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할 것 같을 땐 펜을 드세요
중학생 시절 '틱낫한' 스님이 집필한 "화"라는 책이 꽤나 유명했다. 나는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으나 당시엔 우리 담임 선생님께서도 이 책을 우리에게 소개해줬던 기억이 있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화가 났을 때 우리는 뭔가를 부수는 등 그 감정을 분출하는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지만, 저자는 이런 감정을 격한 행동이 아닌 걷기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한창 감정적으로 안정감이 없던 사춘기의 나는 선생님께 물었다.
"화가 나는 사람이 답답하게 걷기만 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화가 더 나지 않을까요?"
책을 전혀 보지 않은 내게, 선생님은 그게 포인트라고 했다. 충동적이고 격한 감정인 화와 대비되는 느리고 격하지 않은 행동을 통해서 사람은 화를 천천히 살필 수 있게 되고 여기서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지금과 달리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책을 거의 읽지 않았던 나였기 때문에 이런 설명을 들은 후에도 그 책을 읽어보진 않았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글을 쓰는 입장에 있어 보니 틱낫한 스님이 어째서 화를 다스리는 방법으로 걷기를 선택했는지 이해하게 됐다.
걷기와 글쓰기의 공통점은 느리다는 것이다. 컴퓨터가 아니라 펜으로 글을 쓴다면 더욱 느릴 수밖에 없다. 머릿속에 든 생각은 글을 쓰는 손의 속도보다 매우 빠르지만 허점이 많고 치우쳐져 있다. 그래서 천천히 살필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되면 충동적으로 든 생각이나 감정에 의한 행동이 좋아 보이고 그게 맞다고만 생각된다. 선택지가 없다고 여기는 경우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천천히 살펴보면 그렇지 않음을 안다. 펜을 들어 화가 난 이유, 그 화로 인해 어떤 행동을 하고 싶은지 그리고 그게 맞는지를 천천히 쓰다 보면 '그렇게까지 화를 낼 일은 아닌 것 같은데?'라거나 '내가 이렇게 해서 얻는 게 뭐지?'라는 생각이 들며 화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 든 생각을 문장으로 옮기면 화나게 했던 그 이유가 뒤늦게 재차 감정에 불을 지르는 일은 막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글쓰기는 인간이라면 하고 싶지 않을 '후회'를 예방할 훌륭한 감정 통제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느끼는 대로, 기분대로 행동하면 그 당시는 개운해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미안하거나, 부끄럽다며 후회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 후회할 일은 갑자기 찾아오며 미리 대비할 수도 없다. 후회하는 행동은 혼자만이 강하게 경험하는 감정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혼자서 컨트롤하는 연습이 되어 있지 않으면, 컨트롤하는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언제든 후회는 마일리지처럼 쌓일 수밖에 없다. 그때 글쓰기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감정적으로 행한 행동으로 후회한 경험이 있다면 글쓰기를 이용해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