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고향에 다녀왔다.
설날을 맞아, 고향을 방문했다. 해년마다 방문하긴 했지만,
이번 연휴에는 정말로 고향에 다녀온 것 같았다.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 사람, 그리고 그 모습을 기억해 주는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이번 명절엔 아빠와 오래 시간을 좀 보내고 싶어서 담양에서 사흘을 넘게 머물러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명절에 해야 할 일들을 마치고 언니나 오빠를 따라서 옆 도시로 넘어갔던지라 이곳에 계속 있는 이 시간이 약간은 어색하기도 했다.
하루 종일 집에서 아빠랑 올림픽 중계 장면들을 보고, 남은 명절 음식들과 요리를 해 먹고, 대나무가 빽빽한 뒷 산 산책도 하고, 마당에 나와서 햇볕을 쬐고, 새벽에 잠들어버린 아빠를 대신해서 tv를 꺼주고…
마침 주말에 대전에서 고모와 고모부도 내려오신다고 하여 예상보다 더 오래 머물게 되었고 집에만 있기엔 답답해서 제 발로 찾아가 본 적 없던 담양에 있는 카페에서 카공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가방을 메고 다녀오겠다며 밖으로 나서는데,
어린 시절 책가방을 짊어지고 학교 다녀오겠다고 나서는 내 모습이 떠올라서 기분이 이상했다.
서른이 다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이미 가족과 떨어져 지낸 지 내 나이의 절반쯤 되어버려,
이따 저녁은 어떻게 할 건지 물어보는 아빠의 질문이 어색하게 들리더라.
그러고 문 밖을 나설 때 부모님으로부터 듣는 "잘 다녀오라"는 그 말이 너무 오랜만이라서,
어린 시절로 잠깐 돌아온 것만 같았다.
아빠 차를 타고 학생 시절 살던 동네에 들러 주유를 하고 세차를 했다.
할 일을 다 마치고 광주에 있는 언니 집으로 향하며 근처 익숙한 집을 지나쳤다.
“OO이 집인데, 아직 여기 살려나?”
놀랍게도 이 말하는 순간, 친구 아버지께서 그 앞을 지나가고 계셨다.
“어, OO 아빠 아니야?!!”
이 말을 듣자마자 아빠는 바로 차를 뱅글뱅글 돌려서 친구 아빠 앞에 차를 세웠다.
사실 부모님끼리 더 잘 아는 사이었어서 아빠가 더 반가워했을지도.
친구 아빠는 차가 이상하게 돌아 멈추니 '이게 뭔 상황이지' 싶은 표정으로 보시더니, 웃는 얼굴로 인사하는 나를 보시고는 더 알쏭달쏭 한 표정을 지으셨다. 10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나버려 학생 티는 사라진 내 얼굴이 익숙하면서도 낯설으셨을 것이다.
‘누구지?’하는 표정이 내 이름을 듣자마자 반가운 표정으로 바뀌었고, 나에게 '어디서 일하냐'면서 물어오셨다. '왜 고시 합격했다고 동네에 플래카드 안 붙냐'는 농담과 함께 “좋은 데 다니지?”, “잘 살고 있지?”라 기대를 넘어 확신에 찬 눈빛으로 내 손을 잡으며 말씀하시는 모습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고 동시에 묘한 위로를 받았다.
내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동네 아빠 엄마들이
나를 이렇게 나를 때때로 기억하고, 걱정하고, 잘 살기를 바라고 계시는구나.
잘 살아야지. 잘 살아야겠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래 잘 지내고”
“OO 이한테 안부 전해주세요”
“그래, 너 결혼하면 꼭 얘들한테 연락해라!”
“네 연락할게요!”
그렇게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아빠와 옛 동네를 떠났다.
오늘따라 세차하는 차가 많아서 20분 정도 기다렸는데,
아빠는 그 시간이 조금만 빨랐어도 못 만났을 거라면서, 세차하길 잘했다며 좋아라 하셨다.
뭐, 사실 이 시골 동네 대부분의 동급생들은 같은 동네에 같은 나이라는 이유로 십 년 가까이한 반이 되고, 커가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게 된다. 그 친구와도 또한 알고 있는 기간은 길었지만 사실 그렇게 친한 사이라고 하기엔 애매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 친구랑 나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같은 곳을 나왔더라.
