 자식은 자식이 되기 위해 자신을 잃는다. 남은 삶의 가장 중요한 밑천인 정서적 안정감, 주도성, 자기확신을 잃는 것이다. 부모는 언젠가 자식의 곁을 떠나기에, 자식이 안정적 자존감을 가져 남은 삶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정서적 바탕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 아버지의 인생을 연민했다. 부모님 삶에 뚫린 큰 구멍을 내가 조금이라도 메우고 싶었다. 그래서 소울메이트처럼 모든 인생이야기를 들어드렸고, 갈등을 중재했고, 자녀에게 도움이 됨으로써 얻는 존재감을 지켜드리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심리상담에서 선생님이 말했다. "거꾸로 됐네요. 아이가 어른을 보살피려고 한 것 같잖아요."


생각해 보니 그랬다. 부모님은 서로에게서 받지 못한 공감과 사랑을 나에게서 얻길 원했고 나도 그게 내 몫인 줄만 알았다. 부모님은 나의 신변을 세심히 돌보았지만 정신적인 돌봄에 있어서 나는 나 자신과 어머니, 아버지 3인의 몫을 수행해 왔던 것이다. '손 많이 가는, 나잇값 못하는 어른아이'라는 생각에 항상 부끄러웠는데, 나는 의존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내 힘만으로 나에 대한 믿음을 키우기 어려워 주변의 도움을 받는다. 다른 평가 없이 '그렇구나' '그랬구나'라고 말해달라 부탁하기도 했고, 얼마 전엔 친구에게 이런 말도 해 봤다. "믿음직한 사람이라는 말이 너무 듣고 싶은데, 넌 해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친구는 내 뜻을 정확히 알아듣고 공을 들여 말해 주었다.



지지와 수용의 과정



자식은 부모로부터 긍정적‧부정적 영향을 모두 흡수하며 자란다. 성인이 된 자식은 긍정적 영향을 이용해 부정적 영향을 스스로 지워갈 수 있어야 한다. 그 과정을 어느 정도 해냈을 때 진정 독립된 존재가 된다. 부정적 영향을 극복하려 애쓰고 있는데 계속 같은 영향이 쌓여갈 때는, 한 개인으로서 사는 데 쓸 에너지가 위태해진다.


죄책감을 무릅쓰고 변화를 시도하는 건 자기 정체성을 바로세우는 과정이다. 가능하다면 가족의 어떤 행동에 자신이 어떤 생각과 감정을 갖는지 반복해서 전달해야 한다. 부모 자식의 관계가 10년간의 문제였다면 다시 10년은 조정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성인이 된 이후만 문제라고 쳤을 때 나는 정말로 10년 정도 걸렸다. 관계의 문제점을 수없이 호소했지만 가벼이 넘겨지고 잊히는 과정이 되풀이됐다.


지칠 대로 지쳤을 때, 그간 심리학 영상과 책을 통해 알게 된 것과 직접 느껴온 것을 A4 한 장으로 개괄해 어머니께 전송했다. 기대하진 않았는데 힘든 모습을 많이 보여서 그런지 잘 받아주셨고, 더 용기를 내 만화로 된 성인ADHD 안내서를 보내드릴 수 있었다.


ⓒ freepik


결정적으로 가족들이 병을 직시하게 된 건 ADHD 이야기를 연재하면서다. 부모님은 첫 연재 글을 읽고 "글로 보니 훨씬 이해가 된다"고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몰라줘서 미안하다며 날 안아주기까지 하셨으니, 성인 ADHD인 중에서는 크게 복 받은 경우다. 길고 시시콜콜한 얘기 듣기를 못 견뎌하는 것도, 가족 모임이 있을 때면 쏟아지는 자극에 금세 방전돼 방에 틀어박히는 것도 이제 조금은 배려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 내 상태를 알아준다는 느낌 그 자체가 힘이 된다.


