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곧은 눈빛을 한 사내

<신극장판 은혼 요시와라 대염상> 일본 현지 개봉 일주일차 리뷰

by 이하석

*이 글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부 오류 수정 예정입니다.(삭제X. 괄호+가로줄 O)


작가 소라치 히데아키는 시무라 신파치의 입을 빌려 주인공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 남자는 사무라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거칠고, 양아치라고 하기엔
너무나 올곧은 눈빛을 한 사내였다.

27세의 요로즈야 악덕 사장님(우린 그걸 백수라고 부르기로 했다지)과 그가 사는 가부키쵸의 이야기가 이토록 사랑받을 수 있는 데에는 역시 주인공의 힘이 크다. 많은 소년 만화에서 자꾸 주인공이 인기투표 1위를 빼앗기는 불상사가 일어나곤 하는데 하는 것이라곤 한쪽 소매는 늘어뜨린 채로 동네를 배회하며 술과 디저트를 얻어먹을 생각이나 하는 우리의 주인공 긴토키는 다행히(?) 현재까지 진행된 모든 인기투표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은혼>은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은혼? 은혼은 장르가 은혼이지."라고 말하거나, 요상한 짤에 달린 '은혼 뭐 하는 장른가요?'라는 댓글에 "은혼은 은혼이에요."라고 답변한다. 이상하게도 굿즈조차 출신지인 일본보다 중국이나 한국에 매물이 더 많은 작품이다. 2004년부터 2019년까지 약 15년간 연재되어 더블럭키적립인 77권으로 마무리한 이 만화가 2026년에 새로운 극장판 영화를 들고 왔다. TVA(Television Animation)가 2010년 방영되고 4년 차에 원작을 따라잡는 등 별의별 위기와 탈을 다 넘기고 2025년에는 스핀오프 <은혼 3학년 Z반 긴파치 선생>을 방영하지를 않나 한국에서도 지난 극장판들이 연달아 재개봉하는 등 제작사에서 제작비를 모으더니 냉큼 극장판을 들고 왔다.


소라치 히데아키는 이제 인정할 때가 되었다.
<은혼>의 인기와 수요를.
<신극장판 은혼 요시와라 대염상> 포스터.

지난 2월 13일 금요일 현지 대개봉을 맞이한 <신극장판 은혼 요시와라 대염상>(이하 <요시와라>)은 IMAX 개봉까지 하는 기세를 보이며 첫 주를 보냈다. 2024년 12월 도쿄를 시작으로 2025년 오사카, 오쿠야마, 후쿠오카, 나고야를 지나 2026년을 맞이해 삿포로에서 진행 중인 <탄생 20주년 기념 은혼전~스무 살의 모임~>(이하 <은혼전>)이 <요시와라>의 개봉과 맞물리면서 해외에 굿즈 매물이 더 많다는 우스갯소리(라고 쓰고 실화라고 읽는다)를 뒤집는 중이다.

필자는 개봉 일주일 후인 지난 목요일 <요시와라> 관람과 <은혼전> 참가를 위해 성수기의 삿포로를 다녀왔다. 두 번째 버전의 캐릭터별 무비치케가 아닌 티저 포스터형 무비치케를 미리 구매해 로손유나이티드시네마에서 아이맥스 회차를 관람했다.

본격적인 리뷰에 앞서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은혼 제작진들은 어떤 결심을 했길래. 1주 차 입장 특전은 미니책이었고 2주 차는 원화 스티커였다. 필자는 특전도 위시 굿즈도 손에 쥐지 못했다. 물론 발품을 팔아 돌아다닌 덕분에 굿즈와 음료 텀블러까지 알차게 구하지 못했다. 해도 해도 너무하다. 이 이유엔 두 가지가 있겠는데, 하나는 사실 <요시와라>가 미친 영화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23일 월요일이 공휴일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필자는 일본 방문 시기를 잘못 잡은 것이 맞다.

로손 유나이티드 시네마 삿포로 아이맥스관 상영작 화면. 사진 이하석

저녁 9시를 훌쩍 넘겨 시작해 자정이 다 되어 상영이 끝나 도파민이 폭발한 채로 대중교통을 탔다가는 민폐를 끼칠 것 같아 숙소까지 걸어가는 도중 왓챠피디아에 <요시와라> 후기를 이렇게 남겼다.

남자에게 필요한 빨강 세 가지.
태양.
붉은 눈.
그리고 피.

