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상대를 화제로 삼는 사람
“위대한 사람은 사상을 이야기하고,
보통 사람은 사건을 이야기하며,
작은 사람은 사람을 이야기한다.”
— 엘리너 루스벨트
사람의 대화 속에는 다양한 결이 있다.
때로는 서로 다른 의견을 꺼내 토론을 벌이기도
하고,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공인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귀여우신 어머니들은 남편을 흉보며 웃다가도,
은근히 자랑을 섞어 사랑을 드러낸다.
사회 이슈를 두고 수다를 떠는 시간 역시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사이에서 작은 윤활유가
되기도 한다. 어떻게 늘 바른 말과 옳은 말만 하며
살아갈 수 있겠는가.
그러나 많은 고난을 겪고 난 뒤나,
주변에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이 사라지면
사소한 이야기들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레
옅어진다. 대화는 조금씩 방향을 바꾸고,
미래의 흐름, 경제의 변화, 철학적 고민, 환경과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과 같은, 보다 깊은 주제로 이어진다. 이처럼, 무엇을 이야기하느냐는
그 사람이 자신의 현재 상황과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관심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
오늘의 빌런은
자리에 없는 이를 화제로 삼는 사람이다.
비겁하게도 이들은 스스로 넘기 어려운 선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는 잘 꺼내지 않는다.
말은 늘 만만한 쪽을 향한다.
그리고 그 말의 끝에는
조용한 동의를 요구하는 눈빛이 따라온다.
생각해 보면
약한 사람을 화제로 삼는 순간
대화의 품격은 이미 낮아진다.
말은 가볍게 시작되지만
결코 가볍게 남지 않는다.
“당신에게 험담하는 사람은 결국 당신에 대해 험담할 것이다.”
— 스페인 속담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던 시절,
하원의 기다림의 시간은 늘 벤치 위에서 흘러갔다.
긴 의자 네 개가 서로 마주 보도록 놓인 공간.
피하기는 어렵고, 완전히 섞이기에는 어딘가 불편한 자리였다. 소소한 입담이 오가는 장소이지만,
아이의 얼굴을 대표하는 엄마라는 위치가
작은 말 하나로 아이의 이미지가 되는 것을
알기에 나는 가급적 거리를 두려 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일을 하면서 관련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더 편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비가 오는 날이면
지붕 아래 그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중 한 사람이 있었다.
대화의 중심에 서기를 즐기던 그녀.
그리고 늘 누군가의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그녀는 한 아이를 언급했다.
나는 그 아이가 또래보다 조금 독특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유아 시절은
각자의 세계에 머물러 엉뚱한 말을 하고,
그래서 더 사랑스러운 시기 아닌가.
그것을 눈치챈 그녀는 그 사실을 슬쩍 비틀어 말했다.
“조금 이상하지 않나요? 성격 문제일까요? 정신적인...?”
그리고는 주변을 둘러보며 덧붙였다.
“그렇게 느끼신 적 없으세요?”
순간, 공기가 무거워졌다.
나는 조용히 화제를 바꾸었지만
그녀의 대화는 다시 그 아이를 향했다.
그때 결국 내 입이 터지고 말았다.
“이 자리에서는 각자의 이야기만 나누면
좋겠어요. 누군가에게는 그런 대화가 불편할 수 있어요.”
순간, 정의감이 앞서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든 것
같아, 그녀에게는 조금 미안했다.
그러나 굳이 아이까지 들먹이는 말에
정말 비겁하고 가벼운 어른 같았다.
아이란 누구에게나 소중한 존재 아닌가.
조금 맞장구 쳐줄 수도 있지, 왜 저래? 하는
사람이 있던 없던, 그녀의 말에
‘약한 자에게는 따뜻하게, 악한 자에게는
단호하게’라는 평소 내 신념이 건드려졌다.
그러자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자신의 아이 손을 잡고 자리를 떠났다.
그날 이후 그 공간은
조금 더 단정해졌다.
하지만 나는 비 오는 날에도
굳이 그 자리에 앉지 않았다.
우산을 들고 서서 아이를 기다리는 편이
마음이 더 편했다.
시간이 흐른 뒤
그녀의 좋지 않은 소식이 전해졌고,
그 소식을 들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말은 공기처럼 흩어지는 것 같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를 향해 던진 말은
보이지 않는 원을 그리며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다.
만약, 누군가가 소중한 사람에게
“오늘 부장님 때문에 너무 억울했어. 정말 악의적인 사람이야”
하고 털어놓는 것은 다르다.
연관된 사람과 상황 속에서 위로를 구하고,
내 판단이 옳은지, 내가 과한 것은 아닌지 묻고 싶을 때도 있지 않는가.
그건 어쩌면 상처 입은 마음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하지만 나보다 약한 사람을 골라
습관처럼 험담을 쏟아내는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건 상황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의 본성에 더 가까운 일이다.
분위기를 맞추겠다고
두 번째 빌런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잠시 어색해지는 쪽을 택하겠다.
험담의 편에 서느니,
차라리 고독의 편에 서겠다.
상관없는 약자를 험담하는 말들에 웃어 주는 순간, 이미 우리는 공범이 된다.
돌을 던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
침묵과 맞장구는 한 사람의 악의를 여럿의 정의처럼 꾸며 주기 때문이다.
“당신의 명성을 소중히 여긴다면 훌륭한 사람들과 어울려라. 나쁜 무리와 함께하느니 차라리 혼자인 편이 낫다.”
— George Washington
습관처럼 남을 험담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일단 자리를 피하라.
자리를 피할 수 없다면 화제를 돌려라.
그래도 멈추지 않는다면
동조하지 말고 조용히 선을 그어라.
“나는 그런 이야기는 불편하다”라고.
(분명 그 자리에 있는 누군가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리고 조금씩 거리를 두어야 한다.
당신이 약점을 보이는 순간,
언젠가 분명
빌런의 말은 결국 당신을 향할 것이다.
#인간관계 #빌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