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을 녹취하는 이유, 필사 그 이후

by 심리여행가 하루켄



Oct 10. 2018, D 167

책상에 앉는다. 미드 나잇 인 파리의 테마음악 Si Tu Vois Ma Mere를 반복 설정한다. 마음은 12시간 비행 후, 파리의 작은 카페에 도착한다. 아이패드를 열고 워드를 켠다.

필사를 시작한다. 마음속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 올려야 할지 모르겠다. 수도관이 꽉 막혀 물이 흐르지 못하고 압력만 높아져 마음이 답답하다. 황심소(황상민의 심리상담소)에서 황 교수는 처음에 글쓰기가 막연하게 느껴질 땐, 좋아하는 책을 필사해보라 한다.


필사의 시작

다이소에서 2천 원짜리 노트와 1000원에 2개 하는 젤 타입의 펜을 샀다. 파란색 잉크가 노트에 부드럽게 묻어난다. 첫 필사는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정했다. 70,80 년대 삼류 영화 스토리 같은 20대 초반 젊은이의 방황기다. 꾹 참고 필사를 시작한다. 매일 조금씩 쓴다. 귀찮다. 의미가 있을까?

소설에 쓰인 표현 대신 다른 단어를 넣고 상상해 본다. 소설 속에서 맥주를 마시면, 내가 먹고 싶은 사케로 바꿔본다. 남녀가 한 방에 있을 때, 장면을 디테일하게 상상해 본다. 벽지 색도 바꿔보고, 조명은 어떤 색이 더 좋을까 생각해본다.

3개월 동안 꼬박 필사를 했다. 뿌듯하다. 돈도 안되고 인정받는 것도 아닌데,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성취감이 가슴을 벅차게 밀어 올린다.



글쓰기 연습

쓰자.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쓰자. 겨울 새벽 운동을 나갈 때, 이불 밖으로 나오기 싫은 것처럼, 글쓰기도 귀찮다. 한 줄 쓰는데 수천만 가지의 핑계가 생각난다. 뭘 안다고 글을 쓰냐? 좀 더 정리된 다음에 쓰자. 달콤한 유혹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유혹을 견뎌 낼 수 있는 힘은 습관이다. 머리로 쓰지 말고 엉덩이로 쓰자. 아침에 일어나 양치질을 한 후, 물 한잔 마시고 바로 책상 앞에 앉는다. 숨을 쉬는 것처럼 당연하게, 해가 동쪽에서 떠 오르는 듯 자연스럽게 글쓰기를 시작한다.



귀로 쓰는 필사, 녹취

심리상담 방송을 녹취한 지 한 달. 필사와는 또 다른 경험을 주는 녹취의 효과에서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학교 다닐 때 주입식으로 암기만 하는 것은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힘을 주지 못한다. 특히나, 호기심이 많은 아이디얼리스트에게는 지루한 공부법이다. 몰랐다. 지금이라도 내 성향에 맞는 공부를 알게 돼서 다행이다.

녹취를 하려면 수없이 반복해서 듣게 된다. 귀로 듣고, 손으로 쓴다. 선생들이 먹여주는 음식을 받아먹어 온 게 그동안의 학습이라면, 녹취와 필사를 이용한 학습은 스스로 음식을 섭취하는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공부방법이다. 특히, 40대 이후 노안이 생기기 시작하는 중년이라면 눈으로 하는 학습법보다 귀로 듣는 학습이 훨씬 효과적이다.



시간의 힘

매주 팟캐스트 1개를 녹취를 하게 되면 한 달이면 4개, 1년이면 48개를 녹취하게 된다. 욕심을 내자면 1년에 100개 녹취도 가능하다. 100개의 팟캐스트를 녹취하게 되면 로맨, 아이디얼의 패턴은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이후에 구체적으로 포스팅하겠지만, WPI 심리상담은 일반 상담 모델과 달리 내담자의 표면적 문제에 숨겨진 실제 문제를 찾아서 그 솔루션을 제시하는 맞춤형 상담이다. 맞춤 솔루션을 패턴화 해서 자신에게 필요한 상담을 모듈로 당겨올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 심리상담 자판기라고 하면 어떨까. 심리상담에 필요한 유튜브 영상을 모듈로 활용해서 내담자에게 맞는 콘텐츠를 안내하는 가이드 역할을 하고 싶다.

자, 녹취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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