그렇다. 아이맥스 스크린 가득 담기는 붉은 눈을 한 사내의 핏빛 액션을 보고 있자면 붉은 심장을 꺼내주고 싶을 지경이다. 말만 하면 별만 따다 주는 게 아니라 저 뜨거운 태양까지 따다 주고 싶게 만든다. 긴토키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점프의 다른 주인공처럼 성장할 생각은 없는(혹은 이미 마친) 캐릭터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안다. 자기를 포함해 지킬 것이 없어진 그가 지킬 것이 생긴 이후로는 이야기의 막을 내릴 때까지 계속 성장해 나가는 여느 소년 만화의 결말을 맞는다고. 그 꽉 닫힌 결말 속에서 여전히 신극장판이 나오고 야만 이유를 이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도움을 청하는 인물들 앞에 멋진 대사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반은 농담 섞인(혹은 농담 그 자체로) 말을 뱉곤 불꽃보다 뜨거운 그 ‘붉은’ 눈을 보인다. 역시 이미 한번 주인공과 같은 삶을(백야차) 살아온 덕일까. 혼자 성장해선 어느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스물일곱의 요로즈야 긴짱은 이미 안다. 각자의 성장이 모이고 뭉치고 나서야 단단해질 수 있다. 그렇게 달아오른다. 부딪히고 찢기고 아물고 흉터가 남아야 우스꽝스럽더라도 모두와 함께 이길 수 있다. 그는 주역을 원하지 않는 주역이다. 유유상종이라고 했던가. 그의 주변인들 모두 그렇다.


오롯이 팬들을 위해 공헌했다고 하는데 팬들도 지나칠 뻔한 이스터 에그를 어떻게하냐옹우는고양이똥커피!
주제가 SUPER BEAVER <燦然> 점프 뮤직비디오.

<요시와라>는 이전 극장판들과 마찬가지로 TVA를 조금 다듬고 붙여 영화로(영화로 상영될 만한 길이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다른 점은 신작화라는 점이다. 그뿐인가. 새로운 스토리까지 접목해 정말 새로운 극장판이 되었다. (넷플릭스가 워너브라더스를 인수해 버림받기 전에) 크게 땡기겠다는 기개가 허풍이 아닌 결과물이다(넷플릭스가 워너 인수를 철회했다). TVA에서도 액션이 가득한 에피소드라 예전 작화와 연출임에도 몰입감이 좋다. 카구라의 각성, 츠쿠요와 ‘백화’, 긴토키와 호우센의 전투. 세 신이 요시와라 편의 주요 신이라고 볼 수 있다. 신극장판을 위해 팬서비스로 원작과 다르게 들어간 진선조와 카츠라코타로의 개입은 전개에 큰 영향을 주지 않지만 원작이나 이전 TVA 봐왔던 팬들이라면 쉽게 새로 삽입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요시와라> 진선조 버전 예고편.

대표적인 삽입 내용은 진선조의 약물 잠입 수사다. 요시와라 유곽 내에서 퍼지고 있다는 약물을 조사하기 위해 사복을 입고 변장을 하기도 하며(유녀. 갸루. 일간지 기자들) 끝에는 긴토키 일행을(세이타를) 돕게 된다. 여기서 재밌는 조합이 탄생한다. 바로 국장 고릴라콘도와 양이지사 카츠라의 러브라인이다. 물론 여기서 둘은 서로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 그리고 끝내 <너의 이름은.> 결말을 맞는다. 다른 새로운 조합을 하나 더 꼽자면 카무이와 카츠라의 만남일 것이다. 원작에서는 접점조차 없던 그들이 후반에 맞붙어 심지어 화려한 액션 신까지 제공하는데, 특히 카츠라의 팬이라면(필자는 여기에 속한다) 일관된 개그캐로만 사용되던 앞의 내용을 모두 잊을 수 있을 정도의 쾌감을 맛볼 수 있으니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원작에 등장하지만 요시와라 편에는 등장하지 않는 등장인물들도 이스터에그처럼 여기저기 숨어있으니 그들을 찾아내는 재미도 분명할 것이다.


붉지만 올곧은 눈을 한 사내

예고편부터 팬들을 가슴 떨리게 한 건 무엇보다 신극장판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새 작화다. 카무이가 세이타를 히노와의 눈앞(문앞)까지 끌고 가 뒤에 등장한 호우센의 위협의 산통을 깨는 긴토키는 말한다.

