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당근 샐러드 말이야. 한국인들은 얼마나 자주 먹어?
당근 샐러드?
음 당근을 먹긴 하지만 당근 샐러드를 먹지는 않는데…
뭐라고? 나는 지금까지 그게 한국음식인 줄 알았어!
카자흐스탄에서는 카레이츠 음식점에 가면 그걸 꼭 팔거든. 세상에…
카레이츠? 그게 뭐야?
한국인들 말이야. 카자흐스탄에 사는.
카자흐스탄에 카레이츠 음식점이 많거든! 외식으로 사람들이 꽤 인기 있어.
아 고려인들을 말하는 건가?
맞아! 나도 정확히 언제부터 인지는 모르겠지만, 카자흐스탄에 정착한 지 꽤 오래된 한국인들이라고 들었어.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도 한 학년에 한 두 명 정도 카레이츠들이 있었어.
아마 지금 그들이 3세대? 4세대? 카레이츠들일거야.
만 19살의 수줍음이 많은 내 카자흐스탄 친구.
그녀는 수업시간에 발표할 때마다 불타는 고구마가 되지만, 너무 좋은 글쓰기 솜씨를 가진 멋지고 귀여운 이과생이었다. 나에게는 수업이 끝날 때까지 좋은 친구이자 사랑스러운 동생으로 기억되어있다. 그녀의 고등학교 친구가 이번에 한국의 카이스트로 진학했고, 덕분에 그녀도 한국문화와 음식에도 관심이 많아져서 늘 재미있는 대화시간을 가지곤 했다. (이 소녀와의 대화는 기록하고 싶은 것들이 많기 때문에, 나중에 그녀에 대해서 따로 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
친구의 말에 의하면, 카자흐스탄에서 가장 흔한 야채류는 감자란다.
'감자는 아무 데나 심어도 잘 자라ㅎㅎ 우리 집 마당에 아무 데나 한뿌리 심어두면 그냥 몇 주면 바로 먹을 수 있어. 그래서 이곳 유럽 사람들의 주식이 감자인 거야. 난 정~~~ 말 감자를 많이 먹었고, 지금도 맨날 먹어'
그래, 독일에서도 삶은 감자, 으깬 감자, 튀긴 감자... 매일매일 먹는다. 심지어 감자의 종자도 다양하다. 큰 감자, 작은 감자, 삶아먹는 감자, 구워 먹는 감자... (그래도 감자일 뿐이긴 하다.)
카자흐스탄에서는 삶은 고기류와 감자를 주식으로 먹고, 아침에는 빵을 먹는다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친구는 독일 빵이 너무나 맛없음을 매일매일 토로했다는 것이다. 독일의 빵은 대부분 통밀로 만들어지거나 발효된 빵들이라 거칠거칠하고 딱딱해서, 여러 번 씹어야만 한다. 보통 유럽의 빵을 떠올리면 프랑스의 버터가 잔뜩 들어간 고소한 향이 나며 부드러운 빵을 생각하겠지만, 독일은 빵조차도 강인하며 딱딱한 나라이다. 뭐... 건강에는 좋다 하니 더 이상의 군말은 하지 않겠다. 나의 사랑하는 카자흐스탄 친구는 독일 음식은 본인에게 여러모로 도전이라고 늘 이야기했다.
외국에 나와 살며 가장 그립고 적응이 힘든 것은 아마 음식일 것이다.
어렸을 때 엄마의 손맛에 의해 형성된 입맛은 결코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처음 한 육 개월 동안 양념치킨과 떡볶이가 어찌나 먹고 싶던지. 요즘은 신기하게도 프랑크푸르트와 대도시에 한국 치킨집들이 유행하여, 가끔 대도시에 방문했을 때 한 마리씩 먹고 오곤 한다.
