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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묘보살과 민바람 Nov 05. 2024

6화 다른 파랑

허공에 발을 내딛게 해주는 것들

 관계가 끝난 뒤에야, 그 관계의 무게를 제대로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무게도. 나를 끌어주던 관계의 사슬이 끊어지면 중력에 완전히 무릎 꿇는 시간이 찾아온다. 나라는 존재가 땅으로 꺼져 들어갈 것처럼 무겁고, 바닥과의 마찰력은 질기도록 강해서 한 걸음도 나아갈 수가 없다. 의심이 찾아온다. 사실 내 삶을 앞으로 밀고 나가는 힘은 내 것이 아니었던 것일까.


  힘든 시간이 있었다. 하루하루가 끝의 시작이었다. 벼랑 끝에 서 있는 감각으로 허공에 팔을 휘저었다.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무엇을 먼저 아파해야 할지, 무엇을 먼저 떠나보내야 할지.    


 그즈음 몇 달 전부터 참여해 오던 풍물패 모임이 있었다. 생태 문제에 관심 있는 여성들이 모여 만든 위계 없는 풍물패였다. 한 달에 한 번 시골 숲에서 하룻밤 묵으며 풍물 가락을 연습했다. 그들은 나에 대해 잘 몰랐다. 나도 그들에 대해 안다고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굳이 이런저런 걸 묻지 않아도 만나면 편안했다. 그네들 덕분에 내가 많은 사람 속에서도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모임에 가고 싶었다. 결 맞는 사람들 속에 가만히 앉아 숨만 쉬다 오고 싶었다. 하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울지 않고는 못 배기는 지금 상태로 1박 2일 행사에 참여하다니. 민폐만 되는 거 아닐까? 가겠다는 말을 못 하고 당일 아침까지 고민하다 우당탕 짐을 쌌고, 버스 시간에 아슬아슬하게 맞춰 집을 나섰다.     


 숲에 도착했을 때, 합을 맞춰 나아가는 악기 소리가 들려왔다. 웃을 수 있으려나, 자신을 못미더워 하며 한 발짝 한 발짝 소리에 다가갔다. 어!! 바람!! 어쩐 일이야!! 내 얼굴이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악기를 치다 나를 발견한 이들의 얼굴은 놀람과 반가움으로 환하게 피었다. 반은 그날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는데 어색함은 없었다. 오늘은 악기 안 치고 구경만 할게. 그냥 보고 싶어서 왔어. 내 말에 처음 만난 친구들도 뭉클한 표정이 되었다.     


 하늘이 구름 없이 파랗고 청량한 날이었다. 나무 잔가지마다 햇살이 묻어 눈부셨고, 바람이 흔들고 가는 나무 그늘의 움직임이 나른했다. 평소 같으면 행복하게 즐겼을 날씨와 풍경 속에서 눈물이 솟는 걸 억누르는 일만으로 벅찼다. 그렇게 좋아하던 자연을 보는 일조차 아프다니 단단히 고장이 났구나.     

 

 나는 친구들이 회의하는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귀에 막이 하나 쳐진 듯 말이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누구도 나에게 부담을 주지 않았다. 왜 말이 없느냐고 묻지 않았고, 그렇다고 관심 밖이라고 느끼게 하지도 않았다. 그 속에서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다. 열중해서 말하는 모습. 장난치는 모습. 웃는 모습. 마음이 살아있는 존재의 에너지.     


 밤이 되어 우리는 숙소로 들어갔다. 피곤한 사람은 먼저 침낭을 펴고 누웠고, 몇몇은 숲속에서 모닥불을 피울 거라고 했다. 드디어 마음껏 슬퍼할 요량으로 모로 누워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피곤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친구들이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둥둥둥 낮보다 은근하게 울리는 북소리를 따라 걸어 들어갔다. 밤의 숲길이 끝나는 곳에 하얀 인디언 움막이 있었다. 우쿨렐레 연주에 맞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움막 안에서는 일렁이는 불빛이 빛과 그림자의 경계를 흔들고 있었다. 마치 내가 들어서는 순간에 맞춘 것 같은 노랫말. 어서 와. 환영해요. 어서 와. 환영해요.     



 자리에 앉자 누군가 샤먼 북을 내 손에 넘겨주었다. 모닥불에 둘러앉은 우리 여섯은 각자 힐링 악기나 풍물 악기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즉흥연주가 시작되었다. 저마다 깔깔거리며 아무렇게나 악기를 치기 시작했는데 자연스레 박자가 생겨났다. 박자가 일정해지자 분위기가 차분해졌다. 어느 부족의 전통 의식인 양 각자 연주에 몰입해 갔다.     


 불길은 계속 일렁였고 장작을 맡은 친구가 숲에서 구해온 나뭇가지들을 쉬지 않고 부러뜨려 집어넣었다. 둥 두둥 둥 두둥. 나는 북을 연주하며 거세게 타오르는 불길에 내 마음을 부러뜨려 던져넣는 상상을 했다. 던져넣고, 던져넣고, 던져넣었다. 이 시간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부 태우고 아무것도 남지 않기를 빌고 빌었다.      