그냥 여자를 좋아하는 한량이지.

신파치가 설명했던 긴토키를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자기소개와는 다르게 한량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올곧은 눈을 하고 있다. 그를 개그캐로만, 하루 벌어 하루 파칭코 가는 백수 짐짝 웬수남편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은혼 공식 SNS에서 공개된 위 컷은 이번 신작화에서 많은 팬들이 열광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다음 컷들의 작화가 더 끝내준다고 팬심을 드러내고 싶다. 공개된 영상 확인 후 관람했음에도 이 컷보다 더한 퀄리티의 컷이 나올 수 있음을 제작진들이 증명했다.

과거에 엮이고 엉켜 끊을 수 없던 모든 것을 태우고 새로 시작하려는 의지를 그 뜨거움에 담아냈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긴토키야 말로 이들을 구하기에 제격이다. 그리고 그도 또 한 번 구원받는다. 그게 요시와라와 가부키초를 포함한 우리 지구인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은혼전> 삿포로 회장 입구 옆 전경. 사진 이하석

작화에선 원작을 빼놓을 수가 없다. 필자의 경우 원화전도 다녀와 <요시와라> 편이 더욱 눈앞에 아른거릴 수밖에 없다. 삿포로의 눈을 모두 녹이고 뜨겁게 달궈진 도로 위에 아지랑이가 생길 정도로 말이다. 원화전과 함께하니 이전 TVA보다 더 원작 작화에 가까움을 느낄 수가 있었다. 원화전의 경우 전시된 분량으로 봐서 국내에서 진행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국내개봉에 맞춰 원화전도 진행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요시와라와 현실

아무리 팬들을 위한 극장판이라고 비판을 피해 갈 수 없다. 애초에 여성혐오 대사나 콘셉트 자체는 비난받아 마땅하고 이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게다가 이번 <요시와라>는 유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등장인물이 그곳에서 벗어나거나 여성혐오적 시선과 사회를 바꾸는 이야기는 변명일 뿐이다. 여장한 남자 경찰이 과장된 행동과 말을 하거나 딸과 같은 유녀를 데리고 있기 위해 신체에 해를 가하고, 결국 빌런의 손아귀에 벗어나 유곽이 더 이상 그늘 아래에 없어도 여전히 유흥가로 유지되고, 미성년자가 유흥업소에서 일한다. TVA가 국내에서 19세이상관람가인 것에 비하면 애초에 일본에서는 미성년이어도 관람이 가능하다. 영상물 등급 판정 기준이 다르다고 해도 시청관람에 주의가 필요한 건 사실이다. <요시와라>는 PG12(12세 미만-초등학생- 아동이 관람할 때 보호자의 지도가 필요함) 등급으로, 그러니까 보려면 모두가 볼 수 있는 작품이다. 한국에서도 극장판이 개봉할 때는 15세이상관람가였고, 수익의 지표가 명확한 극장용이기 때문이라고 예상한다. 극장판 관람 후 TVA나 만화를 볼 수 있다는 당연한 영향을 염두에 두고 보는 관객으로서도 주의해 봐야 할 것이다.

여러 잡음도 관심이 있어야 생긴다는 것을 증명하듯, <은혼>을 비롯한 많은 만화와 애니들이 완결 이후에도 꾸준히 새로운 콘텐츠가 제작되고 있다. <원피스>처럼 스핀오프식으로 극장판을 제작하기도 하고 <은혼>처럼 기존 에피소드에 새로운 작화와 연출을 더하기도 한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이들이 새 극장판 영화를 내어줄 때마다 이미 맛이 보장된 맛집의 신메뉴를 마주한 것처럼 기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파블로프의 개가 되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덕질’이라는 건 그런 마음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작품 안과 밖을 연결하는 나라는 매개체의 감상이 전부다. 비판하면서도 즐길 수 있다면 그걸로 되었고, 비판하기 때문에 즐길 수 없다면 그럴 수 있다. 한량이지만 뜨거운 가슴을 안고 사는 이중적인 주인공처럼 작품 밖의 우리도 결국 그와 같은 지구인이다.


지구인이 아니다. 카츠라다.


이미지 출처. <신극장판 은혼 요시와라 대염상>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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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1. <신극장판 은혼 요시와라 대염상> 공식 홈페이지

참고 2. <은혼>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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