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장관 인사를 둘러싼 논란을 보면서 - 1

강선우 장관후보자 논란

by 하성식

만약, 회사에서 직무를 수행하는 직원이 만족스럽지 않다고 느낄 때, 회사가 불만족을 일으키는 요인을 제거해 준다면 그 직원은 곧바로 만족할까? 어떤가? 그럴 것 같다. 그런데 당연해 보이는 이 말이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학자가 있었다.


허쯔버그(F. Herzberg)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심층분석(중요사건기술법; CIT)을 통해 회사에서 불만족을 일으키는 요인을 개선한다고 해서 직원들의 만족감이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불만족하지 않은 상태'가 되었다는 것 뿐이지 그것이 곧바로 만족으로 이어져 생산성의 향상으로 연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만족의 반대는 불만족이 아니라 만족하지 않은 상태일 뿐이고, 불만족의 반대는 만족이 아니라, 불만족하지 않은 상태일 뿐이라는 것이다.


심리학자의 이 기발한 통찰은, 이요인(Two Factors) 이론이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경영학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물론 오래된 이론이고, 미국이라는 특정 국가에서 이루어진 연구이기 때문에, 경영경제환경의 변화, 국가 간 문화 차이, 그리고 '사람 자체'가 변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는 제약이 있긴 하다.


돌멩이가 그냥 돌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실은 그 돌이 여러가지 분자로 이루어진 물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더 나아가 그 분자조차도 원자들이 규칙적으로 배열된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어떤 충격에 부딪혔을지, 그로 인해 어떤 사고의 전환을 일으켰을지 상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우리가 '코페르니쿠스적 전화(전환; Kopernikanische Wende)'라고 말할 때 그것은 사고나 사유의 획기적인 변환을 말하는 것이다. 그 이전과 이후를 분명하게 구분짓는. 허쯔버그의 이론이 그 정도 급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우리 사회에 그러한 획기적인 사고의 변환이 너무 절실하다는 말을 하려는 것 뿐이다.


허쯔버그의 통찰을 통해, 만족과 불만족은 하나의 연속성 상에 있는 개념이 아니라, 두 개의 다른 연속성 상의 개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고의 전환이고,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의 협소함에 대한 반성이다.


요즘 의견이 분분한 인사 문제를 보면서 허쯔버그의 이요인이론을 떠올린 건 어떤 답답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서구에서는 이미 60년대부터, 권위(자유로운 토론을 막는)란 것이 얼마나 사람의 자유를 억압하는지, 인간을 획일적으로 보는 잣대가 얼마나 비과학적이고 무식한 짓인지를 깨닫고 그런 생각에 맞춰서 사회의 제도를 만들어 왔는데, 한국 사회는 여전히 "도덕적이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것이 한가지만 나와도 그 사람은 비도덕적"이라는 무식한 잣대를 마구잡이로 들이대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부분이 도덕적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전부를 비도덕적!이라고 단순하게 결론 짓지 말기로 하자. 대신에 '한 부분이 도덕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라고 유보적인 판단만 내리면 된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듯, 도덕과 비도덕이 하나의 연속성 상에 있는 것과 같은 단순한 잣대가 아니듯, 한 사람을 '판단'하는 문제는 그리 단순한 일이 아니다. 그 복잡미묘한 문제를 녹슨 식칼로 무 자르듯 간단하게 결론짓고 돌아서서 잊어버리는 단순무식함이 무더위 만큼이나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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