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는 내내 차창 밖으로 보이던 알프스의 만년설은 오스트리아에 온 지 6개월이 지나던 시점에도 여전히 감탄의 대상이었다. 아무렇게나 찍어도 달력 사진이 될 정도라고 회사 동료는 너스레를 떨었다.
1999년부터 약 3년간 다녔던 오스트리아 회사는 잘츠부르크에서 A1 고속도로나 1번 국도를 타고 동쪽으로(비인 방향) 자동차를 달려 약 4~50분 가량 걸리는 한적한 시골에 위치해 있었다. 그곳은 경치가 좋기로 유럽에서도 첫 손가락에 꼽히는 잘츠캄머굿(Salzkammergut)이라는 지역이었다. 이런 곳에 세계 최초로 3차원 초음파 동영상 진단기를 개발한 회사가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쉽지 않았다. 실제로 처음 회사를 찾아갔을 때 도대체 이런(?) 곳에 그런(?) 회사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근처를 몇 번이나 빙빙 돌았을 정도니까.
오스트리아의 잘츠캄머굿
하루는 총무팀의 나이 지긋한 현지 직원이 찾아왔다. “미스터 하, 퇴근하실 때 사무실의 창문을 닫아 주세요.” “글쎄요, 초여름이라 창문을 닫아 놓으면 환기도 안될텐데, 열어 놓는 게 낫지 않을까요?” 라고 나는 반문했다.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서 생활해 본 분들은 알겠지만, 그곳의 창문은 손잡이를 위쪽으로 향하게 하고 열면 창문의 윗부분만 비스듬하게 열리고, 수평으로 하고 열면 전체가 옆으로 열리게 되어 있다. 내 생각에 위 쪽만 조금 열어놓고 가면, 밖에서 들어올 염려도 없고, 밤새 환기도 되고 좋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습니다. 혹시라도 사무실 내에서 어떤 이유에서든 화재가 발생할 경우, 문이 닫혀 있으면 산소 공급이 되지 않아 저절로 불이 꺼지기 때문이지요.” 아하! 그렇구나. 그래서 직원들이 퇴근할 때 창문을 닫는구나. 이곳에서는 우리처럼 대형 사무실을 쓰는 것이 아니라, 각자 사무실이 하나씩 배정된다. 그러니 각 직원들이 퇴근할 때 알아서 창문을 닫아야 했다.
이후에 다녔던 독일의 회사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다. 인사 업무를 하면서 총무 업무도 함께 담당하고 있었는데, 휴일인 일요일에 사무실 천장의 전구를 몇 개 교체할 일이 있었다. 직원이 하는 말이, 2명이 와서 일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짧은 생각으로,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인데, 인건비도 비싼 나라에서 굳이 2명씩이나 올 필요가 있나요?” 라고 묻고 말았다. 그 독일인 직원은,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혼자 사다리 위에서 일하다가 혹시 다치기라도 하면 어떻게 되겠냐”고 나를 타이르듯이 말했다.
위 두가지 사례는 우리가 유럽사람들에 비해서 얼마나 안전의식이 취약한지를 보여 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부끄럽지만 그때 내 안전의식은 그 정도 수준이었다. 그 이후로 독일에서 꽤 오랜 세월을 생활하면서 그들의 높은 안전의식, 질서의식 등을 몸으로 배울 수 있었다. 화재가 날 확률이 얼마인가의 문제가 아니었다. 비용이 얼마나 더 드는가는 이런 경우 판단의 기준이 되지 않았다.
독일에 살때 아내와 친하게 지내던 한국인 지인에게는 여섯 살짜리 아이가 있었다. 어느 날 아내가 지인과 아이와 함께 차를 타고 가던 중에 도로 옆에 잠시 차를 세우고 아이의 엄마가 가게에 급히 물건을 사러 갔다. 그런데 차 안에 있던 그 여섯 살짜리 아이가 몹시 불편해 하며 어쩔 줄 모르더라고 했다. 왜 그러니? 하고 물었더니, 아이 왈, ‘’이모, 여기는 차를 세우면 안되는 곳인데…’’ 하더란다. 그 조그만 아이가 차를 세워서는 안되는 곳에 차를 세우면 그냥 몸이 못 견디는 것이다. 차 왕래도 별로 없는 곳인데, 잠시 세워두는 것인데, 급한 일이 있는데, … 이런 저런 판단을 하기 이전에 이미 아이는 그냥 불편해서 못 견디는 것이다. 여기는 주정차를 하면 안되는 곳이니까!
안전을 위해 정해진 규칙을 따르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질서를 유지하는 모든 행위들은 어린 시절부터 교육을 통해 몸에 익혀야 한다. 그럴 때에만, 있을지 모를 화재의 예방을 위해 사무실의 창문을 닫게 되고, 백화점에서는 방화문이 내려오는 곳에 놓인 물건들을 치우게 되며, 건물의 복도에 쌓여있는 잡동사니들을 치우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건물 비상구 앞을 창고처럼 쓰는 행위가 사라질 것이며, 화재시 연기를 막을 수 있도록 건물의 비상계단문을 항상 닫아놓을 것이다. 그래야만 소방도로에 불법주차하는 일이 사라질 것이고, 골목마다 어지럽게 주차하는 일을 피하기 위해 주민들이 대책을 강구할 것이며(혹은 대책을 요구할 것이며), 지하철 스크린도어 수리를 위해 직원이 혼자 일하는 것이 사라질 것이다.
로버트 풀검은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라는 에세이집에서 어떻게 살 것인지,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에 대해 그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유치원에서 배웠다고 썼다. ‘지혜는 대학의 상아탑에 있지 않고, 유치원의 모래성 속에 있었다’’고도 했다.
남을 때리지 마라, 무엇이든 나누어 가져라, 사용한 물건은 항상 제자리에 갖다 놓아라, 자신이 어지럽힌 것은 스스로 치워라, 내 것이 아니면 가져가지 마라, 다른 사람을 아프게 했으면 미안하다고 말해라,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어라, 변기를 사용한 뒤에는 물을 내려라, 매일 오후에는 낮잠을 자라, 균형 잡힌 생활을 해라, 밖에 나가서는 옆사람과 손을 잡고 같이 움직여라 등등. 작가는 계속해서 말한다. ‘유치원에서의 가르침은 아이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단순하다고 표현해서도 안된다. 그것은 삶에 기본이 되는 것이라고 해야 옳다.’
우리는 유치원(학교)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우리 아이들은 지금 유치원(학교)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을까? 진정으로 삶에 기본이 되는 것을 배우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