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자연인으로 살 수는 없을까

앞으로 제가 실험 좀 해 보겠습니다

by 묘보살과 민바람

"내가 제일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프로그램이, '나는 자연인이다'예요."


'나는 그거 엄청 좋아하는데...'


"아니, 자연인이면 물도 그냥 시냇물 떠먹고, 고기도 사냥해서 먹어야지. 동굴로 들어가 불피우고 살아야지. 안 그래요? 산에 들어가 살면서 컵라면 먹고 뭐 하고 다 하면서 자연인이라는 게 진짜 말도 안 되는 거예요."


'꼭 그렇게까지 원시적으로 살아야 자연인이란 말을 할 수 있는 건가..? 좀 극단적인 거 같은데..'


"자연치유한다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예요. 인터넷에 자연치유한다는 카페가 있었는데, 거기 회장이 50대에 죽었어요. 그런데 왜 죽었는 줄 알아요? 당뇨로 죽었어요. 당뇨약을 안 먹어서...."



나는 부인과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 이미 수술을 할 생각이었지만, 가족들에게 설명할 때 필요한 정보를 얻으려 질문했다. 그런데 '자연인'이라는 화두가 나왔고, 늘 간단명료하던 내 담당선생님의 말씀이 길어지고 있었다. 수술 실력도 아주 좋으시고 늘 질문도 잘 받아주시는 유능하고 멋진 분이신데, 이때의 대화에서는 어떤 고충이 느껴졌다. 아마도, 의사라는 직업상 현대의학에 반기를 드는 의견을 자주 만나면서 답답함이 쌓여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감사한 현대 의학의 힘을 빌리고 생활의 편의를 취하면서도 늘 현대 문명이 싫었던 것 같다. 지금의 문명은 병을 고쳐주기도 하지만 고치기 어려운 병을 수없이 만들어냈다. 그리고 더 좋아보이는 생활방식을 통해 사람들의 상태에 다양한 병을 디폴트값으로 추가했다.


내가 지병수집가가 된 것은 내가 담을 수 있는 것보다 많은 것을 누리고자 했던 내 욕심 때문도 크다. 더 많은 자격증과 학위와 경력을 만들어서 인정받으려 했고, 그래서 늘 긴장했고, 더 달고 행복해지는 음식을 원하고, 즉각적으로 내 기분을 좋게할 수 있는 자극들을 찾았다. 그런데 생활방식을 바꾸려고 노력할 때마다, 몸에 나쁜 디저트와 신박한 요리들은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너 지금 시간 없잖아! 빨리 먹을 수 있는 거 먹고 일부터 해야지." "너 오늘 너무 스트레스 받고 힘들었잖아! 이럴 땐 먹고 싶은 것 좀 먹어도 돼." 그 말을 들은 난, 관성에 기꺼이 순응했다.


예전에는 잘 몰랐지만, 내 생각만으로도 지쳐하는 나에게 도시는 지나치게 자극적인 곳이었다. 부산이라는 곳을 너무도 좋아하는데, 한편 나의 본질에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라는 생각이 늘 들었다. 평범한 하루하루가 전투처럼 느껴질 때가 많이 있었다. 숨을 막는 매연과 담배냄새, 동서남북으로 끊이지 않는 공사 소음은 마치 텃세를 부리는 지주처럼 내가 쉴 공간을 한 뼘도 내어주지 않는 듯했다.


3년 간 대학가에 살면서 '청각과민증'이라는, 듣기에도 정말 예민보스 느낌 뿜뿜하는 증상이 생겼다. 그후 조용한 외곽으로 이사하려다 집을 알아볼 시간이 부족해 행정 중심지로 이사하게 됐다. 새 집도 처음에는 조용한 집 같았지만 코로나 때문에 배달 건수가 늘어난 탓인지 밤낮으로 오토바이 소음에 시달려 전에 없던 이명과 두통을 달고 살았다. 결국 1년만에 또 이사를 나가게 됐는데, 반려인은 나를 위해 부산이 아닌 시골로 옮기는 데 동의해 주었다.(사실 반려인은 나와 달리 완전한 도시파다)


조용하고 한적한 곳으로 가기 위해 본가 근처의 소도시로 동네구경을 다니며 정보를 찾던 중에 결국 부산에 일이 생겨 다시 부산에 머무르게 됐다. 새로 구한 집은 반백수인 우리가 어찌해 볼 수 있는 유일한 집이었기에 다른 여건을 재고 말 것이 없었다. 역시 중심가이고 언덕 위의 집이라 힘겹게 언덕을 오르는 탈것들의 소음이 엄청나다. 그래도 정말로 다행인 것은 집 바로 뒤에 오르기 좋은 뒷산이 있고, 먼지바람만큼이나 산바람도 자주 불어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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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후 병실에 누워 있으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제야말로 자연인으로 살아야 해. 좀더 자연인으로.'


