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극후반기 기록 (36주~)

하루하루 피말리던 기억들

by Yoon

임신 극후반기 산파 미팅

임신 36주 차부터는 그룹 프로그램이 끝나고 매주 산파와 1:1 예약을 잡게 된다.

언제든지 출산을 해도 이상하지 않기 때문에 매주 자세하게 임산부의 몸 상태를 확인하고 출산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기존에 하던 혈압, 배 크기, 태아 심장박동 확인에 산파가 내 배를 꾹꾹 눌러서 태아가 골반에 내려왔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더해졌다. 너무나 아날로그적이고 왜 멀쩡한 초음파 기계를 안 쓰는 것인지 불만스럽지만 어쩔 수 없다.

네덜란드의 의료 시스템은 한국에 비하면 매우 허접하지만, 실제로 의료적인 리스크나 문제가 생기게 될 경우 병원으로의 이관이 빠르게 이루어지고 전문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러니 내가 의사를 만나지 않고 있다는 점에 불안해하기보다는 다행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이 내 정신 건강에 이롭다.


38주 차에 내가 이전에 본 초음파에서 아기 배가 커서 출산이 늦어지면 애가 너무 크게 나올까 봐 걱정이라고 하자 산파가 내 배를 꼼꼼하게 만져보더니 지금 상태라면 40주에 출산 시 아이가 3.4-3.5kg 정도로 태어날 것 같다고 했다. 참고로 내 아이는 40주 5일에 4.04kg로 태어났다. ^^..... 내가 네덜란드에서 임신과 출산을 겪으면서 확실하게 느낀 점은 아무도 믿지 말고 나 자신만 믿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난 39주 차부터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어 매일 두 시간씩은 질질 짜며 괴로워했다. 임신 기간 내내 꾸준히 근력 운동을 했기 때문에 38주에는 출산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근자감이 있었는데, 점점 에일리언처럼 변하는 내 몸과 온갖 곳에서 오는 다양한 통증 때문에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래서 40주 2일에 잡힌 조산원 예약에 남편을 대동해서 갔다.

네덜란드에서는 선택 제왕절개는 거의 불가능한 옵션 같고 (이전에 제왕절개 시 경산모 한정 선택 제왕절개 가능, 그 외에는 제왕절개가 꼭 필요한 의료적인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 같다.), 유도 분만을 하고 싶은데 42주까지도 자연 진통을 기다린다는 네덜란드 방침 때문에 더 일찍 유도 분만을 허락해주지 않을까 봐 불안해서였다.


조산원에 도착하여 산파의 일상적인 "How are you?"라는 질문에 펑펑 울며 오늘 내진을 꼭 하고 (네덜란드에서는 보통 41주가 되어야만 내진을 해준다고 했다.) 당장이라도 유도 분만을 잡고 싶다고 요청했다. 내 눈물에 잠깐 당황하던 산파는 바로 내진을 해주고 자궁문이 거의 열리지 않았으니 분만 병원에 연결을 해줄 테니 유도 분만 예약을 잡으라고 안내해 주었다. 이전에 다른 산파가 유도 분만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여 나로서는 격렬하게 싸울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갔더니 다행스럽지만 한편으로는 맥이 빠지는 순간이었다.


분만 병원에서는 당일날 바로 전화가 와서 이틀 뒤 일요일 오전에 약속을 잡아주었다.


병원에서의 풍선 삽입

분만 병원에 도착하자 먼저 아기 심박수를 오래 모니터링하고 내진을 해주더니 역시나 양수량이 매우 충분하고 아기가 전혀 내려올 생각이 없으며 자궁문이 열리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진할 때 힘을 빼라는데 너무 아파서 힘을 빼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틀이 더 지났음에도 아무 진전이 없다는 소리를 들은 나는 또다시 눈물이 펑펑 나왔고, 간호사가 그런 나를 안쓰럽게 보더니 자궁에 풍선을 삽입해서 자궁 이완을 먼저 시도해 보고 경과가 좋으면 이후 병원에서 유도 분만을 진행할 수 있다고 선택권을 주었다.

그 자리에서 바로 더 깊은 내진 후 (...) 풍선을 삽입하고 집에 돌아왔다. 만약 피가 많이 나면 병원에 바로 연락을 해야 한다. 그다음 날 새벽 6시에 병원에 내가 전화를 걸어 분만실에 자리가 있다면 병원에 돌아와 풍선 상태를 확인해야 하며, 병원에 자리가 없거나 자궁이 충분히 이완되지 않았다면 그다음 날로 분만이 밀릴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았다.


집에 돌아오니 풍선 때문에 약간의 이물감과 불편함이 있기는 했지만 일상생활을 하는 데에는 크게 지장이 없었다. 그동안 계속 분만만 기다리다가 막상 출산이 하루 이틀 뒤로 확정되자 갑자기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긴장감을 누르며 다음날 먹을 아침과 병원에서 돌아온 뒤에 바로 데워먹을 수 있도록 소고기 볶음밥을 미리 만들어두었다. 몸이 불편하고 마음이 초조한 데다 서머타임이 시작돼서 새벽 2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들었고, 6시 알람 전에 두어 번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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