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아버지의 거짓말
당신의 모든 것을 믿고 있는 부모님을 위하여.
고등학교 때 일이다. 시골에 있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타지의 큰 고등학교로 가게 되었다. 타지로 가는 바람에 기숙사 생활을 하였고, 주말마다 집을 다녀오는 생활을 하며 학교를 다녔다. 당시에 나는 큰 학교에 적응도 못하고, 공부도 하지 못하는 학생이었다. 입학 후 한 달만에 학교 기숙사에 적응하지 못하여 뛰쳐나와 자취를 시켜달라고 졸랐고, 자취를 시작한 후에는 집을 나온 학교 친구와 함께 지내며 학업이나 학교 생활과는 점점 더 멀어져 갔다. 당연히 성적표를 받아보시는 부모님은 이를 너무나도 잘 알고 계셨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면서 이때만큼 부모님께서 학교로 자주 오신 적이 없었는데, 심지어 나는 자연계열과 인문계열로 나누는 날에도 늦게 학교에 가서 제대로 선택도 못하고 혼났으며, 인문계열이 아닌 자연계열로 배정해달라고 부모님께 연락했던 철없는 나였다.
게다가 일주일에 한 번 가는 집에서는 매번 가족들과 짜증을 내며 말싸움을 하기 일수였고, 당시 동생은 나에게 단 한 번이라도 조용히 지내다 가라고 부탁까지 할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주말이었다. 점심으로 외식을 하고 돌아가는 길에 어머니께서 잠깐 이야기 좀 하자고 하셨다. 늘 짜증으로 일관하던 나였기 때문에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이야기하자고 하시지 않으셨던 어머니였기에 그때 나는 순순히 걸어가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어머니께서 내게 물으셨다.
학교 다니기 싫니?
학교에 전혀 적응하지 못하고 공부도 안 하고 있던 나는 이게 웬 떡이냐 싶어, 이 말을 듣자마자 어머니께 학교 자퇴하고 싶고 기술을 배우러 가거나 다시 고향에 있는 학교로 보내달라고 했다.
어머니께서는 선뜻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 그런데 나는 이 말을 들었음에도 자퇴하거나 다시 고향 학교로 가지 못했다.
뒤이어 말씀하신 어머니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 우리 집에 아버지 지인분들이 와서 식사를 하고 가셨던 일이 있었다고 하셨다.
그 지인 분들 중 한 분께서 아버지께 나의 근황에 대해 물으셨다고 했다.
나는 당연히 개판을 치며 학교를 제대로 다니고 있지 않았기에, 뭐라고 나쁘게 말씀 하시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들은 이야기는 내가 기대한 답이 전혀 아니었다.
어머니께서도 당시에 아버지 지인분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계셨기에, 이 말을 들은 어머니께서는 아버지께서 난처하실까 봐 아버지를 대신하여 내가 '공부도 안 하고, 돈만 쓰고 있다'라고 말하려고 하셨다고 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그런 어머니를 제지하시며 이런 말씀하셨다고 했다.
아주 공부 잘하고 있어서, 우리가 신경 쓰지 않아도 앞으로 좋은 대학교에 갈 것 같아.
나는 그 말을 듣고 곧바로 짐을 싸서 학교 근처 자취방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어머니께서는 내게 이렇게 엉망으로 지내고 있는 너를 믿고 계시는 아버지를 제발 실망시키지만 말아달라고 하셨기 때문이었다. 평소 같으면 막차를 타고 학교로 돌아갔을 것인데,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집에 계신 아버지 얼굴을 보면 여러 가지 의미로 눈물이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엉망으로 생활하고 있는 것을 뻔히 알고 계셨으면서 왜 잘 지내고 있다고 하시며, 그때의 나를 믿었는지 지금도 잊을 수 없고, 생각할수록 굉장히 뭉클하다.
그리고 이 덕분에 나는 정신 차리고 자퇴한다는 이야기를 입 밖으로 내지 않았으며, 자취생활도 정리하고 하숙을 하며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아주 좋은 학교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때의 내가 기대할 수 없었던 학교에 입학하여 졸업까지 했다.
분명히 살다 보면 나조차도 나를 믿지 못하는 데 누가 나를 믿겠냐며 자기 삶을 자포자기하고 싶은 경우가 있다. 하지만 뒤에서 묵묵히 자신조차 믿지 못하는 우리들을 믿고 있는 부모님이 계신다는 것을 떠올려보자.
부모님께서는 스스로를 믿지 못하며 힘들어하는 자녀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고 계시다며 스스로를 자책하고 계실 분들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