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의 만남 02
김명희 작가님께 사인받을 책을 들고 집을 나섰다.
집 앞 떡집에 들러 맞춰둔 떡을 찾았다.
김명희 작가님이 아직 ‘아가씨’라는 정보를 슬쩍 들었을 때 찰떡이 떠올랐다. 자취생의 필수품. 보관과 섭취가 용이한 아주 효자 먹거리다.
후훗, 나의 길었던 자취생활의 꿀팁은 이때를 위함이었구나.
반 말이면 10명이 충분히 먹을 수 있다는 떡집 사장님의 말을 괜히 믿었던가. 떡 상자는 너무 작아 보였다. 배부르게 먹고자 하면 부족하겠지만, 적당히 나누면 어찌어찌 되겠지.
걱정일랑 맞닥뜨렸을 때 하자고 마음을 추스르며 발걸음을 서둘렀다.
지인 한 분을 모셔가느라 아슬아슬하게 도착했다.
손글송글 작가님이 입구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떨리고 설레는 마음에 죄송함까지 더해졌다.
약속된 북카페의 문이 열리고, 활짝 웃고 계신 김명희 작가님의 모습이 보였다.
환한 웃음 너머로 반짝이는 김명희 작가님의 눈빛.
가슴이 떨렸다.
나는 손과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들썩였다.
김명희 작가님은 많은 것을 준비해 오셨다.
세계지도가 프로젝트 화면에 떠올랐다.
우리는 그 앞에서 잠시 조용해졌다. 아직 가보지 않은 나라들이 많았지만, 이상하게도 낯설다는 느낌보다는 문 앞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작가님께서는 『더, 낯선 익숙함을 찾아서』에 수록된 작품들의 배경이 된 나라를 먼저 설명해 주셨다. 동남아시아 문학은 아직 열리지 않은 문이었고, 그 문이 열리는 순간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단일민족이라는 명칭이 무색하게도 우리나라는 점점 다문화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도 좀 더 열린 마음으로 그들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려 노력해야 하며, 소설만큼 좋은 길은 없다고 하셨다.
우리는 왜 역사를 멀리할까.
특히나 세계사를.
그 질문에 우리는 웃음을 터트렸다. 아마 학창 시절의 지루했던 역사 수업이 떠올라서였을 것이다.
평생 교편을 잡았던 김명희 작가님은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국어와 문학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셨던 분이다.
그 고민은 문학 여행으로 이어졌다.
글과 공간이 만났을 때의 감동.
김명희 작가님의 눈빛은
첫 여행, 『토지』의 평사리와
최참판댁의 기와집을 떠올리신 듯
잠시 아득해지셨다.
25년간 연재되었던 『토지』는 책으로 엮이기 전, 신문과 잡지를 전전하며 이어져 왔다. 김명희 작가님은 그 뒤를 25년 동안 따르셨고, 기어이 하동 평사리에 서셨던 것이다. 작가님의 감동은 고스란히 전해졌다.
지루한 수업이 된 세계사 과목은,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지식을 전하기 전에 역사 앞에 자신의 세계관을 세워본 적 없고 철학을 마주한 적이 없는 가르치는 자의 탓이라고 꼬집으셨다. 교사가 감동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학생들에게 감동을 전하겠냐는 작가님의 일침에 우리는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이 시간에도 열심히 노력하는 교사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는 스승과 제자, 그리고 학부모 사이에 틈을 만들었고, 가르침은 점점 업무 수행으로 바뀌어 갔다.
그것은 오롯이 교사만의 몫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세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우리는 선생님의 목소리에 빠져들었다.
김명희 작가님을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싶다.
나도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라고, 스스로 우겨본다.
(설애 작가님의 동창분들의 이름을 알게 되면 곧바로 수정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