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숲-천선란

바다눈

by 글로리아

인터넷 서점을 들락거리다가 천선란 작가의 '이끼숲' 광고를 보았다.

몰아주기인가?

알라딘에 가도, 교보문고에 가도 그 광고는 있었다.


막상 읽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글을 쓰기로 마음먹으면서 독서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지만 뒤늦게 책을 읽어나가는 입장이다 보니 같은 시간을 투자하더라도 간의 필터를 거쳐서 살아남은 고전을 주로 읽고 싶었기 때문이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기성작가를 가벼이 여겨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내가 그런 기민함을 따라갈 수 있을까 하는 우려이자, 기본기를 갖추는 게 먼저라는 일종의 내 작은 고집이라고나 할까.


그러다 네이버 블로거 '사색의 페이지'님의 책 리뷰를 읽고 마음이 달라졌다.


와, 이 정도라면 지금 읽어야 해. 당장.


바다눈

우주늪

이끼숲


이 소설의 차례다. 3개의 유기적인 단편이다.

아, 목차의 단어 조합부터 마음에 들어.

바다와 눈, 우주와 늪, 이끼와 숲이라니.

이 얼마나 설레는 단어들의 조합인지.


지역도서관 어플로 도서를 검색해 보았다.

대출 중이었다.

예약을 신청해 두었지만 내 앞으로 대기자가 있다.

망설이다 책 구매를 결정했다.

인기 많은 사람은 늘 짝꿍이 있듯이

인기 많은 책은 책꽂이에 꽂혀 있을 틈이 없다.


주문한 책이 도착했다.

어디 보자~~ 나는 특유의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책을 펼쳤다.

안녕? 마르코. 너 달의 궁전에서 언제 이끼숲으로 간 거니?

내 시답잖은 농담이 맘에 들어 혼자 히죽거렸다.

그러나 책을 읽어나갈수록 그 바보 같은 웃음은 점점 사그라들었다.


열다섯 살.

아이에서 어른으로 가는 터널 같은 시간.

그들이 살고 있는 지하세계.


어둠 속에서 인공적인 빛에 기댄 삶의 장치는

조용히 쌓인다.


무력한 독자는 발만 동동 구르며 지켜볼 뿐이었다.

작가가 쌓아온 장치를 터뜨렸을 때

휘몰아쳐 오는 감정은 파도가 되었다.


바다눈은 바닷속에 내리는 눈이었다.


고래의 영혼은 하늘의 별이 되고,

몸은 눈이 되어 바닷속을 떠돌다 사라진다.


아, 그래서 바다눈이었구나.


첫 에피소드의 충격은 너무 컸다.

내 몸이 이렇게 텍스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줄 몰랐다.

눈물은 멈추었지만 나는 계속 딸꾹질을 했다.


한 가지 감정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귀여웠고,

점점 안쓰러웠다.

그들은 인조잔디와 조화뿐인 공원에서 사랑을 속삭이고,

블루스크린에 상영되는 밤하늘을 보며 별을 찾는다.

인공 바다에 서서, 본 적 없는 바다를 그리워한다.


그들이 태어났을 때는 이미 지하세계였다.

하늘도, 꽃도, 바다도 없었다.

본 적 없는 것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들은 이전 시대의 죗값을 그리움으로 지불했다.


지하세계에서 버는 돈은 늘 부족하다. 그래도 살아간다.

돈이 필요한 사람들은 자신을 판다.

몸을 팔고, 웃음도 팔고

인간성이며, 장기까지...

작품 속 세계에선 목소리까지 판다.

가장 비싼 값을 치르는 것은

목소리를 판 후, 성대를 망가뜨리는 것이다.


으악, 잔인해.


나는 한걸음 물러섰다.

그러다 깨달았다. 그것은 자신이 구매한

목소리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장치라는 것을.


이건 단지 아바타의 주인, 한 개인의 욕망이 아니다.


현대 소비자의 심리, 브랜드의 독점,

예술의 상품화까지

꿰뚫는 장치다.


우리는 어디서 멈추었나.

아니, 멈추기는 했나.


내 것의 고유성을 지키기 위한

폭력적 소유욕.


독점해야만 가치가 있다는

왜곡된 믿음까지.


소유는 언제부터

파괴를 요구하게 되었을까.


북쪽, 기계실 부근의 비상계단은 은희의 피난처였다.


그녀만의 잠수함.


그곳을 찾아온 이유도, 울게 된 이유도

마르코는 묻지 않았다.

은희가 답하지 않을 것을 이미 알고 있었으리라.


소년과 소녀는 대화의 물결 속으로 잠수했다.

눈이 마주치면 웃었다.


아, 이대로라면

지하 세계에서 사는 것도

행복할지 몰라.


......


책을 다 읽고 나서

나는 딸꾹질을 하며 이 페이지로 돌아왔다.


이제 보인다.


그들의 사랑과,

삶의 한계가.





image by Gloria-은희에게

나는 보통 글을 쓰고 난 후 이미지를 만든다.

이번에는 달랐다.


리뷰를 쓰기 전에

이미지를 먼저 만들고 싶었다.


적당한 프롬프트만 입력하면

인공지능이 알아서 뚝딱 만들어 주지만,

결과물을 확인하며 프롬프트에 공을 들였다.


헌사하는 마음이었다.


작은 몸으로

어른의 무게마저 감당하며 사는

이 땅의 은희들을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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