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1일 차

정신없이 지나간 하루

by Yoon

아이가 태어나고 나면 좀 쉴 수 있겠거니 했는데 그것은 너무나 큰 착각이었다.

갓 태어난 신생아가 아기 침대에 뉘어져 분만실에 들어오자 아기가 숨을 제대로 쉬고 있는지 불안하고 출산 직후 흥분감이 가라앉지 않아 쉽게 잠에 들 수 없었다. 까무룩 잠이 들고나면 간호사가 3시간 간격으로 병실에 찾아와 아이와 내 상태를 확인하고 기저귀를 갈아준 뒤에 아이를 내게 주어 젖을 물리게 하기 때문에 한 시간 이상을 잘 수 없었다.


나는 혈전 방지 주사를 맞은 뒤 열이 지속되어 새벽에 무통주사를 제거하고 모르핀 주사를 맞았다. 열이 없는 경우에는 에피듀럴을 제왕절개 다음날까지 준다고 했는데 약을 바꾸면 제왕절개 고통이 확 올까 봐 무서웠다. 체내에 남아있는 에피듀럴의 영향인지 모르핀 주사를 맞으면 바로 기분이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비몽사몽 하며 그다음 날 오전이 되자 간호사가 소변줄과 제왕절개 드레싱을 제거하고 화장실에 가서 샤워를 할 수 있는지 움직여보라고 했다. 한국은 제왕절개 상처 부위를 단단하게 드레싱 하는 것 같던데, 네덜란드에서는 허접한 솜뭉치를 반창고로 대충 붙여놓고 상처에 물이 잠깐 닿아도 된다며 씻은 후에 깨끗한 수건으로 두드려 말리면 된다고 했다. 남편에게 상처 부위를 먼저 확인하고 너무 징그럽지 않으면 나도 보겠다고 했는데 아직 출산 직후라 커다란 배가 상처를 가려 직접 볼 수 없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나는 임신 기간내내 붓기가 없었는데 하루종일 각종 수액과 약을 맞아서인지 이 날 오전에는 다리와 발이 퉁퉁 부어있었지만 링겔 줄을 제거하고 나니 붓기가 금방 가라앉았다.


제왕절개 직후 산모들이 굉장히 고통스러워하며 침대에서 일어나는 영상을 많이 봐서 겁이 났는데 피가 울컥울컥 나오긴 했지만 생각보다 일어설만해서 따뜻한 물로 몸을 씻었다. 머리도 개운하게 감고 싶었지만 샴푸도 헤어 드라이기도 없기 때문에 못 했다. 거울로 보니 상처 부위도 생각보다 봉합이 잘 되어있어 보였다.

내가 샤워를 하고 오자 간호사가 깨끗하게 청소된 다른 병실로 우리를 옮겨주었다. 여기에는 환자 침대가 2개라 남편도 편하게 누울 수 있었지만, 네덜란드 병원은 무조건 모자동실이라 편하게 쉴 수는 없었다. ^^


제왕절개 이후 많이 걷고 움직여야 회복이 빠르다는 글을 봤기 때문에 나는 최대한 서서 걸어 다녔고, 침대에서 앉고 서는 것은 고통스러웠지만 천천히 걷다 보면 조금씩 나아지고는 했다. 어째서인지 내가 있던 병원에서는 나한테 직접 움직이라는 조언을 해준 사람이 없었고, 간호사들이 내 병실에 들어올 때마다 서 있는 나를 보며 깜짝 놀라며 누워있으라고 했다. 나중에 크람조흐 (네덜란드 산후조리사)에게 물어보니 보통 네덜란드에서 제왕절개로 출산한 다른 산모들은 일주일정도는 침대에서 거의 못 나온다고 하던데 나는 열심히 움직인 탓인지 임신기간 동안 꾸준히 한 근력 운동 덕분인지 다행히 회복이 매우 빠른 편이었다.


출산을 하고 나자 식욕도 바로 돌아와서 즐겁게 병원식을 먹었다. 한국처럼 진수성찬은 아니고 양이 좀 적은 편이었지만 영양 밸런스가 좋고 건강식이라 생각보다 만족스러웠다.

산모와 보호자가 신청 할 수 있는 병원 식사 메뉴, 샌드위치 선택 시 내 요청대로 빵/치즈/속재료가 비닐에 밀봉된 채로 배달되어 직접 조립해서 먹는 방식이었다.


에피듀럴 제거 후 열이 떨어져서 나는 이 날부터 파라세타몰과 디클로페낙 나트륨이라는 항염증제만 복용했다. 모르핀 주사는 한번 더 맞고 싶다고 어필해 봤지만 내가 너무 잘 걸어 다녀서인지 바로 거절당했다. 한국은 보통 제왕절개 후 감염 예방을 위해 항생제도 처방된다는데 나는 출산 당일 고열이 있을 때 한 번을 제외하면 항생제 없이 잘 회복했다.


이 날은 계속 아이에게 젖을 물리긴 했지만 젖이 전혀 나오지 않아 아이가 하루 종일 힘없이 찡찡대서 나도 남편도 제대로 쉬지 못해서 너무 힘들었다. 간호사들은 모유 수유를 희망한다는 말에 꽂혀서 아이가 태변을 보고 있으니 젖이 나오고 있는 거라며 나를 안심시켰지만 이틀 후 퇴원할 때까지 아이의 몸무게를 단 한 번도 재주지 않았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부모니 그런가 보다 했지만 나중에 퇴원 후 크람조흐가 이에 대해 경악을 했다.


이후 소아과 의사가 내 병실에 와서 원칙적으로는 제왕절개 후에는 24시간 동안 아이와 산모 상태 모니터링 후 이상이 없으면 바로 퇴원을 시키지만, 밤 10시 반 넘어 퇴원 시 크람조흐 없이 우리 둘이 밤새 아이를 케어해야 하므로 그다음 날 검사를 하고 이상이 없을 시 퇴원을 시켜주겠다고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와 남편은 기저귀를 갈 줄도 모르고 아이를 얼마나 따뜻하게 입혀야 하는지도 전혀 몰랐던지라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새벽에 병원에서 쫓겨났다면 집에 제대로 된 아이 이불도 없어 아이가 너무 추웠을 것이다.


다른 엄마가 첫째 출산 후 몇 시간 뒤 새벽 3-4시에 억지로 퇴원을 시켜서 힘들었다고 했었는데 나는 제왕절개로 출산을 해서인지 남은 병실이 충분해서였는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퇴원 시간을 유동적으로 조정해 주는 병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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