그 후로도 문제 상황은 반복되곤 했지만, 부모님의 소통 방식도 조금씩 변했다. 특히 어머니는 습관적인 간섭을 자제하고 탓하는 말이 아니라 공감적인 표현을 쓰려고 많이 애쓰신다. 하루에 집안 물건을 3개나 망가뜨렸을 때도, 심지어 대문을 열고 외출했을 때도 웃으며 “몰랐구나.” 하실 정도로 달라지셔서 깜짝 놀라곤 한다. 노력해주시는 데에 나도 자주 감사를 표한다.


삶의 서사는 이해를 끌어내는 힘이 있다. 만일 병과 관련해 소통이 꼭 필요하다면 한 사람으로서 ADHD를 겪어온 이야기를 정확한 정보와 함께 정리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물론 읽지 않는 부모님들도 계시고 오히려 관계가 악화될 가능성도 있다. 가족 문제에 정답이 있을 리 없고, 아직은 당사자 혼자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것도 아쉬운 노릇이다. 하지만 진짜 혼자는 아니다. 사정은 달라도 비슷한 고민을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허무하게도, 당신이 조금도 덜지 못하고 살아온 고통에 대해 죄를 물을 대상이 없다. ADHD의 원인이 유전에 있다 해도 유전인자를 부모가 빚어낸 건 아니며, 우린 물려받지 '않은' 병도 많다. ADHD라는 병의 존재를 모르고 정신적 문제에 시야가 좁았던 것도 그들 탓은 아니다. 굳이 찾자면 삶과 시대의 속성이 죄일까. 그러나 그건 당신 탓도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수고를 안다. 혼자서 감당한 것들이 독으로 쌓였지만 자체 해독하며 삶에 대한 면역을 키워온 과정을. 이제 우리에게는 자신을 지킬 힘이 있다.


부모님께 받은 도움이 많다. 세련된 방식은 아닐지언정 일관적이었던 애정은 나의 일부가 됐다. 살아가는 날보다 살아내는 날이 많았을 부모님을 나는 여전히 연민한다. 그러나 내 괴로움을 외면하고 희생하는 일이 부모님께 진정으로 좋은 일이 될 수는 없다.


부정적 자기인식을 갖기 쉬운 ADHD인에게 가까운 사람의 지지와 수용은 특히 중요하다. 까놓고 말해 보자. 사랑하는 건 사랑하는 거고, 힘든 건 힘든 거다. 고통인 줄도 모르고 마음을 다 갉아먹는 고통도 있는 법이다. 그 '가까운 사람'이 꼭 혈연일 필요도 없다. 어떤 분류를 떠나 우리 모두는, 날 더 나은 나로 만들려 애쓰는 사람이 아니라 현재의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 곁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더 나은 내가 된다. 아주 자연스럽게 말이다.



덧붙이는 말

ADHD는 유전되는 병입니다. 부모 가운데 한 사람이 ADHD 진단을 받을 경우 자녀들이 ADHD를 가질 확률은 57%라고 합니다(이성직, <ADHD 전문가를 위한 치료 지침서>, 21쪽). 일부 연구에서는 부모 자신이 ADHD를 가지고 있을 경우 그렇지 않은 부모보다 양육 스트레스가 심하고, 자녀에게 비일관된 반응과 분노폭발 등과 같은 역기능적인 행동을 할 소지가 높다고 보고합니다(66쪽). 부모에게 ADHD가 의심되는 경우 늦게라도 치료를 시작한다면 가족이 서로를 이해하고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경희대 소아정신과 반건호 교수는 책 <나는 왜 집중하지 못하는가>에서 성인 ADHD 부모가 자녀를 교육할 때의 어려움을 언급합니다. "ADHD 특성 중 하나는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것이고, 일을 진행할 때 자기 위주로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다. 이 특성은 자녀 양육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부모 기준에 맞춰서 아이를 통제하려다 보면 지시하게 되고, 요구가 많아지고,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을 때 화를 내게 된다. " (152쪽)

이 책은 그간 조명받지 못한 노인 ADHD 문제도 지적하는데, 63세 여성의 일화를 소개하며 ADHD 노인들이 사회관계 부족과 단절, 가정불화, 금전관리 부실, 일상생활 구조화 부족, 우울감 등 어려움을 겪기 쉽다고 말합니다.




책에는 브런치보다 많은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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