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소리 가득하게 남은, 새해 첫날의 동해 여행.

홀로 여행을 떠나야할 이유.

by 하루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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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1일, 갑작스레 방문한 동해.

'내 방안은 푸른 바다'라는 노래가 절로 생각나는 여행이었다.

여행을 다녀오고 잠자리에 누워 듣는 창 밖의 자동차 소리가 모두 파도 소리로 들릴 만큼, 이틀을 꽉꽉 채운 여행에서 돌아와 자려고 누운 내 방안은 파도 소리로 가득했다.



항상 주변 사람들에게 혼자 여행하는 것이 좋다고 추천해왔었지만, 사실 나조차도 홀로 여행을 제대로 해본지가 꽤 오래전이었다.


큰 산맥을 지나서 넘어와 방문한 '동해'라는 도시는 혼자 보내기 좋은 도시였다. '묵호'라는 작은 어촌마을은 더더욱. 홀로 외딴섬에 떨어져있는, 혹은 일본 어딘가의 바닷마을에 온 것 같다는 착각도 불러일으켰다.




추천하는 배경음악

Redoor - 청우, 내 방안은 푸른 바다

새소년 - 덩, 파도,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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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도 속초도 가 아닌 '동해시'의 동해 바다는 여태 내가 본 바다 중 가장 날것의 바다였다.

가파른 바위 언덕과 거센 파도, 잔잔한 파도, 옅은 색의 바다, 진한 바다 모든 것을 볼 수 있었다.


특히나 묵호항의 TTP구역의 파도는 충격적으로 거셌고, 눈을 뗄 수 없었다. 방파제에 부딪치는 파도가 부서지면서 무지개를 만들기도 했다. 묵호항에서 어달항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 바로 옆에는 잔잔한 파도가 아닌 소용돌이 치는 파도가 쉼 없이 움직이고 소리를 내고 있었다.


지구 위에 있는 모든 것들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는 파도였다. 그 옆을 걸으며, 한 발자국 딛을 때마다 멋진 풍경에 자꾸 멈추곤 했다. 저 화난 파도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가까운 거리에서 바라보자니 자연 앞에서 어쩔 수 없는 공포감과 동시에 살아있음을 느꼈다.








한편, 묵호의 파도와 다르게 한섬 해변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동해바다인 만큼, 잔잔한 파도는 아니었지만, 기찻길을 앞에 두고 있는 해변과 빨간 등대는 영화 한 장면에 나올 것 같은 풍경이었다.


마침 새해 첫 날인 1월 1일 날씨가 아주 맑아서 바다는 아주 시린 파란 빛을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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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시의 마을 이름, 길 이름 하나하나 기억하고 어떤 의미가 담겨있나 찾아보게 만들 만큼 (어달, 한섬, 발한, 묵호, ...) 이곳은 나에게 호기심을 자극하는 곳이었다. 마치 멀리 떨어진 해외로 여행을 온 것 마냥.


특히 ‘발한’이라는 지명은 혹시 한기(추움)이 시작되는 곳이라는 뜻일까? 추측해보았는데,

알고 보니 ‘날개 한’자를 쓰고 있어 날개를 핀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 지명은 ‘바란이’라는 우리말에서 시작되었다는 설이 유력했다. 유래가 어찌되었든,

이 이름도 아름다운 동네에서 한번 쯤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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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이름 하나 알아가는 것도 재밌고,또 재미있는 것이 더 없을까,하며 이 도시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가고 싶었다. 그 중 하나가 '문어'였는데, 서울에서는 잘 먹을 일 없는 문어가 여기 저기 보였다.


문어 국밥, 문어 비빔면, 문어 탕수육, 문어 닭강정, 그고 타코야끼!

동해에서 파는 타코야끼는 정말 맛있는 타코야끼겠구나, 싶었다.


오죽하면 해안도로에는 ‘문어상’이 있을 정도였다. 사실 이 문어상도 나름 동해를 지켜준 문어 설화의 문어를 기리기 위한, 동해의 역사가 담긴 동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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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재밌는 풍경은, 거리 곳곳에 가오리, 오징어, 병어(?) 등 각종 해산물들을 말려놓는 모습이었다. 시장 상가 앞 인도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TPP구역에 있는 봉마다 끈이 연결되어있어서 바닷바람에 제대로 생선을 말리고 있었다.