요즘은 코로나와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상하이의 락다운으로 인해 유통이 원활하지 않아 아시안 음식 재료의 가격이 거의 두배내지 세배로 올랐다. 대부분의 아시안푸드 레스토랑의 가격이 올랐고, 우리가 사 먹는 김치의 가격은 정말 딱 두배 정도 오른 것 같다. 심지어 우리 동네에 있는 작은 아시안 식료품점에는 김치가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물류가 부족했다. 그래서 김치를 사 먹고 싶다면 대도시의 인터넷 한국 식료품점들을 통해 김치를 주문해야만 한다. 어찌나 김치가 귀한지, 김치찌개를 끓일 때는 김치를 정량의 반만 넣고 배추와 양파를 가득 넣어 함께 끓인다. 김치의 신 맛은 식초로 대신하고, 간을 맞추기 위해 고춧가루와 간장을 넣어야만 한다. 사실 김치가 너무 아까워서 김치찌개는 자주 끓여먹지 못한다.
그렇지 않으면, 직접 집에서 간단하게 김치 대용 식품을 만든다.
나는 콜라비로 만든 깍두기를 만들기를 선호하는 편이다. 콜라비는 이곳에서도 사계절 내내 구하기가 쉽고, 가격도 저렴할 뿐 아니라 건강에도 좋다 하니 일석삼조다. 콜라비를 소금에 살짝 절인 다음 양념을 묻히면 완료이니 만들기도 쉬운 깍두기 대용품이다. 오이가 저렴할 때에는 오이로 오이무침을 해놓기도 한다.
세상에나, 한국에서 음식이라곤 라면만 끓이던 내가 직접 요리를 하다니.
카자흐스탄 친구처럼 나에게도 독일 음식은 도전 그 자체였다. 독일에 처음 와서 먹은 슈니첼(독일식 돈가스)은 너무 짭짤하여 맥주 없이는 먹을 수가 없었고, 향신료라고는 소금과 후추 밖에 모르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그래서 현재 나의 요리실력은 집에서 직접 한식을 해 먹고, 치킨을 튀겨먹고, 피자를 오븐에 구워 먹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제대로 된 요리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한국에서 쉬이 사 먹고 배달시켜먹던 것들을 대체할 정도로 발전하고 있기는 한 것 같다.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내가 알지 못했던 한국의 모습을 알게 될 때가 많다.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들어봤었던, 그리고 뉴스에서 들어보았던 '고려인'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을 피해 두만강을 넘어간 조선인들이 스탈린에 의해서 카자흐스탄 등지로 강제 이주되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정작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가 친구들에게 그들을 '잘' 알고 있고 '우리 동포'라고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알고 있는 게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에서 그들이 한국의 문화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며 살고 있다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은 있는 것 같은데.. 실제로 소련 국가에 그 후로 그들이 자리 잡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잘 몰랐다.
카자흐스탄 친구가 말한 '당근 샐러드'는 말하자면 '당근 김치'였는데, "마르코프차"라고 불린단다.
고려인들에게 '마르코프차'는 어떤 의미였을까. 원치 않는 이주를 하고, 전혀 모르는 곳에서 살며, 익숙하지 않은 식재료들 속에서 한국의 맛을 찾아보려 했을 때, 그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다음 날 커피를 마시며 친구와 '고려인'들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를 했다.
(고등학교 이후로 내가 접해 본 적이 없는 주제였으므로, 전날 집에서 고려인과 당근 샐러드에 대해 엄청나게 인터넷 서칭을 했야만 했다.)
그들은 한국 사람이고, 우리도 그들에 존재를 알고 있으며 그것은 '당근 샐러드'가 아니고 '당근 김치'라고.
아마 야채를 구하기 힘든 카자흐스탄에서 그들이 배추 대신에 당근으로나마 김치를 담고 심었던 것 같다고.
친구는 나에게 스탈린 시대 소련에 살았던 할머니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지금도 소련을 그리워하기도 하고 원망하기도 하는 할머니는 그때 당시 먹고 살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자주 이야기해주셨다고 했다. 그래서 그 당시 한국에서 온 고려인들이 얼마나 살기 어려웠을지 더 잘 이해가 간다며, 그들이 지금은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자리를 잡은 것이 얼마나 대단하냐고 다들 한국인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처음 당근 샐러드에 대해서 들었을 때, 마음 한편이 뜨거워지며 괜스레 굉장히 미안했다.
감자와 고기가 주식인 나라에서 김치를 그리워하며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바랐을 그들은 어떻게 지냈을까.