어쩌다 한 번 친구들과 그 친구 집 앞을 지나가다가 OO이 있냐며 무작정 찾아간 적도 있었고, 초등학생 때 내가 이사 왔던 집이 그 친구가 그전에 살던 집이라 그 친구가 잃어버렸던 물건을 내가 미술시간에 들고 와서 싸웠던 기억도 떠올랐다. (내 팔레트를 몽땅 검은색으로 칠해버린 게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고등학생 땐 규율이 엄격해서 중학교 동창이라도 남자 애들 얼굴 보기도 쉽지 않았고, 졸업하고 대학에 와서는 어느 누구도 동창회 같은 걸 열지 않아서 같은 학년이었던 동창들을 보는 일이 정말 드물었다.
그 사이 나는 서울에서, 그리고 동네 친구들도 각각 타지에서 각자의 삶을 보냈을 거고 그 못 본 시간들이 쌓여서 더더욱 누가 누구에게 연락할 일이라곤 생기지 않았던 것 같다. 딱히 필요성을 느끼지도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오늘, 연락할 만한 일이 생긴 것이다.
뭐, 5년쯤 전이었으면 연락할 만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서울에서 챙겨야 할 일들이 너무 많기도 했고, 별로 과거를 그렇게 떠올리고 싶진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이때 연락하지 않으면 언제 다시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기에, 어색하지만 궁금한 마음으로 그렇게 고향 친구에게 먼저 연락을 했다.
다행히도 그 친구와 연락이 닿았고, 얼마만이냐며, 안부를 묻고
마침 다음날 나는 다른 중학교 여자 동창 친구와 만나기로 했던 참이라 같이 보자고 제안했다.
아쉽게도 시간이 안 맞아서 점심에 선약이었던 친구 따로, 저녁에 이 남자애들 두 명과 보게 되었는데 거의 10년 만에 보는 자리라 혹시라도 너무 우리가 달라져 있으면 어떡하지, 무슨 얘기를 해야 할까 조금 걱정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굳이 안 해도 되었던 것 같다.
그래도 나이의 절반만큼은 알고 지냈던지라, 할 수 있는 얘기들이 많았다. 이 친구들은 내가 떠올리게 되는 모습이 중학교 시절에 멈춰 있어서 너무 오랜만에 만났더니 성격과 얼굴은 거의 그대로인데 머리만 자란 느낌이었다.
어린 시절의 모습으로만 기억에 남아있는 친구들이 아직도 몇몇 있다.
내 기억 속엔 철없고 어린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었는데,
이 친구들도 나와 똑같이 나이를 먹고 세상에 무던해져가고 있었다.
날 오랫동안 못 본 친구들도 나를 미성숙하고 어린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겠지.
사실 그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의 나는 그저 과거로 여기고, 한 번씩 떠올리며 그 학창 시절의 아쉬움을 생각하곤 했었는데, 막상 그때를 같이 추억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 얘기를 하니, 나 혼자만 떠올리던 과거 기억이 비로소 완성되는 느낌이었다랄까.
“내가 뭘 잘하는지 모르겠다면, 어린 시절의 나를 봐”라는 유명한 일본 광고 문구가 있다.
그 어린 시절을 이젠 한 두 발자국 떨어져서 볼 수 있는 나이가 되긴 했지만, 그게 과연 맞는지는 내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다른 사람의 말도 들어볼 수도 있지 않을까.
나와 성향이 비슷해서 거의 유일하게 자주 연락하고 지내는 고향 친구가 있다.
하지만 막상 이 친구랑은 옛날 일에 대해서는 별로 이야기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번 연휴에 잠깐 만난 그 친구가, 그런 말을 해주었다.
어렸을 때 봤던 네 모습은, 뭔가 만들고, 꾸미고, 사진 찍고, …
그런 것들과 잘 어울리는 일을 할 것 같았다고.
그래서 심리학과를 간다고 했을 때 의외라고 생각했다고.
그리고 요즘 올라오는 소식을 보며, 정확히 뭘 하는진 몰라도, 네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구나! 싶었다고. 그건 내 어린 시절을 함께 자라온 친구들만이 해줄 수 있는 말이었다.
나에게 있어 이 친구에 대한 이미지는, 어렸을 적 운동하겠다고 매일매일 빠짐없이 줄넘기를 말도 안 되는 개수만큼 하는 성실한 친구였다. 그 모습으로 아직도 기억되곤 했기 때문에, 나도 그런 기억을 떠올리며 방황하고 있는 서로에게 각자만이 해줄 수 있는 말들을 나눠주었다.
마치 이번 연휴는 약 15년 전으로 잠시 시간여행을 하고 온 것 같았다.
못 볼 것 같은 장면들과 못볼 것 같은 사람들을 보고 나니, 서울로 돌아와 서울의 집 현관문을 열었을 때, 일주일이 아닌 몇 년을 지나쳐온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서른이 되어서야,
그간 앞만 보며 '이상적인 나'를 쫓던 내가
계속해서 벗어나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나를 하나로 생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