 다음 날 우리는 아침을 먹고 빙 둘러앉아 소감을 나누었다. 내 차례가 왔을 때, 두려웠지만 솔직하게 말을 꺼냈다. 사실은 지금 힘든 시간이라서. 말을 맺지도 못하고 눈물이 쏟아져 고개를 숙였다. 친구들이 다가와 어깨와 등을 쓸어주는 게 느껴졌다. 여기 와서 많이 치유된 것 같다고,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아 미안하다는 말이 나왔다. 친구들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 그런 게 어딨어. 와줘서 너무 좋았어.   

  

 터미널로 가기 전 마지막 인사를 나눌 때, 가장 나이가 많은 시아가 팔을 벌리고 다가왔다. 생각지 못한 포옹에 다시 눈물이 터졌다. 그런 나를 보고 다른 친구들이 엄마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는 게 흐린 시야에 들어왔다. 부끄러워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머리와 어깨와 등으로 부드럽게 쏟아지는 일곱 명의 손길은 마치 태어나 처음 받아보는 것처럼 놀랍고 따뜻했다.     


 차에 타자 터미널까지 나를 태워다주는 모아가 나를 바라봤다. 혹시 이야기할 사람이 필요해? 나는 아직도 흘러넘치는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날 겨우 두 번째 만남이었던 모아는 가는 동안 가만히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었다. 많이 울어야 돼. 나도 힘들 때마다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많이 울었어. 그러고 나면 조금씩 나아지더라. 나는 끄덕였다. 터미널에서 내린 뒤 인사를 나눌 때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어쩐지 그 말이 촌스럽게 느껴져서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아주 긴 카톡 메시지를 한 통 받았다. 활기가 넘치고 장난스러워 늘 친구들을 웃게 하는 소피였다. 마치 손편지처럼 느껴지는 그 메시지의 뒷부분을 나는 여러 번 읽었다.

    

 ‘나는 바람이를 보면 엄청 청량한 푸른색이 떠올라!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바람이가 내뿜는 기운이 맑고 좋아서일 거라고 생각해. 정말 힘들 때는 사실 다른 사람의 위로도 잘 들리지 않는 것 같아. 그렇지만 바람이를 걱정하고 응원하는 친구들이 있다는 거 잊지 마! 내가 원래는 기도를 열심히 하는데 요즘 잘 못 했거든. 그치만 온 마음을 다해서 기도할게!! 바람이가 힘든 일을 잘 이겨낼 수 있기를, 이겨내지 못하더라도 괜찮아질 수 있기를, 이 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나는 진지한 내가 밤바다 같은 색이라 생각했다. 어딘가 그림자가 드리운, 즐거울 때도 맑게 갠 하늘처럼 환하지는 않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더구나 슬픔과 우울을 이고 있는 지금의 나를 보고 청량한 푸른색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니, 신기한 일이었다. 그보다 놀라웠던 건 깊은 얘길 나눠본 적 없는 사람을 위해 진심 어린 편지를 써주는 이의 마음이었다. 정말로 청량한 것은 나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아니었을까.


  이별에 색이 있다면 무슨 색일까. 슬픔은 파랑으로 대표될 때가 많다. 하지만 파랑이 한 종류가 아닌 것처럼, 깊고 무거운 파랑이 있고 ‘엄청 청량한’ 파랑도 있는 것처럼, 끝을 알 수 없는 긴 이별에서 느끼는 감정에도 여러 온도와 색깔이 섞여들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이때 알았다. 마음의 매듭을 스르르 풀어내는 북의 울림, 감정의 부스러기를 불사르는 불길의 뜨거움, 몇 번 보지 않은 나를 위해 품을 내어주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들의 환대. 그것들의 색은 깊었지만 무겁지 않았다. 숲으로 쏟아지던 햇살처럼 눈부셨다.     



 눈물로 씻어낼수록 마음의 빛깔은 환해진다. 물감이 깊이 스민 붓을 여러 번 헹궈내듯이. 친구들이 내 안의 물길을 터준 덕분에 나는 한결 맑아질 수 있었다. 맑아진 마음에 사람들의 마음이 들어왔다. 약해져 있는 이에게 조건 없이 건네는 선의와 무해함은 어디서 온 것일까. 그것은 스스로 크고 작은 고통을 씻어내며 생겨난 맑음일 것이다. 고통의 흔적은 그렇게도 따뜻하다.

     

 이날 이후 나는 전처럼 많이 울지는 않게 되었다. 그리고 삶을 밀어나가는 건 본래 자신 한 사람만의 힘은 아니라고 믿게 되었다. 발길을 붙드는 현실과 나 사이의 질긴 마찰력은, 빌리고 빌려주는 힘의 왕래 속에서 조금씩 줄어드는 거라고. 벼랑 끝에서 발이 묶인 시간은 누구에게나 있고, 그때는 작은 환대에 의지해 반 발만, 반의 반 발만 내디디면 된다고. 그러면 허공인 줄 알았던 곳에 길이 생긴다고.     


 다시 삶의 의미를 의심하는 시간이 돌아온다면, 내 마음은 꿈속 같던 그 밤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얀 인디언 움막에 들어설 때 나를 반기던 목소리들 속으로. 그리고 나도 누군가의 절실한 순간에 이렇게 노래해 줄 수 있기를.


어서 와. 환영해요. 어서 와. 환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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