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넘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실감
이전의 ‘너’를 돌아보았듯이, 이후의 ‘나’를 그리고 있어. 어렸을 때부터 ‘경계’라는 단어에 마음이 많이 갔어. 무리 짓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 덕분에, 기존의 성 역할에 자신을 가두지 않은 덕분에, 한국에 발을 붙였지만, 시야는 전 세계를 향한 덕분에, 세상과 나 사이에 그어진 ‘경계’를 더 민감하게 인식하면서 지내왔어. 어렸을 때는 그어진 선을 지우고만 싶었지만, 지금은 선의 소중함을 알 것만 같아. 나의 편과 남의 편, 안과 밖 등의 흑백 경계 안에서만 숨 쉬는 많은 사람은, 경계라는 담 위에 걸터앉아 바라보는 세상이 얼마나 가능성이 가득한지, 경계와 경계가 만나 이루는 새로운 조합이 얼마나 생명력이 넘치는지, 그리고 그 흑백의 경계가 얼마나 무너지기 쉬운 것인지 알기 어렵거든.
카티, <회복의 시작에 선 너에게>에서
그래서 난 네가 살았으면 좋겠어. 자책하지 말고, 자신을 의심하지도 말고, 나는 아무 잘못 없다고 생각하며 고개 빳빳이 들고 당당하게 살아. 진짜로 아무 잘못 없으니까. 그리고 기억해. 문득문득 떠오르며 너를 괴롭히는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점점 뿌예지고 흐려져서 마침내 기억도 못 하게 될 거란 걸. 그때는 웃으면서 말할 수 있을 거야. 아, 그땐 그렇게 힘들었는데 이제 보니 아무것도 아니구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괜찮아지면 이제 세상에 말해줘. 네가 성폭력 피해자라고. 성폭력 피해자는 사람들 생각처럼 살지 않는다는 걸 보여줘. 그리고 여건이 되면 비슷한 일로 힘들어하는 다른 이들을 돕자. 우리가 살길은 오직 연대뿐일지어니.
키위, <그날의 너에게, 오늘의 내가>에서
그런데 누가 그러더라고. 어떤 선택을 할지 망설여질 때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예를 들어, 나의 딸, 나의 엄마, 나의 친구, 나의 애인이 그 일을 겪었다고 생각해 보래. 그렇다면 나는 과연 그에게 어떤 말을 해 줄 것이며 어떤 행동을 할까? 그 기준으로 자기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판단하고 행동하라는 거야.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가장 홀대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이야. 그래서 난 피해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을 하기로 한 거야. 적어도 그다음 피해자를 막기 위해.
한번 보자! 이번 일은 어떻게 날 또 단련시킬지. 때로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할 때도 있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최선을 다해서 나의 찬란한 인생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밖에. 겪으면서, 싸우면서, 이렇게 나누면서. 남들이 ‘하지 마, 해 봤자야, 너만 힘들어지고 너만 다칠 거야’라며 말리는 또 하나의 금기를 깬다는 마음으로.
해라, <성폭력? 찬란한 내 인생의 그저 한 조각>에서
그 누구도 너를 탓할 수 없어. 혹시 너 스스로가 수많은 비난의 말로 자기 자신을 공격하고 있지는 않니? 만약 그렇다면 너 자신을 공격하는 것을 이제 멈춰야만 해. 다른 사람이 꽂은 비수보다 나 자신이 꽂은 비수가 더 아프거든. 온 세상 사람들이 다 등을 돌린대도 내가 나의 편이 되어 주자. 이제 네가 너를 치유하는 거야. 가슴에 직접 꽂은 비수를 다른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손으로 빼내는 거야.
...내 집이니까 작은 원룸이어도 좋은 것처럼, 내 차니까 포르셰가 아니어도 좋은 것처럼, 내 아이니까 공부 좀 못 해도 사랑스러운 것처럼, 나니까 그냥 내가 좋은 마음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어. 그건 정말 값으로 따질 수 없는 평온함과 만족감이었어. 외부로 향한 시선을 거두고 내면에서 진정으로 쉰다는 것을 처음 느껴봤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나는 그냥 존재로 괜찮았던 거야. 평생을 찾아 헤맨 평화가 바로 이거였어. 그것은 마치 고향에 도착한 기분이었지.
