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 글로리아.

by 글로리아


글로리아는 길가에 흔들리며 태어났다. 잡초 사이에 묻혀, 자신도 잡초라 믿었다.


첫 번째 잎을 냈을 때, 하루키는 말했다.

”글로리아, 그거 알아? 넌 꽃이야.”

그가 지나간 그 길을 글로리아는 오랫동안 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키 크고 억센 언니들의 기세에 눌려 몸을 잔뜩 웅크렸다.

글로리아는 이제 갓 여린 잎을 피워낸 들풀에 불과했다.

숨도 가만가만 쉬었다.


누군가의 심술은 이 작은 생명이 받아야 할 햇빛을 가리고,

더 깊은 뿌리를 자랑하며 땅의 양분마저 몽땅 차지할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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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마주 잎을 냈을 때, 글로리아는 키가 더 자랐다.

망울도 여러 개 맺혔다.


이것은 잎일까, 가지일까…

글로리아는 앞으로 피워낼 망울들을 가만히 안았다.

스스로가 대견했다.


먼저 태어나 자리 잡고 있던 잡초들은

뜨거운 햇빛과 부족한 양분에 늘 불만이었다.

글로리아의 갓 태어난 말간 몸에 화풀이를 했다.

점점 자라는 그녀의 모습은 자신들과 달랐다.


”어쩌면 우리와 태생이 다를지도 몰라.”


어떤 잡초는 불어오는 바람을 핑계 삼아,

못 이기는 척 휘청이다 글로리아의 뺨을 때렸다.

억울하고 아팠지만 글로리아는 울지 않았다.


밤이 되면, 주변의 수다가 잠들고

서늘한 공기가 내려앉았다.

글로리아는 그런 밤이 좋았다.

문득, 하루키가 궁금해졌다.

지나는 바람에게,

제 자리를 도는 별에게,

낮게 흐르는 구름에게 그를 물었다.


하루키는 바람이자, 별이고, 구름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글로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세상에는 알 수 없는 게 많았다.


글로리아는 몸이 가려워 긁다가 손을 다쳤다.

가시였다.

온통 몸에 돋아난 가시에 놀라, 그제야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괴물식물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주변은 웅성거렸고, 그 소란은 곧 경멸과 조롱이 되었다.


“거 봐, 결국 찔렸잖아.”

“자기가 만든 가시에 자기가 다쳤네.”


울던 글로리아는 울컥 봉오리를 토해냈다.

그것은 밤새 글로리아에게 계속되었다.


“글로리아?”


새벽녘, 살포시 잠들었던 글로리아는 눈을 떴다. 하루키였다.

그는 글로리아의 뺨을 가만히 어루만져 주었다.


글로리아는 그의 손바닥에 얼굴을 대고 긴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입맞춤을 했다.


누군가에게 배운 적 없었어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어도

사랑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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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하루키를 만나기 위해서 태어났어.”


글로리아는 힘주어 봉오리를 펼쳤다.

마침내 드러난 여린 꽃잎은

그녀의 심장 박동에 맞춰

한 겹, 한 겹 피어 올랐다.


말갛던 꽃잎은 서서히 생기 있는 색을 띠었다.

하루키는 조용히 그 안으로 들어섰다.

글로리아는 그의 존재감에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꼈다.


앙 다물려있던 그 속의 꽃잎들도

일제히 깨어났다.

하루키의 움직임에 쓸려가면서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것은 안아줌이었고,

받아들임이었다.


하루키는 더 깊이 글로리아의 향기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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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글로리아는

자신이 꽃이었음을 깨달았다.


조롱과 괴롭힘의 이유도,

뜨거운 햇볕과 거칠고 푸석했던 땅의 이유도...


그것은 모두,

그녀의 향기를 위한 조물주의 축복이었다.


사랑의 무게를 버티기 위한 고행이었다.


비로소,

글로리아는 온몸으로 하루키를 껴안았다.



들꽃글로리아 프롤로그-03.jpg image by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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