파란 바다와 누군가 쌓아올린 자갈돌들 그리고 그 앞에 걸려있는 생선이 어촌마을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상기시켜주었다. 집 바로 앞에 바다를 가질 수 있는 도시만 할 수 있는 일! 여기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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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부산의 감천문화마을같은 '관광지'라고 예상했던 논골담길은 여태 내가 본 적 없는, 상상도 해보지 못한 풍경을 갖고 있었다.


해가 떠있을 때 이 가파른 언덕 마을에서 파란 바다를 보지 못한게 아쉬울 정도로,

정말 그 모습이 궁금해질 정도로 오르막길을 걸으며 본 풍경은 엄청났다.


바다가 시야의 2/3를 차지했다. 말도 안돼. 어떻게 이런 마을이 있을 수 있지?

여기 사람들은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이 눈 앞을 압도하는 바다를 보고 사는 건가?

멀리서 보기만 해도 무서울 정도로 바다는 넓고 끝없는 말그대로 '망망대해'였다.


한편으론 다시 동해를 꼭 찾아와야 할 명분이 생겨서 신나기도 했다.

과연 맑은 날 오후에 여기서 보는 바다는 또 얼마나 멋질지. 그 풍경을 보게 될 날이 기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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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걸으면서 눈에 담아오고 귀에 담아온 것들을 잊고 싶지 않아서 계속해서 카메라에 담았다.



1월 1일 묵호의 밤은 일출 여행객들이 몰렸을텐데도 불구하고 아주 깜깜했다.

대부분의 식당과 카페가 7시면 불이 꺼지고, 문을 닫았다.


아무 연고도 없고, 누군가 추천해준 적도 없고, 더욱이 내 고향에서는 감히 갈 생각도 못해볼 만큼 멀리 떨어진 강원도의 이 시골 마을은 나에게 완전히 비일상을 경험하게 해준 곳이었다.


동해바다는 멋있지만 강릉은 이제 질렸다고 말하던 나에게 모든 풍경 하나하나가 새롭고 재밌었다.


혼자 차지한 넓은 숙소, 파도위의 일출, 수산시장 냄새,

우연히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되어 나누었던 대화,

일출을 보고 지나가다 발견한 베이커리의 갓구운 빵,


우연히 발견한 '묵호'를 주제로 한 전시, 그곳에서 만난 작가님.

귀여운 소품샵의 고래, 가오리, 해산물들...


아무 생각 없이 바다만 보고 파도소리만 들으며 걸은 2km의 거리,

지붕사이로 보였던 새까맣고 끝이 없는 달빛 비친 바다,

차갑게 얼어붙은 손과 입, 코 끝 그리고 마침내 들어간 따뜻한 라멘집,

7시면 문을 모두 닫아서 깜깜하던 묵호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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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떠나는 여행을 왜 좋아했었는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은채 천천히 감상하고 온전히 느끼는 시간이 필요했다.


여행하면서 접하는 수많은 비일상적인 생소한 풍경과 경험들을

찬찬히 살펴보고 감상하고, 의미를 찾아내는 시간들이 필요한 것이었다.


그런 시간들이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답고, 새로운 멋진 것들로 가득한지 깨닫게 해주고,

내 삶을 더 다채롭게 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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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여행은, 완전히 일상에서 벗어나며 감탄하게 되는 경험들을 쌓아가는 것이 아닐까!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걸을 때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어떤 아름다움, 멋짐, 호기심을 느끼고 감탄을 하고서,

그 감탄들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면 그제서야 언어로 간신히 바꿀 수 있는 덩어리의 감상이 나오게 되는 것 같다.


눈 앞의 모든 것들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던 이번 여행을 계기로 이제 주기적으로 혼자 여행을 떠나야겠다고 다짐하며 서울행 기차를 탔다.

안녕 동해야! 또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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