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형, 제가 마음에 안 드세요?”
“아니, 난 너가 마음에 안 드는 게 아니라 너가 늦은 게 마음에 안 드는 거야.”
7월 16일, 7월 14일의 39번째 내 생일을 맞아 처가네 식구들이 함께 모였다. 아니, 모이기로 했었다. 정확하게는 11시까지,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에 있는 일호점미역에서. 우리 가족은 집이 송도인 탓에 약간 일찍 출발하여 10시 반에 도착했다. 도착 직후, 아내는 친정 부모님이 언제 오시는지 확인하려고 전화를 걸었다. 처남이 지금 일어났다고, 그래서 약 30분 정도 늦을 거라는 말을 나에게 전달했다. 7월 16일의 나는 그전까지 상당히 많은 일정을 소화하느라 피곤하기도 하였고, 결정적으로 15일에 발표한 현대자동차의 ‘포니와 함께한 시간’을 수상하지 못해 상당히 기분이 언짢은 상태였다. 덕분에 나는 처남의 ‘이해할 수 없는 늦잠’에 상당히 화가 났고, 처남이 도착하면 따끔하게 한 마디를 해주기로 결심했다.
40분 뒤,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태운 처남의 쏘렌토가 주차장에 들어섰다. 나는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마중 나갔고, 운전석에서 내린 처남과 마주쳤다. 이 녀석은 나를 보고 마땅히 나와야 할 “죄송합니다”나 “미안합니다”가 나오지 않고 나보다도 더 퉁명스러운 얼굴을 하고는 그냥 “안녕하세요”라고만 할 뿐이었다. 원래 이 정도로 싸가지가 없는 친구가 아니었기에 ‘무슨 일이 있구나’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이 건 정도를 넘었다고 생각했다.
“수호 너는 잠깐 나 좀 보자.”
다른 가족들은 전부 먼저 들여보내고, 처남과 둘이 남아 실외 대기실 의자에 앉은 나는 왜 늦었는지 물어보았다. 처남은 늦잠 자고 싶어서 늦잠 잤다고 했다. 내가 어제 술을 먹었냐고 물어보자, 술을 먹었다 했다. 언제까지 먹었냐고 하니까 12시 정도까지 먹었다고 했다. 12시면 10시 반까지 못 올 이유가 없었다. 내가 너는 평소 친구들 만날 때도 늦는 편이냐고 묻자, 수호는 이렇게 대답했다.
“매형, 이러시는 거 저 좀 불편해요.”
“그래? 나도 불편해. 내 생일날 점심 모임에 내가 왜 40분이나 밥을 못 먹어야 하지?”
“매형, 제가 마음에 안 드세요?”
수호는 내가 굉장히 마음에 안 든다는 듯 거칠게 말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의 말에 침착하게,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 난 너가 마음에 안 드는 게 아니라 너가 늦은 게 마음에 안 드는 거야.”
더 따져들 것 같아 보였던 수호는 의외로 순순히 내 말에 “네” 했다.
나는 단수가 아니다
‘드래곤 라자’는 개인적으로 한국 판타지 문학에서 아직까지도 챔피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레전드이며, 장르 문학이라는 핸디캡을 제외하더라도 한국 문학 전체에 길이 남을 역사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드래곤 라자를 6~8번은 읽었고 덕분에 이 소설의 아주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다. 드래곤 라자에는 곱씹어 볼만한 철학적 대사가 여러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나는 단수가 아니다’라는 대사이다.
이 대사는 주인공 후치와 루트에리노 대왕이 드래곤 로드를 만났을 때 하는 대화에서 나온다. 이 대사의 핵심은, 인간이라는 존재는 ‘Shawn’이라는 단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Shawn’은 무수히 많은 복수로 구성된, ‘Shawns’라는 말인데, ‘아들로서의 Shawn’, ‘아빠로서의 Shawn’ ‘아내의 남편으로서의 Shawn’ 등등 수많은 ‘분신’들을 갖고 있다는 개념이다.
너를 좋아하는 이유와 싫어하는 이유
우리는 살면서 많은 인연을 만나고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많은 경우,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오류에 의해서 인연이 맺고 끊긴다. ‘나는 너의 ㅇㅇㅇ한 점이 좋아’, ‘나는 너의 ㅇㅇㅇ한 점이 싫어’ 등등.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정말 큰 실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드래곤 라자에서 나온 대사처럼, 우리는 단수가 아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싫어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의 영혼 전체를 보고 판단하지 않는다. 그 사람의 어떤 외관, 행동, 말을 경험하고, 그 이유를 근거로 그 사람을 판단한다. 우리는 ‘나는 단수가 아니다’라는 개념의 이해도가 부족해도 너무 부족하다. 너무나도 작고 단순하고 파편적인 이유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고, 또 싫어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 실로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결정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 신이 아닌 이상, 누군가의 영혼의 전체를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많은 수호를 전부 싫어할 순 없다
나는 신은 아니지만, 그래도 ‘매형의 생일 모임에 늦은 수호’가 수호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수호의 “매형, 제가 마음에 안 드세요?”라는 질문에 심플하게 “아니, 난 너가 마음에 안 드는 게 아니라 너가 늦은 게 마음에 안 드는 거야.”라고 말할 수 있었다. 실제로 나는 그날 수호가 싫지 않았다. 나는 수호가 이 모임에 나오기 싫었던 이유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그 이유를 어느 정도 알고 있더라도 수호의 행동은 옳지 않았다. 그는 40분 늦은 이유에 대해 도착하자마자 매형에게 설명하고 사과를 하는 게 맞았다. 그가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수호에게 화내기 전에 좀 더 이해해 보고 적절한 이유를 찾아내기 위해 따져 물었던 것이다.
그러니 수호야, 만약 그날 네가 기분이 나빴다면, 그래도 나의 기분도 어느 정도 생각해 보길 바란다. 나는 너를 싫어하지 않고, 오히려 많이 좋아한단다. 매형으로써 많은 도움을 주지 못했어서 오히려 미안하지. 내가 너가 싫다면 그것은 너라는 사람 전부가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 아니라 특정한 수호가 싫을 뿐이야. 우리는 단수가 아니기에, 나는 수많은 너를 전부 싫어할 순 없다. 그것은 인간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그러니 수호야, 우리가 이미 간단하게 화해를 하긴 했지만, ‘단수가 아닌 수호’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좋겠다. 내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볼 생각이 있다면, 이어지는 2편을 봐주길 바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