수술이 아주 잘되었고, 수술 후 회복 과정도 수월했다. 그럼에도 내 맘대로 움직이지 못했던 3일 간 느낀 것이 있다. 내가 앉고 눕는 일을 직접 할 수 있고 스스로 화장실에 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자유이고 행복인가. 여전히 나에게는 많은 자유가 있었지만, 언젠가부터 이런저런 이유로 사람을 자유롭게 만날 수 없게 되었고 이제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글쓰기를 하기에도 제약이 많은 상황이 되고 있었다. 내 몸이 나쁨>더 나쁨>더더 나쁨으로 가는 관성열차를 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다른 것은 몰라도 기본적인 자유를 잃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더욱 들었다. 남들이 어떻게 보더라도 근본적인 회복에 모든 힘을 쏟기로 결심을 했다. 마침 평일에 하던 인턴 일도 그만두어서 "치유 중심의 생활"을 하기 좋은 여건이 마련되어 있었다. 늘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면서도 눈앞의 것을 좇기에 바빴으니, 이 여건을 마련하는 데에 십 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셈이었다. '수술은 전환점'이라는 직감이 왔다.


<미션: 원치 않는 방향인 것을 알면서 직진하게 만드는 이 관성을 끊어내야 한다.>


드디어 편안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니 설레기도 했다. 근데,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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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1. '대자연 속에서 살고 싶다'

어려서부터 넓은 초원이나 정글, 티벳이나 몽골의 고원에 사는 상상을 많이 했었다. 등산을 하면 산꼭대기에서 내려오는 게 너무 아쉬웠다. 거기에서 인간사를 내려다보며 혼자 살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비박 한 번도 범죄의 공포에 떨어야 한다. 꿈을 좇다 죽을 수는 없다.


생각2. '자급자족하며 살고 싶다'

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에 나오는 삶, 생존에 필요한 모든 작업을 스스로 하는 단체 '비전화공방'의 생활방식을 동경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급자족의 생활이 동화에 나오는 숲속의 오두막 그림처럼 아늑하고 낭만적이기만 하지 않을 거라는 것은 알고 있다. 농사 한 번 지어보지 않고 전기 없이 살아보지 않은 내가 급격히 생활방식을 바꾸기도 어려울 것이다. 체력적 한계도 많다. 쪼그려 앉는 것도 못하고 조금 무거운 짐도 들지 못해서 뭔가 고치고 만들고 하는 일은 당장은 어렵다.


생각3. '시골에 살고 싶다'

집계약이 1년 9개월이나 남아있고, 나도 반려인도 지금 사는 부산에서 알바를 하고 있다. 계약기간을 안 채우고 나간다고 해도 새 집으로 옮길 만한 밑천이 부족하다. 즉, 당분간은 도시생활을 이어가야 한다. 더구나 시골이라 여겨지는 곳으로 이사한들,요즘 시골이 예전 시골인가. 운이 나쁘면 신도시 조성이 시작되어 더 심한 소음과 매연, 먼지에 시달리게 될 수도 있다


그럼 이 대도시에서 내가 자연인이라고 느끼면서 살 방법이 없는 걸까? '자연인'이라는 정의가 극단적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자연인의 생활. 어렵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었다.


주변의 자연을 보고, 듣고, 느끼며 치유를 얻는 생활

최대한 순수하고 자연적인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는 생활

꼭 자연 속에 있지 않더라도 매일 요가와 명상을 통해 대자연과의 연결감을 유지하는 생활

자본주의가 제시하는 선택지를 외면하고 나의 기준으로 엄격하고 필수적인 소비를 하는 생활

지구환경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사소한 생활 습관이나 취미를 즐기는 생활

완벽에 대한 부담이 없고 물 흐르듯 편안하여, 아주 오랫동안 지속가능한 생활


나는 잘 터지는 와이파이 덕택에 유튜브를 이용해 요가를 하고, 명상을 한다. 비건치유식 요리법을 배우면 자전거를 타고 유기농매장에 가서 새 요리에 필요한 식재료를 마음놓고 고른다. 세제 대신 쓰는 천연열매는 택배로 받거나 지하철을 타고 제로웨이스트 매장에 찾아가서 산다. 나를 둘러싼 도시환경의 장점을 최대한 누리면서 자연친화적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것. 그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고 또 이것이 모순된 것도 아닌 것 같다.


마지막 항목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나는 일주일에 몇 번이라거나 하루에 몇 시간 같은 목표를 세울 필요를 잘 느끼지 못한다. 내 몸과 마음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는 다른 욕망에 가리지 않고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그러기를 간절히 바란다)


일상이 뭔가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었던 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일상은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가 될 수 있다. 남은 삶에서 이뤄보고 싶은 유일한 것은 내가 만족하는 작품을 써 내는 것이지만, 그조차 이루지 못한다고 해도 삶은 즐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편안히 숨을 쉬는 기쁨, 좋은 음식을 직접 해 먹는 즐거움, 내 발로 걷는 보람 등 전혀 특별하지 않은 방법이 몸과 마음 전체에 퍼져 있는 염증을 자연스레 지워낼 수 있다고 믿는다.


도시에서 자연인으로 살겠다는, 일견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동안 계속 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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