지은, <반드시 날아오를 너에게>에서
지난 시간 숨죽여 쌓아왔던 분노와 불쾌감이 뒤섞여 나올 수 없는 늪으로 빠져드는 것 같을 거야.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도 전화를 해야 해. 너의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더 큰 고통이 될 순간들을 외면했다는 후회 대신 공감과 위로를 받으며 너의 감정을 다독여줘. 이리저리 휘둘리는 가치 없는 감정에서 벗어나 그날의 사건과 지금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 거야.
인성, <지금 바로 전화해 줘>에서
오직 나를 위한 싸움이었다. 내 기분을 좋게 만들기 위한 싸움. 나는 정의가 승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버텼다. 던져진 깨진 계란이 되어 사장이라는 바위를 더럽히고 싶었다. 정신승리라도 괜찮으니 뭐라도 하나 승리해 보자는 심정이었다. 내 마음은 이미 까맣게 타버려 재만 남은 것 같았지만 괜찮다고 여겼다. 이 시간이 지나면 나중에 꼭 다시 새싹이 올라올 거라 믿었다. 그게 자연의 섭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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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큰일을 겪으면 주변 사람 정리가 된다고 하는데 그건 정말이었다. 나는 부모와의 인연을 정리했다. 나의 부모는 내가 겪은 일에 공감하고 내 안위를 걱정해주기보다는 자신들의 명예에 한 끗 해를 끼칠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평생 보아온 이 모습을 이번에는 참아낼 수 없었다. 아무리 부모라고 해도 결국 타인이었다. 어떤 관계는 맺어져 있는 것보다 끊어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성폭력 사건으로 갖게 된 분노는 내 삶의 어떤 면에 큰 에너지가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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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는 인류애를 상실하게 만든다. 세상 모든 존재와 맺었던 관계를 끊어내거나 재해석하는 경험이었다. 꿈꾸던 미래를 포기하게 만들기도 했다. 정말 많은 것을 잃게 만들었다. 그래도 참 다행이지, 회복하는 시간을 주더라. 이번에는 네가 회복할 순서라며 따뜻한 봄 바람이 내 바짓단에 다가와 살랑이고 외출했던 입맛이 돌아오더라.
보라, <오직 나를 위한 싸움>에서
너의 잘못이 아니야.
너의 잘못이 아니야.
너의 잘못이 아니야.
너의 잘못이 아니야.
너의 잘못이 아니야.
너의 잘못이 아니야.
너의 잘못이 아니야.
너의 잘못이 아니야.
_____, <나는 화가 났어>에서
감히 비유하건대 성폭력은 교통사고와 비슷한 거라고 생각해. 어떤 사고는 내가 아주 멀쩡하게 잘 운전하고 가더라도 갑자기 상대 운전자 때문에 일어나기도 하잖아. 어떤 일들은 인과 관계 없이 일어나기도 하더라고. 나는 “그 일을 겪었기 때문에 네가 성숙해질 수 있었던 거야.”라는 말을 정말 싫어하는데, 이 사고에서 굳이 인과관계를 찾아 내 잘못이 무엇인지 자꾸 돌이켜보거나 이 일을 통해 깨달아야 하는 어떤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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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어떤 상처는 당최 아물 생각이 없는 것처럼 계속 아플 수 있어. 사람마다 낫는 속도도 다르고 어떤 체질은 더 각별한 치료가 필요하기도 하니까. 애초에 상처가 난 것도 네 탓이 아니니까 상처를 보면서 나는 왜 이럴까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폭력 앞에서 자기가 원하는 바를 굽히지 않고 계속 말할 줄 아는 사람은 몇 없어. 자기 자신만큼은 자신을 위해 충분히 기다려주자.
태정, <그럼에도 살아볼 만한 이유가 있다>에서
그때는 알지 못했고, 지금은 알게 된 흥미로운 사실 중 하나는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에 생글생글 웃어주지 않아도 된다는 거야. 어린 나이에 어디서 배운 건지, 거절도 잘 못하고 기분이 나빠도 웃어넘기기 바빴던 것 같아. 어쩌면 작고 어린 너의 생존 본능이었을지도 몰라. 웃지 않으면 뒤따라오는 분위기가 무서웠을지도 모르지. 그렇다고 덜 웃으면서 살라는 말은 아니야. 평소에 웃음이 많은 너잖아. 재미있는 일이 있을 때는 눈물이 날 때까지 웃길 바라. 그러나 아무리 즐거운 분위기에서도 기분이 나쁘고 불편할 때는 웃지 않아도 돼. 그게 당연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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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모든 걸 걸고 약속할게. 너는 괜찮아질 거야. 내가 최선을 다해서 그렇게 할게.
유진, <너랑 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